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저녁을 먹으면 바로 자리에 눕습니다. 어두운데다가 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말이라도 통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도 통하지 않으니 그냥 잠을 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잠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가려운 데는 긁고 물파스를 바르거나 헤져 쓰라린 부분은 황토를 바르는데 수시로 이쪽저쪽이 가려우니 자지 못하고 앉아서 이리저리 긁적이고 있습니다. 헤져 쓰라린 곳은 대부분 감염되어 곪은 곳인데 마냥 걷다보니 신발이나 옷에 스쳐 살이 짓무르고 헤진 곳입니다. 통증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걸을 때는 따라잡기에 집중하다보니 통증을 모르고 가는데, 저녁쯤에는 그 통증들이 일시에 간헐적으로 오니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결국 아침 무렵에야 잠이 들어 한 두 시간 정도 잠을 잤습니다.
오늘은 제법 긴 복귀코스여서 조금 긴장이 됩니다. 식사를 마치고 아침 8시경 출발을 시작 합니다. 몇 시간은 강을 따라 이동하며 수시로 절벽을 오르내리며 험한 코스를 이동했었는데, 강가에서 점심을 먹고는 수직 절벽을 한참 오릅니다. 제 짐은 아침에 아예 솔래만에게 맡깁니다. 빈 몸에 지팡이 두 개를 잡고 걷는데도 이리 힘이 듭니다. 정상에 오르니 기복이 그리 크지 않은 능선이 이어집니다. 사실 일부를 제외 하고는 길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솔래만의 뒤꿈치만 보고 걷는데도 놓치기 일쑤입니다. 나무뿌리나 가지에 혹은 늘어진 줄기에 걸리면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십상입니다. 칼로 날카롭게 벤 나무줄기나 가시나무 등이 있어서 잘못 넘어지면 큰일 이지요. 잠시 한눈을 팔면 솔래만을 놓칩니다. 그러면 뒤따라오는 사께우스가 손짓으로 방향을 지시해 줍니다. 선두인 우리가 속보를 하면 짐이 많은 알렉스와 이번에 새로 온 오따도 필사적으로 뒤따르지만 간격이 벌어집니다. 그래도 한참 뒤에는 어느 사이엔가 따라 붙어 있습니다. 그들 눈에는 길이 다 보이나 봅니다.
오후 3시경에는 능선의 끝에 왔습니다. 절벽 아래는 숲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그 끝이 안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한 켠을 가리키며 깜꼬노라 화산을 말하고 다른 한 켠은 또소아라 이야기 합니다. 그 말에 힘이 쏟아 큰소리로 “또소아”를 외칩니다.
절벽 사이에 지그재그로 난 신발 폭만 한 길을 이리저리 헤쳐 갑니다. 끝이 없는 듯 한 내리막길이 한참 만에 끝나고 이제 평탄한 길로 접어듭니다. 이 길도 만만치 않습니다. 바나나 농장 같은데 고목들이 수없이 쓰러져 있고 우리는 그 쓰러진 매끈한 줄기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갑니다. 바나나가 워낙 밀생해 있어서 수시로 바랑으로 쳐내며 길을 만들어 갑니다. 강에 가까워져 가는 건지 이제 숲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허벅지 까지 오는 강을 두 개 건넙니다. 도중에 비가 쏟아집니다. 솔래만이 커다란 잎을 잘라 하나는 자신이 쓰고 하나는 제게 줍니다. 그게 바로 거기의 우산입니다. 그래도 앞쪽과 어깨 쪽은 다 비를 맞습니다.
이미 5시까지 약속한 시간은 한 시간 반가량 훌쩍 지나 있습니다. 마을이 가까워 오자 짐이 비교적 가벼운 사께우스가 혹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들에게 전하기 위해 선두에 나섭니다. 결국 11시간 만인 저녁 7시경에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아리스가 반기며 그들은 식사를 하러 갔다면 다시 올 거라고 합니다.
물에 젖은 장화와 양말을 벗어 알렉스에게 줍니다. 도착하면 제가 주기로 약속했거든요.
이 분들이 너무 고생을 하는데 비해 노임이 너무 적어서(50,000루삐아/일일, 우리 돈 오천 원) 더 드리고 싶어도 회사 방침이어서 담배나 다른 물품으로 지급해야 했기에, 물론 담배도 사드리고 제가 가진 것들을 당장 필요한 것 이외에는 다 줍니다. 꼭 입을 옷 이외에는 모두 갖다 줄 생각입니다. 구멍 난 양말이지만 잘라서 장화 안에 신으면 종아리 부분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음료수를 사서 권하고 각자의 짐을 챙기며 남은 음식들은 나누어 줍니다.
노임을 챙겨주고 있으니 픽업하러 선배가 왔습니다. 식사를 하러 단 한 곳에 있는 식당에를 갖는데 문을 닫아 식사를 하지 못했다 합니다. 사께우스 집에서 부인이 내놓은 튀긴 바나나를 커피와 함께 먹으며 간단히 요기를 합니다. 아리스에게 짭띠꾸스를 4병사고, 자이롤로 사무실로 복귀합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씻고 모처럼 편안한 잠을 청합니다.
25일 일요일 오전 9시 15분 경 사무실에 있는데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그냥 집이 흔들리나 보다 그리 단순히 생각을 했는데 이어지기에 지진에 생각이 미치려는 순간, 선배가 지진이라 합니다.
진앙지는 어디인지 모르나 상하운동을 느꼈고 곧이어 좌우로 흔들립니다.
여기는 화산대로서 화산 폭발 전에 지진이 수반된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바깥에 뛰쳐나갔더니 숙소 바로 옆의 자이롤로산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선배 이야기로는 이 정도의 강도는 진도 7이상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원주민들이 사는 집들이야 목재와 함석지붕으로 만들어져 큰 피해가 없지만 우리들이 거주하고 있는 집은 지진이 오면 그대로 주저 앉아버리니 오히려 위험도가 높다는 거지요.
자이롤로에 있는 사무실이자 숙소 전경
오늘은 연일 강행군으로 지친 심신에 휴식을 주고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너무 졸려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났습니다.
자이롤로 사무실 뒤편의 화산과 코코넛 그리고 저녁노을
자이롤로 사무실 뒤편의 일몰
숙소이자 사무실로 쓰고 있는 자이롤로 이 집에는 여성 세 분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미혼인 원주민 처녀는 사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고, 다른 한 분은 식사를, 또 다른 한 분은 청소와 세탁 등을 맡고 있습니다.
선배 이야기로는 여기서 남성들의 일자리가 거의 없는 판국에 여성들의 일자리는 더더욱 없는 형편이어서 이 집에서 일하는 두 여성분은 소위 상당히 끗발이 있는 집안의 출신여성인 연고로 일하게 되었다 합니다.
한 분은 광산과 직접관련이 있는 광무과장의 처제며, 한 분은 유력한 동장의 집안이라 하는군요. 하지만 그런 저런 걸 떠나서 성실히 순박하게 일하는 모습들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자이롤로 사무실 뒤편의 저녁노을
이 분들이 오늘은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고 모처럼 부탁을 했다며 차를 타고 바닷가 일대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찍은 사진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보고 있습니다. 수시로 화면을 보며 탄성을 지르곤 합니다.
뒤쪽 좌측이 노르마동생 노르나일라, 우측이 노르마, 앞쪽이 마리얌
바닷가래야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적인 곳이 아니고 전혀 편의 시설이 없이 그야말로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아주 더운 곳입니다. 하지만 갇혀 지내는 여성들에게는 그런 바깥바람도 필요한 것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바라는 요소인가 봅니다. 바다나 부두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사무실 분위기가 바뀌는군요.
저는 지금 까르투 뭐로 시작되는 병원의 침대에 누워 뒹굴 거리고 있습니다.
어제 복귀보고도 할 겸 떼르나떼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했거든요. 말미에 병원에 가봐야겠다니 새벽같이 부두로 운전기사와 함께 데리러 나왔습니다.
잠시 떼르나떼와 자이롤로 간의 배편을 말씀드리면 모두 FRP로 만든 시속 40km 정도의 속력을 내는 배로서 고속정입니다. 크기에 따라 야마하엔진이 작은 배는 두 대 보통은 4대, 좀 큰 배는 6대가 붙어 있어서 좀 빨리 달린다는 것이지요. 요금 체계도 이상하여 시간마다 뱃삯이 달라 이만 오천에서 삼만루삐아 이고, 작은 배가 외려 비싸고, 손님이 가득 차야 출발을 합니다. 제일 작은 배는 4명을 태우면 가는데 그 뱃삯은 한 명당 30만 루삐아입니다.
쾌속정 사진
운 좋게도 고속정 위에서 선배가 찍은 돌고래 유영
어쨌든 땀에 젖은 바지와 장화에 스쳐 모기에 물린 자국들이 헤지고 곪기를 반복한지 일주일가량 되었는데, 이제는 아린 통증이 무척 심합니다. 오른손 바닥의 상처도 화농되어 깊숙한 통증이 수시로 느껴집니다. 어젯밤에도 잠시 눈을 붙였다가 통증으로 깨어 새벽 5시가 넘어서야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주사바늘을 유독 싫어해서 웬만하면 병원가기를 꺼려하는 저로서 입원은 난생 처음입니다. 여기 관리소장이 어렵게 가져온 항생제로 대충 치료 하려는 의도를 비추자 앉은 김에 쉬어 가라며 그래도 입원하라기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병원이지만, 혼자 쓰는 특실이라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면서도 무료 합니다. TV는 저 혼자 떠들고 에어컨이 나와서 쾌적합니다.
간호사들은 외국인인 저에 대해 관심 있어 하는 눈치입니다. 이리저리 말을 붙여 보지만 통하지 않으니 미소만 띕니다. 모두 순박하면서 상냥한 미소가 넙칩니다. 황토로 얼룩진 팔다리를 식염수로 씻어주고 연고를 발라줍니다. 관리소장은 여기 식사가 불실할 거라며 한국식 밑반찬이 들어 있는 도시락에 열대과일이 든 후식까지 다시 와서 챙겨주고 갔습니다. 그간 피곤이 많이 쌓여서인지 첫날은 낮이고 밤이고 푹 잤습니다.
병원 바깥은 한적한 주택가입니다. 그나마 맞은편에 작은 상점이 있어서 간식거리나 음료수 등을 살 수 있습니다. 밤에 수납 쪽에 간호사 4명이 보이기에 음료수를 사서 나눠 주었는데, 글쎄 그 사이에 한 명이 더 와있는 것입니다. 나머지 한 명이 왜 자기는 빼느냐고 농담조로 항의하기에 “쏘리”를 연발하면서 가게라는 현지어로 “또꼬”를 되풀이하며 지갑에서 5,000루삐아를 건네주었습니다. 제가 거동이 좀 불편하니 대신 사먹으라는 표현이지요.
모두들 깔깔거리며 웃더군요. 사실 임금에 비해서 음료수나 담배 등은 서민들이 선뜻 사기 쉽지 않은 물건입니다. 음료수 한 캔이 우리 돈으로 오천 원이라면 누가 선뜻 사먹겠습니까? 물론 우리 돈으로 대충 오백 원이니 우리 입장은 또 다르지요. 자이롤로 경비 봉급이 100만루삐아이니 대충 우리 계산으로 백만 원으로 치는 겁니다. 병원 안팎을 뛰어 다니며 노는 아이들에게 1,000루삐아 씩 나눠 주니 좋아라! 하고 주변에 자랑을 합니다. 그 모습에서 저의 어린 시절 용돈을 받고 즐거워하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병원 입구 오른쪽 구석에는 조그만 연못을 만들어 놓았는데, 놀랍게도 40cm 크기의 메기가 열한마리나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건져서 메기매운탕으로 쓸 텐데 말이지요.
이 메기들은 제가 과자조각들을 던져줘도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인 양 작은 연못 속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원래 육식성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전혀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를 일입니다.
병원식은 흰죽과 작은 생선 토막을 튀기거나 졸여서 한 점, 닭고기 한 토막을 역시 튀기거나 졸여서 한 점, 그리고 당근, 감자 등을 작게 썰어 넣은 스프입니다. 아침은 그나마 평시의 반도 안 되는 흰죽과 스프가 전부입니다. 여기 사람들은 아침식사를 아주 간단하게 때우는 모양입니다. 대신 점심식사 사이에 간식으로 홍차와 케이크조각을 줍니다.
병원식이 불실하다하여 관리소장이 과일과 별도 도시락을 챙겨 주는 바람에 아주 호사로운 병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천신만고 끝에 뺐던 뱃살이 다시 나오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상처는 병원에서 주는 약을 바르니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하루 만에 화농자리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아물고 있으며, 두터운 딱지가 떨어진 붉은 속살도 아물고 있는 징후가 뚜렷합니다.
산에서 영지버섯 같은 게 많기에 샘플로 두 개를 따와 경륜이 많은 관리소장에게 보였더니 영지버섯이 맞는다고 합니다. 현지인 운전기사도 먹는 거라는 시늉을 합니다. 제가 이번에 갔다 온 지역에는 이 영지버섯이 엄청나게 큰 것(대접 크기만 한 것)을 포함하여 상당히 많은 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산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것은 바로 고동처럼 생긴 조개인데, 고동보다는 더 납작합니다. 이 흰색의 조개껍질이 수시로 발견되는데, 산에서 조개가 서식할 리는 만무하고 곰곰이 생각하던 차 여기가 비록 해안에서 제법 떨어진 내륙지방이라 하지만, 새들이 먹이로 물어와 먹고 남긴 껍질이라 결론지었습니다.
오랜 시간 걸으면서 힘든 탓에 별의별 생각들도 많았지만, 그 가운데 소득도 있습니다.
지행합일이란 내면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와야 한다는 거지요. 충동적이 아닌 마치 숙성되어 밴 듯 말이지요. 진중이란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여기가 한적한 주택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병원 앞의 좁은 도로는 매우 분주합니다.
이 좁은 도로가 그러할 진데 다른 도로 역시 분주합니다. 오토바이의 엔진 소음과 경적 소리가 주를 이룹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다마스 같은 승합차도 빈번하게 다닙니다. 오토바이는 여기서 자가용이자 영업용 택시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택시 승용차도 있습니다만, 그 대수는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 택시는 오토바이이며 이른 아침에는 아이들이나 가족을 학교나 직장으로 보내기 위해 쓰여지고 직장인들의 출근 승객들도 많습니다. 여기는 우리와는 달리 좌측통행이어서 모든 자동차의 핸들이 우리와는 반대편에 붙어 있습니다. 차를 처음 타보면 내부 구조를 보고 웃음이 나옵니다. 물론 수동식 기어는 왼손으로 조작을 해야 합니다. 다마스 같이 생긴 차는 좌측 편이 아예 개방되어 있어서 문이 없는데, 보통 여러 사람들이 타고 있습니다. 특히 이 차종들이 가끔 요란한 음악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합니다.
점심 전에 회사 직원들이 잠시 다녀갔습니다. 별 일도 아닌데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니 쑥스럽습니다. 오후에는 무료하여 병원 우측 길로 해서 최초의 사거리에서 좌측 길로 내려갔더니 시장이 나오고 바다와 부두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시장에는 행인도 거의 없고 거의 휴점 상태였습니다.
저녁식사 무렵에는 떼르나떼에 있는 회사 선배가 다녀갔습니다. 늘 혼자 있는 터여서 말벗이 없어서 그런지 저만 만나면 밤늦도록 경험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분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십 수 년을 살아서 내가 많은 지식을 가르쳐 준 분입니다.
같이 온 운전기사의 퇴근시간이 훨씬 지나 아쉬운 작별을 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소화도 시킬 겸 다른 코스로 산책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사거리에서 우측 길로 갔는데, 거기서 마주친 도로는 조금 어둡지만, 교차로에는 신호등도 있습니다. 가로등이 없어서 거리는 어둡지만, 장사하는 집들이 있어서 다닐 만합니다. 한 쪽의 인도는 좁은데다가 어린 가로수를 보호한답시고 나무틀을 짜서 인도 전체를 막고 있기도 합니다. 별다른 구경꺼리는 없고 경찰서가 보이고 가끔 식당이 보이는 정도입니다. 회사에서는 치안이 좋지 않아서 밤 외출을 자제 하라고 했지만, 여성들끼리 다니는 모습도 보이고 집 바깥에서 바람을 쏘이는 이들도 눈에 띕니다.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언젠가 말씀 드렸듯이 이 떼르나떼는 활화산 섬으로 둥글며 끝이 뾰족한 원추형으로 생겼습니다. 다만 섬 가장자리가 다소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지진이 나거나 화산이 폭발하면 실제 도피할 장소가 마뜩치 않은 곳이지요. 드물게 그런 일이 발생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조이게 한답니다.
선배에게 얻은 떼르나떼의 화산사진으로 분화구에서 계속 연기가 나고 있습니다.
떼르나떼 화산의 저녁 원경(분화구에서 연기가 분출되고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왔기에 퇴원하겠다고 하고 의사의 소견 역시 별다른 징후가 없어서 떼르나떼 숙소에서 일박을 하고 자이롤로 사무실로 복귀 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정글 또소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도 인도네시아 정글 8 - 쏘길리 (0) | 2008.01.27 |
---|---|
적도 인도네시아 정글 7 - 정글 속의 현악5중주 (0) | 2008.01.26 |
적도 인도네시아 정글 5 - 돌래르말래우 알 (0) | 2008.01.12 |
적도 인도네시아 정글 4 - 짭띠꾸스 (0) | 2008.01.12 |
적도 인도네시아 정글 3 - 움막 (0) | 2008.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