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정글 또소아 이야기

적도 인도네시아 정글 4 - 짭띠꾸스

수암11 2008. 1. 12. 08:58

밀림 안이어서 술, 담배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거의 술은 마시지 않습니다. 아마 더운 지방이어서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전통주는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수액을 발효 시켜서 만드는데 시큼한 냄새가 나는 우리네 막걸리와 유사한 종류입니다. 이 전통주를 코코넛 농장에서 불을 때서 증류시켜 맑은 술로 바꿉니다. 약 35도 정도의 증류주로서 짭띠꾸스라고 합니다. 어떤 첨가물도 없이 만드는데 물처럼 맑고 독특한 수액의 향만 남아 있을 뿐 그야말로 웰빙술입니다.


떼르나떼에서 고속정을 타고 40분 거리에 있는 자이롤로 사무실에 소장으로 있는 선배에게서 글라스로 한 잔반을 얻어 마시고 600mm 생수통으로 하나를 얻어 온 게 있는데, 그들에게 권하면 기겁을 하고 손사래를 칩니다.


처음 인원들을 모아 출발 직전에 그들이 담배를 산다고 각 5만루삐아 씩을 달라고 해서 주었는데 그들은 모두 골초들이었습니다. 저야 당연히 담배를 소지하지 않았는데, 우선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아 그들과의 동류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한 방편으로 그들의 담배를 얻어 피워봤습니다. 어쨌거나 급한 출발을 한터여서 밤에 불 밝힐 등잔에 쌀도 좀 부족한듯하고 몇 가지 물건을 사러 9일 아리스를 또소아로 보내는 편에 그들에게 줄 담배도 시켰습니다. 그들 담배 가운데는 예전 우리나라 풍년초처럼 종이에 말아서 피는 종류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제게 이야기 해준 바에 의하면 그들의 담배가 독하여 한 대만 펴도 혓바닥이 가라진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맛은 별로입니다.

여기는 네델란드의 오랜 지배를 받아 담바꼬(담배), 람뽀(램프) 등의 발음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나무에 심지와 등유를 부어 만든 호롱, 꽁치통조림으로 만든 호롱


글을 쓰는 동안에 가끔 폭발음이 들립니다. 아리스가 군뚜르라고 하는데, 저는 화산 폭발음인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기여서 이곳저곳에서 내리는 비와 함께 천둥치는 소리 입니다.


여기는 지금 우기입니다. 우기라 해도 종일 오는 것이 아니라 한 30분에서 한 시간 가량 옵니다. 한 쪽에서는 햇빛이 비추는데도 이쪽은 내리는 것이지요. 늘 그런 것만 아니고 또소아에 오던 날은 엄청 폭우가 한참 쏟아졌습니다.


여기 있는 화산들은 그 끝이 뾰족하고 경사가 심해 초기의 발원 수계들은 급류하천으로 직선하천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약한 부분을 따라 조금씩 굽어지기 시작합니다. 우기에 일시적으로 내리는 강우량이 급사면을 타고 쏠리면서 돌무더기들과 같이 휩쓸려 하천을 급속히 침식시킨 탓으로 협곡이 생긴 것으로 저는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굉음을 내면서 내려오는데, 일시에 수위가 급상승하면서 주위를 휩쓰므로 그런 소리가 들리면 불문곡직하고 피해야 한다고 선임자들이 조언해 줍니다.


계곡 안이 어두워지면서 야자수 잎으로 덮은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한가롭습니다. 강위에 뿌려지는 빗방울의 흔적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아리스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한가로움도 즐기고 이 글도 쓰고 있습니다.


제 대신 일을 하러간 솔래만, 사께우스, 알렉스가 걱정됩니다. 제가 간식이라도 가져가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쳤는데, 점심도 거른 채 아직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리스 이야기로는 오후 5시경 돌아온다고 합니다.  아리스 이야기로는 각자 알아서 해결 할 거라고 하는데 궁금하군요. 아리스가 권하는 과자는 개미도 먹고, 파리도 먹고 하던 어제 먹던 과자인데 우리도 먹습니다. 하긴 여기 파리는 별로 더럽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숲은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언젠가 벨리즈에서 숲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은 선플라이 같은 모기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도 모기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저의 살아 있는 피공양이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는지 지금은 모기도 별로 달려들지 않고 물론 저도 잡지 않습니다. 가지고온 선임자가 추천해준 모기약과 기피제는 개봉도 하기 전에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후 5시에 돌아온다던 사람들이 4시 반경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비는 적은 양이지만 밤늦도록 내리며 야자 잎으로 만든 지붕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저녁도 아리스가 만든 야외식탁에서 비를 맞으며 먹습니다. 8시 조금 넘어 알렉스와 아리스는 밤낚시를 한다고 나갔습니다.


밤이면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와 빗소리 풀벌레 소리, 고단한 듯 솔래만의 가벼운 코고는 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밤새 비가 내립니다. 자다가 모기가 문 자리가 가려워서 깼습니다. 갑자기 억수같이 비가 내립니다. 낚시 간 알렉스와 아리스는 밤새 오지 않습니다. 낚싯대와 랜턴, 그리고 몸만 달랑 갔는데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밤에 어찌 지내나 걱정됩니다. 평시 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는데, 그때까지 비는 가늘어졌지만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일어난 뒤 막 두 사람이 돌아왔는데, 알렉스 손에는 무려 1m에 가까운 메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움막도 한 컷,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돌래르말래우 알 사진을 찍기 위해 알 옆에다가 볼펜을 꽂는데, 솔래만이 기다리라고 하더니 땅바닥에서 웬걸 들고 오는데, 발을 끈으로 묶어 달아나지 못하게 한 돌래르말래우 새끼였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돌래르말래우 새끼를 잡아다가 손에 감싸 쥐고 같이 사진을 찍으라는 것이었지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발목이 묶인 돌래르말래우 새끼


깜짝 놀랐습니다. 혼자서 제대로 운신하기도 어려운 새끼를 잡아 오다니!

새끼는 잡으려 하면 버둥거리며 피하려 합니다.

아침 식탁 위에 또 어디서 구한 것인지? 돌래르말래우 계란 후라이가 놓여있고 토막 친 쏘길리탕과 쏘길리 튀김이 잔뜩 놓여 있습니다. 워낙 커서 한 마리면 이틀은 너끈히 갑니다. 저는 돌래르말래우 새끼를 보고 식욕을 잃었습니다. 마지못해 몇 숟갈 뜨는 둥 하다가 말았습니다. 가랑비가 그때까지도 그치지 않고 있기에 야자 잎을 둥글게 말아 새끼를 그 안에 넣어 두었더니 잠자기 시작합니다.


식후에 상류 쪽을 답사하기로 계획을 잡습니다. 산길을 따라 얼마간 상류로 올라가니 시커먼 현무암 노두들이 물에 깎이어 폭포와 급류를 이루며 장관입니다. 장화 안에 양말을 신어도 껍질이 까진 부분이 자극을 받아 고통스럽습니다.


2시경 답사를 종료하고 복귀합니다. 그때까지 돌래르말래우 새끼는 죽은 듯 자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죽을게 뻔합니다.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기운을 한껏 집어넣어 봅니다.

한 오 분 가량 기운을 주입 후, 풀어 놓으니 인제 힘이 생겼는지? 후다닥 숲으로 달아납니다. 앞으로 살 수 있는지 모르지만, 활갯짓을 보니 조금 안도감이 옵니다.


13일인 수요일 오전 10시까지 차량이 오기로 했기에 일단 내일은 철수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오후 4시 반 경부터 또 비가 내립니다. 금새 그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분들은 날이 어둑한데도 맨발로 밀림을 곧잘 걸어 다닙니다. 시간만 나면 밀림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는데 바랑 한 자루로 뭐든 만들고 공급합니다.


숲에는 멧돼지 사냥꾼이 있다고 합니다. 낮에는 멧돼지들이 활동을 않기에 아무리 다녀도 구경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멧돼지 사냥꾼은 엽견 3마리와 창을 가지고 사냥을 다닌다는데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12일 밤이 되었습니다. 파리나 개미들이 돌아다니며 간질입니다. 물론 모기와 거미도 공존하지요. 여기 오는 동안 잠시 휴식 중에 물린 불개미 자국은 아직 발갛게 부어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서 식사를 합니다. 한번은 안에서 식사를 하자고 했더니 제 밥과 반찬만 가져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저도 바깥에서 비를 맞으며 먹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여기는 네델란드의 지배를 받으면서 보이지 않는 주종관계를 포함하는 계급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돈을 주는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가 엄격하여 결코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항상 고용자나 주인이 식사를 한 후에 그들이 먹습니다. 사실 한국식으로 먹는 우리네 식사보다 그들의 식사가 항상 더 풍성하고 푸짐합니다. 자이롤로 사무실에 오죽하면 사람들이 일찍 출근하여 하루 세끼를 모두 먹고 퇴근을 할 정도입니다.


아침에 제 생각이 편협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과 문화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야생동물을 잡고, 먹는데 대해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녁 메뉴로 나온 쏘길리국은 사실 맛있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온갖 새소리가 숲을 진동하고 반딧불이가 여기 돌아다니다가 어떤 것은 움막 안으로 들어오기 까지 합니다.


12일 오늘은 또소아로 복귀하는 날입니다. 내 발 상태를 생각하는지 모두들 우려하는 표정들입니다. 평소보다 조금 느긋하게 일어나 짐을 챙깁니다. 며칠간 정들었던 움막은 그대로 두고 떠납니다. 제 짐은 솔래만이 자기 보따리 안에다가 집어넣습니다.

강을 건너자마자 두 손 두 발을 이용해서 절벽을 오릅니다. 턱 끝까지 숨이 찹니다.


사십이 넘고 오십이 이제 넘어 육체적인 활동이 거의 없어 심신이 무력해질 때 예전 힘든 군 시절 완전히 적응이 되어 강건한 육체를 지니고 있던 시절을 떠올리고는 마치 돈을 주고서라도 그런 훈련을 받을 곳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더랬는데, 지금의 저는 오히려 돈을 받으며 한국도 아닌 오천km나 떨어진 새로운 풍물 속에서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다니 대단한 축복이자 그야말로 소원성취입니다.


여러 차례를 쉬고 그리고 또 걷는 가운데 웬 널찍한 공터가 나타납니다. 거대한 나무들이 톱에 잘려 쓰러져 있고 그 나무들은 또 가공되어 판재로 쌓여 있는 것입니다.

자연훼손 현장입니다. 놀라운 것은 거기까지 도로가 나있는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말이지요,

안타깝지만 그들의 생활과 결부되어 있으니 제 쪽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GPS를 찍어보니 우리가 처음 왔던 방향과는 반대방향인 북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이 산판도로를 이용하면 좀 거리는 머나 수월하게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적 하나 없던 숲에서 여기는 가끔 일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도중에 점심식사를 대충 때우고 한참 걷다보니 이 일대의 주산 깜꼬노라화산이 보입니다. 정상은 구름에 덮여 있습니다. 잠시 일별하다가 거수경례를 하고 떠나니 모두 웃습니다. 비포장도로지만 걷기에 한결 편합니다.


한 8시간째 걷는데 구름이 잔뜩 낀 곳을 진입하려니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립니다. 농막을 찾아 피하기도 전에 흠씬 젖습니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잠시 다시 이동 중에 억수같이 비가 퍼붓습니다. 비가 새는 농막으로 피해 옹색하게 앉아 있으려니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날은 어두워 오는데 도중에 숙식하기도 애매하고 갈 길이 너무 많이 남았습니다.


잘란브리또라는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동으로는 우리가 오던 이 산판도로와 연결이 되고 남쪽으로는 또소아 및 자이롤로와 연결 되는 도로이며 그리고 북쪽으로는 또 다른 도시와 연결되는 이 섬의 동맥입니다. 여기에는 목재소가 있고 오토바이를 이용해서 승객을 나르는 소위 여기서 말하는 오잭이라는 택시가 있는 곳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너무 늦어서 택시들이 영업을 끝내고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잠시 쉬고 있는데, 그들로서는 웬 낯선 외국인인 제가 아주 외진 산골에 무리들 가운데 끼어 있으니 신기해하며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택시가 없으니 마냥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도중에 물이 없으니 도로가에서 밥을 해 먹을 수도 없고 어둑해지는 길을 마냥 걷습니다. 저야 짐이 가볍지만 다른 이들은 상당히 무겁습니다. 삼거리부터는 포장도로인데 노면상태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어둠이 깔린 길을 한참 걷다가 내리막길에서 도로 위에 깔린 모래에 미끄러지며 넘어졌습니다. 손목이 삐끗했는지 약간의 통증이 있습니다. 하염없이 걷다보니 또소아를 상징하는 관문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거기서도 한참을 걸어 아리스 집에 도착했습니다. 도중에 몇 번 샘플채취도 했지만, 무려 12시간을 길에서 보냈습니다. 비에 젖고 몸은 피곤하고 그야말로 쫄쫄 굶었습니다. 아리스 집에 앉아 있으니 동네 사람들이 한 이십 여명이나 외국인인 저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바글바글합니다. 제가 신기한 듯 말을 붙여 보려고 애를 씁니다만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저와 말이 통하지 않으니 저희들 끼리 떠드느라 정신이 하나 없습니다.


당초 일정은 내일까지지만, 오늘 노임을 줄려고 하니 영수증 작성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아서 애를 먹습니다. 졸리고 배고픈 가운데 수십여 명이 각자 떠들어대며 나서는데 어쨌든 한 시간 가량을 소요한 후에 영수증이 작성되고 돈이 지불되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먹습니다. 소위 안남미로 지은 쌀밥과 �은 닭 조각, 그리고 라면이 나왔습니다. 여기 닭은 작은지 육질이 별로 없고 키가 껑충하니 큽니다. 하긴 방목하는 닭들도 먹을 게 없으니 살이 없을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문제는 라면으로 여기 사람들은 제가 가지고 갔던 꽁치통조림 같은데, 그걸 꼭 라면에 넣어 같이 끓여 내옵니다.

비린 라면 이지만 전혀 내색을 않으니 꽁치를 더 건져 먹으라고 권하지만 사양합니다.


무척 피곤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남아 있으니 잠자러 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고 대신에 맥주란 말이 먼저 나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하니 도리가 없습니다. 늦어서인지 상점들은 모두 문이 닫혀 있고 깨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기는 무슬림이 많은 지역이어서 인지 술파는 가게가 따로 있습니다. 담배도 모든 상점에서 팔지 않습니다. 결국 이웃집에서 오토바이를 빌려서 좀 먼 곳까지 사러 갔는데도 불구하고 가게주인을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포기하고 돌아 왔습니다.

하지만 모여 있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여기 전통주인 짭띠꾸스를 이웃에서 사왔습니다. 두 병은 자이롤로롤 가지고 가기 위해 따로 챙기고 두병은 플라스틱 주전자에 부어서 단 하나의 잔으로 돌립니다.


짭띠꾸스가 독한 술인데다가 여기 사람들이 술을 즐기는 체질들이 아니어서 사양할 줄 알았지만, 분위기가 되니 9명가량이 둘러 앉아 한 모금씩 삼킵니다. 잔 하나를 가지고 제가 계속 따라 줍니다. 모두들 제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원샷하는 모습에 신기해합니다.

이 집 여주인과 같이 사는 다른 여인도 자리를 같이 하는데 여자들은 술을 마시지 않나 봅니다. 그들에게 사가지고 간 환타를 권하니 들고 있을 뿐 마시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비싸고 귀한 것이어서 애들 줄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계속 권했더니 마지못해 하나만 땁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간단한 몸짓 하나에 웃음을 터뜨리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합니다.


4순배가 지나자 벌써 11시 반이 되었습니다. 아리스와 저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추워서 새벽에 몇 번 잠이 깨었습니다만, 모처럼 숙면을 취했습니다.


새벽 5시 좀 넘어 일어나 간단히 씻고 집안 밖을  둘러봅니다. 어젯밤에 작은 등잔 하나와 공기 압축식 호롱으로 밤을 밝히었는데 아침에는 전구에 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전력난으로 밤이면 수시로 정전이 되는 모양입니다.


집 뒤에는 공동화장실과 세면장이 있으며, 공동우물도 있습니다. 우물은 그냥 야트막한 판자로 울타리 쳐져 있습니다. 여기는 돼지를 방목해서 돼지, 닭, 고양이, 강아지들이 마음대로 다니고 있습니다. 돼지가 도로를 건너는 모습도 간혹 볼 수 있으며 어떤 지역은 염소가 파종해 놓은 식물을 뜯어 먹기도 합니다. 어제 저녁과 같은 메뉴의 식사를 마치고 오전 10시에 자이롤로 소장인 선배가 픽업하기로 되어 있어서 옆집 가게 앞 도로변에 짐들을 늘어놓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차량이 도착하고 일주일 만에 조금 나은 문명의 세계로 복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