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이고 있는 깜꼬노라 화산
30일 저녁입니다. 선배는 금요일 오후에 떼르나떼로 나갔습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밤낚시를 가는 모양인데, 여기를 다비우고 다니기 뭣해서 그냥 나가는 것처럼 하고는 갔습니다. 여기 현지 지질직들이 무료하다며 내일 떼르나떼롤 놀러 간다기에 저도 갈까 했더니 그냥 지켜라 합니다. 밤에 잠시 바깥에 나간다기에 따라나섰는데, 전화기 취급하는 곳을 거쳐서 식당에 들어갑니다.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네 어묵 같은 게 나옵니다. 매운 고추양념과 소금 간을 하니 먹을 만합니다. 그 안에는 라면 사리 같은 것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무료하니 커피를 더 마시게 됩니다. 원두커피를 갈은 커피가루를 컵에다가 조금 넣은 후에 끓인 물을 붓습니다. 조금 지나면 커피가루가 물에 젖어 가라앉습니다. 바닥에 가라앉은 커피알갱이를 남기고 위에 진한 갈색물만 마시는 거지요.
오늘은 12월 2일 일요일입니다. 수십 군데에 생겼던 화농자리에는 딱지가 앉고 몇 군데만 빼고 거의 아물었습니다. 할 일없이 밥만 축내니 무료해서 다시 밀림이 그립습니다. 모두들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를 해줍니다. 단단히 혼이 났으니 이제 저도 무리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번에 갈 때는 꼭 입을 못만 제외하고는 모두 챙겨서 헬퍼들에게 갖다 줄 생각입니다. 그들이 즐거워할 생각을 하니 더 가고 싶은 생각이 앞섭니다.
12월 4일 화요일인 어젯밤은 아주 인상적인 밤을 보냈습니다.
사께우스는 지금 아침밥을 짓고 있고 솔래만은 바나나 껍질을 벗겨 얇게 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위 몽키 바나나라고 부르는 종류는 그냥 먹지만, 나머지 바나나는 튀겨서 먹습니다. 그냥 먹어도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당도가 떨어지는 편이어서 튀겨 먹는지 모릅니다.
민박집 안팎에도 개 3마리와 닭들이 돌아다닙니다.
부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병아리들은 어미닭의 뒤를 부지런히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먹이가 별로 없어서 키만 껑충하니 큰 살이 별로 없는 닭들이지요.
나중에 들었지만, 자이롤로에 있는 선배 이야기로는 이 닭들이 잘 때는 꼭 나무 위에 올라가서 잔다고 하는군요. 병아리들은 별도의 나무로 만든 망태기에 가두어 둔다고 합니다.
열흘을 쉬고 또소아에서 가장 가까운 유역을 향해 처음부터 걸어서 출발 했습니다.
이 일대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라보강은 주 하천이자 그야말로 젖줄인 셈이지요.
이 강을 끼고 양쪽으로 수 Km 씩은 평탄한 대지입니다. 주로 코코넛농장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코코넛에서 짠 팜유가 여기 사람들의 주 수입원입니다.
우리는 수심이 얕은 두어 개의 샛강을 건너 뚱구네넹강에 이르렀습니다. 여기는 강폭이 넓고 수심도 조금 있어서 건너편에 매어진 뗏목을 이용해서 건널 계획인 모양입니다. 짐을 벗은 사께우스가 강을 건너 뗏목을 끌고 옵니다. 여기 뗏목은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것으로 사람이나 짐이 많으면 바닥이 자연히 잠깁니다. 우리는 짐이 젖지 않도록 조심하며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넙니다.
강을 건너 언덕길을 올라가니 넓은 공터와 웬 집이 있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쉬고 있자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퍼붓기 시작 합니다.
GPS로 체크를 해보니 우리가 당초 가야할 지역과는 수 킬로미터 이상 벗어나 있습니다. 솔래만에게 지도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했더니 자고 내일 가자고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짐을 풀고 이 집에 하루 묵게 되었습니다.
점심스프는 급히 만든 훈제 가다랑어 국으로 조금 밋밋합니다.
주인이 마치 수액 같은 음료를 권하는데 마셔보니 조금 시큼하며 알코올기가 있는 듯합니다. 확인해 보니 맞습니다. 바로 짭띠꾸스를 증류하기 전의 발효주인 사구에르입니다.
새호라는 나무의 열매로 만듭니다. 대낮부터 술판이 벌어집니다.
식구가 몇 안 되는 외딴집 같은데 사람들이 불어납니다. 얼굴이 비슷해서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같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사람들이 제법 됩니다. 여자는 보이지 않고 삼대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 같은데 부자가 술과 담배를 권하고 피워댑니다.
손으로 만든 만돌린 같은 조악한 악기가 보이는데, 처음에는 장난감인가 했지요.
첼로처럼 보이는 큰 현악기도 있었는데 판재를 다듬어서 만든 것으로 줄은 두 줄 밖에 없고 투박한 판재로 만들어져 제법 묵직합니다. 이 악기는 줄을 타는 게 아니라 바닥에 눕혀놓고 나무막대기로 중간 고정부 주변 줄을 두들겨 소리를 냅니다. 저는 열흘 쉬는 동안 잠깐씩 낮잠을 자던 습관에 술기운이 올라 잠시 알렉스의 권유로 방에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습니다. 방을 살펴보니 벽은 판자로 만들어졌는데, 지붕은 야자 잎을 정교하게 엮어서 비가 새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침상위에 쿠션은 야자 잎을 엮어서 만든 것으로 시원하면서 푹신합니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을 때까지도 술판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술에 약한 건지 사께우스는 반 글라스의 사구에르를 마시고는 취해서 그 자리에 누워 자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얼핏 보기에 우리로 치면 중학교 3학년 또래정도 되었을까요? 아까 말씀드린 현악기를 연주합니다. 마음씨 좋은 주인은 마냥 주변에 사구에르를 권합니다. 처음에는 현악기를 만지작거리며 연주하던 두어 명의 아이들이 나중에는 여섯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제가 관심을 보이자 아이들이 열창을 하면서 신명나게 연주합니다.
한동안의 열창과 연주에 달리 보답할 길이 없어서 만 루삐아 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닭국을 끓여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사구에르를 마냥 마셔대니 4ℓ가량 되는 플라스틱 통이 2개째 동이 나려하자 주인은 술을 가지러 간다며 어둑한 집밖으로 나섭니다.
웬 아이들이 그리 많을까 했는데, 저녁식사 때는 네 명의 아이들이 먹습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바깥이 제법 어두워졌습니다. 어둑해질 밤 무렵에 아이들이 몇 명 강을 건너 왔습니다, 그때가 대략 6시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 만돌린 보다 조금 작은 현악기가 4대, 첼로 같은 악기가 한 대, 나머지 아이들은 스푼 뒷부분을 마주하게 하고 그 사이에 다른 스푼을 끼웠다 뺐다를 반복하며 장단을 맞춥니다.
남국에서 벌어지는 한여름 밤의 연주회가 연출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과 그들의 협연이 증폭이 되어 신명나는 한판이 벌어집니다.
늘 조용하던 외딴집에 외국인인 제가오니 그들의 관심이 더 클 수밖에 없고 저는 열렬한 박수동조를 하니 그 분위기를 더욱 고조 됩니다. 그야말로 남국의 정글에서 벌어지는 저만을 위한 공연입니다. 쉬지 않고 권하는 주인의 술도 한껏 분위기를 고조 시킵니다.
현악 4중주
저는 흥이 나서 음악에 맞춰서 현무를 덩실덩실 춥니다.
달리 사례할 길이 없어서 솔래만을 통해 그들에게 주라고 10만 루삐아를 건네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만 주기 뭣해서 어른들에게도 5만 루삐아 씩 나눠주었습니다.
저만을 위한 특별공연에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대체로 그들의 노래는 경쾌하면서도 빠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조로운 구절이 반복되어 감성을 자극하는 애잔함을 띠고 있습니다. 그 애잔한 노랫소리와 연주가 밀림의 밤하늘을 울려 퍼집니다.
현악 5중주
그들의 오랜 세월 쌓아온 애환과 서려있는 한의 단면을 보는 듯 합니다.
한 여름 밤의 연주는 무려 9시 반까지 계속되었고 저는 양해를 구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연주와 합창으로 하나 되는 모습에서 음악이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천막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요란합니다. 지금은 아침을 먹고 출발하여 우리의 당초 목적지인 밀림에 와 있습니다. GPS로 확인을 해보니 정확히 원하던 목적지에 와 있습니다. 헬퍼들도 길을 정확히 모르는지 중간 중간에 있는 집과 도중에 만난 사람들에게 자주 묻곤 했습니다.
어제 잠을 잔 민박집에 아침이 되자 그 부인과 막내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왔습니다. 만약 아침에 보지 못했다면 혼자 억측을 했겠지요. 여기 사람들은 아침식사를 가볍게 하나 봅니다. 튀긴 바나나 몇 조각을 먹고 맙니다. 우리만 밥을 지어 제대로 먹습니다. 남자주인 만이 우리의 권유로 같이 식사를 합니다. 주인은 아침임에도 우리에게 사구에르를 권하고 저는 사양 않고 마십니다. 부부와 할아버지, 아들 넷과 딸 하나 이렇게 살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침에 보니 비슷한 연령으로 보이던 형제들이 얼굴에서 나이 차가 나타납니다. 큰 애 둘은 성인 같고 밑에 둘은 우리로 치면 중학생과 고등학생 또래로 보여집니다.
그들의 환송을 뒤로 하고 우리는 평평한 숲길과 개울을 건너며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모기에게 언제 물렸는지 가려움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한 탓으로 평지를 걷는데도 힘이 듭니다.
도중에 민가에서 두 번 쉬었는데, 한 곳에서는 외국인이 외진 곳에 찾아온 게 신기한지 쉬고 싶은데도 성가시게 이것저것 계속 말을 걸어옵니다.
모두들 저만 쳐다보며 반응을 예의주시하니 성의껏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중 한 집에서는 제법 쉬었는데, 괜찮은 암석샘플을 쪼개 주면서 그 위치를 설명해 줍니다. 아쉽게도 다른 조사팀의 영역으로 그 상류부가 우리의 조사지역에 해당됩니다. 쉬고 있는 동안 새소리가 하도 요란하여 다가가니 놀랍게도 사람 말을 잘 따라 한다는 붉은 앵무새 4마리가 각기 발목에 사슬과 끈으로 묶인 채 활대에 앉아 있습니다. 현지어로는 무롱노리라 불리는군요.
현재 만든 움막의 침상은 대나무를 쪼개 만들었습니다.
가까운 개울가에 가니 작은 폭포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만 물은 그리 맑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강력한 권유로 가져온 하늘색 모기장을 침상 위에 쳤는데, 하늘거리는 게 마치 신혼방 분위기가 납니다.
헬퍼들에게 미안하여 모기에게 물린 후유증으로 3일간을 입원했으며 저의 보스가 휴대하라 했다고 둘러대었습니다. 물파스를 잔뜩 발라 가려움증을 재우고 나니 한결 컨디션이 살아납니다. 모기장 너머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니 마치 휴양이라도 온 기분입니다.
무슨 일인지 이번에도 아리스는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게 짭띠꾸스 한 병을 챙겨 주었습니다. 솔래만이 오늘 저녁에 먹을 닭을 손질하고 있습니다.
양념을 가미해서 튀긴 닭을 안주삼아 짭띠꾸스를 꺼내 사께우스 그리고 아리스 대신 온 욘과 한 병을 비웠습니다.
밤에 한숨을 자고 일어났는데, 짭띠꾸스를 먹은 탓인지 몹시 가렵습니다. 모기들이 문 자리가 잔뜩 성이나 있습니다. 속까지 메슥거립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 누웠는데 구토증세가 생겨 일어나 개울가로 가면서 토합니다. 개울물로 세수를 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기분이 꺼림칙하며 썩 좋지 않습니다. 다시 개울가로 가서 토하고 나니 이번에는 설사증세가 생깁니다. 속을 알뜰히 비우고 나니 정신이 맑아집니다. 지난번에 쓰다 남은 팜유를 써서 요리한 탓인지? 아니면 물갈이 영향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정신이 모처럼 맑아 좌정을 하고 잠시 수련을 합니다.
조금 후에 사께우스가 일어나더니 커피를 마시겠냐고 묻기에 물과 홍차를 부탁했습니다. 속이 좋지 않아서 물을 세 병이나 마셨는데, 토하고 보니 속을 재우기 위해 물을 더 마시고 싶었지요. 제 컨디션을 회복하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밤에는 제법 추운데 배낭을 뒤져도 슬리핑백이 없었습니다. 추위 때문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습니다.
날이 밝아 다시 배낭을 확인해 보니 어제 뒤지던 배낭 바닥에 슬리핑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움막을 친 옆에 길이 나 있는데, 아침에 아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4명이 올라옵니다. 여기 아침인사로 “빠기”를 나누고 세워서 천 루삐아 씩 줬습니다.
우리가 아침을 먹을 즈음 그 아이들이 다시 내려오는데, 한 아이의 손에는 발목이 잡힌 중닭 크기의 검은색 돌래르말래우가 잡혀 있습니다. 애들이 어떻게 그걸 잡은 건지 신기합니다.
식사 후에 발목에 상처가 있는 솔래만과 새로 합류한 욘은 움막에 남고 우리는 라면과 남은 밥을 싸가지고 조사를 나갔습니다. 몇 계곡을 뒤졌는데, 놀라운 것은 평지와 인접한 작은 계곡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들어가면 제법 규모 있는 폭포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로서 금광 광산의 개발 여지는 적은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만, 만약 그러하다면, 이곳에 발자국을 남긴 한국인은 유일하게 저 혼자가 될 것입니다.
조사를 끝내고 폭포 옆길로 접어드니 직벽 아래 간신히 발하나 디딜 공간이 있습니다. 나무줄기를 잡고 조심스레 이동합니다. 다시 평지로 접어들어 한 농가에 이릅니다. 주인이 없기에 준비해간 버너로 라면 을 끓이고 식은 밥과 함께 점심을 해결합니다.
여기 평지는 드문드문 농가들이 있고 사람들이 반겨서 우리들은 몇 집에 들러 그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어서 우리는 후잔(비)을 핑계로 종종걸음으로 움막에 복귀합니다. 머지않아 비가 쏟아지고 저는 지금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는 수질이 좋지 않아서 인지 빗물을 받아서 식수로 사용합니다. 빗물을 받기 위해 천막 가장자리에도 빈 그릇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지난번 조사 때에 무리한 후유증으로 기침이 멎지 않습니다.
거의 운동량이 없이 오랫동안 지내다 갑자기 여기 밀림에서 강행군을 하다 보니 숨이 차서 계속 강한 호흡을 한 탓으로 기관지 점막 깊숙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작은 개울에 있는 폭포들
그 손상된 점막이 자극을 받으면 기침이 격하게 나오며 깊숙한 곳이어서 심하면 구토 증세와 겹칩니다.
픽업차량과 연락할 길이 없어 강행군을 하다 보니 손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현지인들의 속보에 맞추려다 보니 제 폐가 무리를 했나 봅니다.
어젯밤에 나이를 물었더니 젊은 친구를 빼고 전부 고만고만합니다. 솔래만은 저와 같고 사께우스는 한 살 적고, 알렉스는 두 살 적습니다. 현지어로 친구를 뜨만이라고 하는데, 제가 모두 “뜨만”으로 불렀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밤이 많으니 여러 생각들이 납니다.
어느 잠 못 이루는 밤에는 지난 삶을 반추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대부분 저의 잘못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자위해 보려고 잘한 일들을 상기해 봅니다만, 거의 없습니다. 워낙 잘한 일이 없어서 별것 아닌 것도 후하게 쳐서 셈해봅니다만, 그래도 별로 없습니다. 선악은 무엇이고 그 기준은 또 무엇인가? 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여기 사람들은 순박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순박한 삶이라 해도 성공적인 삶은 아니라는 결론은 쉽게 내려집니다. 부끄러운 삶 가운데 한 가지 위안은 게으르지만, 그나마 수련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관한 결론은 좀 더 세월이 흐른 뒤에 깨달을 날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12월 7일 금요일 오늘은 다른 유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가파른 칼날 능선을 타고 오르다 보니 처음으로 멀리서 보이는 깜꼬노라화산이 보입니다. 봉우리는 여전히 구름에 싸여 있습니다.
구름을 이고 있는 깜꼬노라 화산(우측, 좌측은 이부화산입니다.)
우리가 오른 산 정상은 평평하며 코코넛 밭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동거리는 머지않아서 점심 전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산막 하나가 있어서 우리는 거기에다가 짐을 풀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밭이 있어서 그런지 솔래만은 야생바나나를 잘라와 껍질을 벗기고 튀겨내 옵니다. 그냥 먹어도 괜찮은데 왜 튀겨 먹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로 식은 밥을 보관할 때 바나나 잎에 납작하게 싸서 보관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 묵었던 민박집에서 납작하게 바나나 잎에 싼 식은 딱딱하게 뭉쳐진 밥을 마치 칼로 자르듯 스푼으로 잘라 스프에 말아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사할 지역은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은 샛강이 합류되는 곳입니다.
제법 규모 있는 강인데도 말이지요.
지난밤도 모기에게 물린 후유증으로 잠들지 못하고 힘들었는데 의외로 목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려움으로 잠 못 이룰 때 알렉스가 현지어로 “만디”, “만디” 하기에 상처가 덧난 곳이 많고, 금새 바른 약이 아까워서 사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목욕을 해보니 가려움증이 바로 해소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도 도착하자마자 강물에 들어가 몸부터 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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