한참 만에 소식을 전하며..
05.02.05 12:42
오랫동안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벨모판에서 서쪽으로 좀 떨어진 한적한 산골마을 오두막에 와 있습니다.
차량으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인데, 차량으로 과테말라 방향인 서쪽으로 30분가량 이동한 후 비포장도로를 타고 다시 남쪽으로 한 시간 가량 오면 제가 거주하는 오거스틴 이란 마을에 닿게 됩니다. 여기서 현장은 오 마일 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여기서는 모든 게 영국식 도량형 단위를 쓰다 보니, 아직 제대로 적응이 안 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저 멀리로만, 그것도 깊은 산중에서만 드물게 보이던 북두칠성이, 여기서는 새벽추위에 눈을 뜨면 머리맡에 큼직하니 산자락에 닿을 듯 가까이 와 있습니다.
한국보다 훨씬 가까이 그리고 산 가까이 기울어져 뚜렷하게 또 아주 크게 보입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낮은 무척 더운데도 불구하고 일교차가 커서 새벽은 추위에 눈을 뜨게 된답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여러 새들이 우짖는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아주 외지고 조용한 산골마을입니다.
텔레비전도 나오지 않고, 물론 전화도 없습니다.
휴대용 전화기도 어느 특정지역 단 한곳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야 비로소 통화가 가능하답니다.
전기도 자가발전 하는 지역이어서, 오후 4시에서 밤 10시까지 제한 송전하는데, 그나마도 상태가 좋지 못해 꺼졌다 켜졌다 하는 몹시 불안정한 상태여서, 인터넷이 되지 않는 제 컴퓨터이지만, 절로 꺼졌다 켜졌다 하곤 하지요.
첫날 여기 와서 전기밥솥에 밥을 지었는데, 전기가 불안정해서 몇 번이고 밥솥의 버턴을 다시 누르다가 결국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니고, 한편으로 설기도 해서, 결국 다음 날 죽을 쒀 요기를 했습니다.
여기 소식을 전하고자 컴퓨터를 쓰려고 해도, 막상 현장에서 돌아오면 자체적으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형편이라, 좀 거드는 체 하면 컴퓨터를 사용할 시간은 더 줄어들지요.
다행이 생활용수로 쓰이는 수돗물은 잘나오는 편이지요.
물론 식수는 생수를 마십니다.
여기는 수십 가구가 살고 있었던 지역인데, 어떤 이유인지 모두 소개를 시켜서 주민들은 거의 없고, 산림국 건물과 직원 숙소, 슈퍼, 그리고 상류 쪽에 중국인들이 건설하는 댐 현장의 중국인들과 과테말라 인부들의 숙소가 한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발전소 관련 직원들의 숙소가 세 채 있고 나머지는 모두 빈집입니다.
주변에서 말을 키워보라고 권유합니다.
말의 먹이는 천지에 널려있고, 놔두면 절로 크기 때문인데, 말 한 마리 값이 우리나라 돈으로 50만 원 정도에 불과한 까닭입니다.
그 말을 타고 가까운 이웃나들이나, 볼일을 보러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을 다니다 보면 남자들은 특히 수염을 기른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독일인들로서 전기도 없이 문명을 도외시 하고 이들로 근면하고 검소한 청교도적인 삶을 사는 특정종교집단입니다.
우리 일행의 첫 저녁식사는 식탁이 미처 준비되지 않아 종이박스를 뜯어 시멘트 바닥에 깔고 식탁을 대신했습니다.
형광등과 초크를 모두 교체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침실과 거실, 현관, 화장실은 불이 들어오지 않아 집들이 준비에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양초를 여러 개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수련에 좀 더 매진하라는 하늘의 배려에 눈물겹습니다..ㅠ.ㅠ
하지만 첫날 잠시 짬을 내어 1시간가량 수련한 것 이외에 제대로 수련하려면 좀 시일이 걸릴 듯합니다.
다시 지난 얘기로 돌아 가보죠.
선플라이라는 모기보다 훨씬 작은 산중의 벌레를 쉽게 생각한 탓으로 사과 같은 제 얼굴은 멍게껍질이 되었습니다.. 흑..
얼굴과 목덜미, 팔꿈치와 무릎 오금 아래 모두 울긋불긋한 부어오른 반점으로 가득 찼습니다.
수시로 가려운데, 특이한 것은 일제히 가려운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돌아가면서 가령, 오후 2시는 이쪽, 4시는 저쪽 이런 식으로 가렵습니다.
물파스로 도배를 하고 있지만, 낫는데 열흘 정도 소요된다 하며, 흉도 일 년은 간다고 합니다. 같이 왔다가 예정된 일을 마치고 먼저 귀국하는 분은 무심히 현장을 다니다가 팔이 온통 울긋불긋해서 공항검색 시 전염병환자로 걸려서 입국이 거절당하지나 않을까 농반 우려를 할 정도입니다.
지난 한주는 뙤약볕 아래 오랫동안 인적이 사라진 험한 산길을 헤매면서 노두조사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얼굴은 새카맣게 타서 거의 현지인 수준에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 흑..
1월 28일 금요일 저녁은 현장숙소를 떠나 벨모판으로 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오래 있다 보면 휴일은 그리 갈 곳도 많지 않고 늦도록 술을 마시거나, 티비를 본다거나 빈둥대기 일쑤입니다.
토요일은 장이 열리는 까요에 일찍 가서 장을 보고, 부근의 마야유적지를 다녀왔습니다.
주로 주변에서 흔한 석회석 벽돌로 쌓아 올려진 커다란 여러 개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90년대 초에 미국인 학자에 의해 발견되었을 당시는 정글로 뒤덮여진 것을 일부 복원되고 진입로가 만들어 졌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까마득하게 높습니다. 계단을 따라 이리저리 오르는데 난간도 없이 아슬아슬합니다.
고소공포증을 가라앉히며 오르내리는데 진땀이 납니다.
석회암 블럭으로 만든 마야피라밋
오가는 도중에는 강을 건너야 하는데, 우리로 말하면 카페리 호에 해당되는 나무로 만든 배에 차량을 싣고 강을 건넙니다. 나무로 만든 배에 차량을 실으면 양안에 매어진 쇠줄과 도르래를 이용해서 이동합니다.
이 일대의 숲에는 이구아나가 서식하고 있는데, 아주 큼직한 놈이 나뭇가지 위에 엎드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면 자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벨리즈에서도 내외국인 사이에 요금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야유적지 입장 시에도 일행들이 취업허가서를 제시하자 입장료가 10불에서 5불로 줄어들었습니다.
안전벨트 미작용 같은 경우의 벌금은 외국인이 100불, 내국인은 25불입니다.
이성 얘기를 해 볼까요.
여기 여성들은 대부분 미혼과 기혼이 확연히 구분됩니다.
기혼자들은 몸이 아주 비대해지며, 특히 엉덩이 부근이 무척 커집니다.
아이들은 참 예쁘고 귀여운데,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되면 몸이 그리 망가지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여기는 교통이 불편해서 도로를 다니다 보면, 히치하이커들이 무척 많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권고에 의하면, 극히 드물겠지만, 위험한 경우가 발생될 수 있으니 결코 태워주지 말라고 합니다.
어느 날 현장에서 홀로 벨모판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오렌지를 옷에다가 잔뜩 담고 걸어가는 아이들이 차를 세웁니다.
얘들을 좋아하는 터이라 태웠는데, 열대여섯 명은 되는 듯합니다.
물론 뒷자리와 픽업 뒤 짐칸에 태웠었지요.
여기서는 워낙 오렌지가 흔해서 자신이 먹을 만큼은 얼마든지 따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네의 수박이나 참외 등의 서리와는 전혀 다르지요.
열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저마다 옷을 벗거나 옷자락에 가득 오렌지를 따 담아 가도 그 누구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답니다.
저의 첫 번째 히치하이크를 태운 경험입니다.
두 번째는 아까 말씀드린 독일인 노인이었습니다.
경유지가 있어서 처음에는 거절했더랬는데, 마블광산에서 일을 보고 차를 몰고 가다 보니 눈에 띄어 차에 태웠습니다. 가까운 거리였는데, 내리면서 오렌지를 두 개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더 가는 중에 한 아가씨가 차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단정한 유니폼을 입었었고, 처음에 자꾸 가슴에 명찰을 가리키는데, 고속버스 안내양인 듯 했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얼마나 주워대는지 가만 보니 벨리즈에서 여러 파업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버스가 오지 않아서 출근이 곤란한 상황인 듯 했습니다. 스테이시라는 이름의 아가씨는 예쁘기도 하지만 이 나라 국민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아주 활달하고 호기심이 많은 듯 했습니다. 하지만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 주고는 그냥 끝입니다.^___^;
썰렁하죠?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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