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인도네시아입니다.
벨리즈에는 빌딩석재였지만 이번은 금입니다.
11월 3일 오후에 출국, 자바의 자카르타까지 비행기로 8시간, 마나도까지 3시간, 떼르나떼 1시간 비행기를 갈아타야하며 마나도까지는 바로 가는 편이 없어서 이틀간 대기합니다.
떼르나떼 라는 곳에서 현장사무소가 있는 서 할마헤라군 자이롤로 까지는 고속정을 타고 한 시간가량 소요됩니다.
다시 차량으로 비포장도로를 타고 한 시간 이동, 거기서부터 조사지역까지 이동은 도보로 이틀가량 소요됩니다. 물론 길을 만들며 이동합니다. 지나친 길은 이미 조사가 된 지역이므로 항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왕복 이동에 4일이 걸리고 되돌아와서 정비하고 준비하는 기간을 감안하면 열흘 단위로 생활패턴을 정해야 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강행군을 고려하면 장비보다도 식량 때문에 일꾼과 요리사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벨리즈에서는 주말에 인터넷 이용이 가능했지만 여기는 그조차 불가능합니다.
무선전화기가 지급된다니 수신 안테나가 있는 곳에서는 국제 전화까지 가능하겠지만, 밀림에서는 그도 불가능합니다. GPS조차도 밀림 안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제가 조사할 지역은 인도네시아 북 말루꾸주 서 할마헤라군 정글이 숙소이자 현장입니다.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일 년에 약 이백만명이라고 하는데, 말라리아에 관한 한 인도네시아가 최고의 의술을 자랑한다고 하니 그만큼 발병률이 높다는 반증이지요.
말라리아 다음은 댕기열이라는 풍토병입니다. 정글 안에는 거머리도 만만치 않다 합니다.
전임자는 주거지와 가까운 지역을 조사하면서 예방약을 먹으면서 주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에 걸려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귀국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들이 저의 호기심을 더 자극했습니다.
이러한 곳에서의 근무제의를 받자마자 저의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으니 심각한 저만의 병이 아닌가도 생각해 봅니다.
어느 누구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일이라고 이야기할 때 바로 적임자는 저라고 생각 드는 게 오만인지 어쩌면 수련의 부작용인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는 수련에 대해 보다 철저히 준비를 했습니다. 시디플레이어, MP3, 노트북 모두에 물소리를 집어넣었습니다. 물론 정성을 드리고자 녹차까지 준비했습니다.
‘도법의 씨앗을 뿌린다! 는 심법은 이미 가동되고 있습니다.
중간에 소식을 전할 수 없어 유감입니다.
11월 2일자로 채약 2분 운기를 하라 하셨으나 출장준비와 여러분들께 인사하느라 복습에 시간을 더 할애 하려 합니다.
저의 채약을 기다리는 많은 분들은 좀 더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셔야겠습니다.
드리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아직 엄명이 있어서 3개월 이후를 기약해야겠습니다.
3개월 이후에 채약을 가지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인천공항에서 11월 3일 오후 3시 20분 비행기 편으로 자카르타로 출발하다.
현지시간으로 8시 30분 도착이니 우리 시간으로 밤 10시 30분으로 7시간 남짓 걸린 셈이다. 인도네시아어를 모르지만 한국인들이 심심찮게 띄어 묻기도 하고 대충 감으로 수속을 마치고 나서니 현지 임원 분이 마중 나와 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자카르타 도시는 상당히 넓어 보이고 공항에서 이틀을 묵을 예정으로 있는 물리아 호텔까지 제법 거리가 멀다.
호텔 입구에는 공항처럼 경비가 삼엄하게 검색대를 통과하게 하고 소지품을 하나하나 검사한다.
예전 발리 섬에서의 폭탄테러, 종교 간의 갈등으로 인한 수백 명의 사상사고 등의 영향으로 앞으로 가게 될 현지도 대사관에서 비자연장을 자제하는 지역이라 한다.
입국수속과 호텔이동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 터여서 늦은 시간에 수면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는 도중에 수시로 깨다.
다음날 점심은 현지 임원 분과 같이 인도네시아 음식을 손으로 밥알을 뭉쳐 먹어 보다. 식 후에 국립박물관, 주택전시관 등을 관광하다.
뜨거운 적도 지방에 인구 2억 이상의 나라가 있다는 것도 놀라우며, 불교, 힌두교, 유물이 상당하며 문외한인 내 눈에도 몇 불상들은 정교하면서도 작품성이 뛰어나 박물관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힌두교 불상 등은 다채로우면서도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표현을 보이는데 전시공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조금 방치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일다. 중국과의 교역도 활발한 영향으로 수많은 도자기들이 별도의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다.
국립박물관 힌두유물 전시실에서
자바원인이라는 원시인의 유골에 대해 배운 적이 있지만, 구석기 신석기 유물등과 함께 찬란했던 종교유적들을 보게 되니 막연히 적도 지방에 대해 지니던 다소 부정적인 선입견들이 사라지게 되는 계기가 되다.
주택전시관들은 무척 넓어서 차량으로 이동하며 몇 군데를 들르고 사진을 찍다.
저녁은 한국 식당을 찾아 소주도 한잔 걸치다.
다음날은 오전 5시 반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조금 일찍 눈을 붙였는데 역시 자다 깨다 하
다 .
주택박물관
주택박물관(힌두사원)
3시에 일어나 급히 컵라면에 물을 붓고 떠날 채비를 하다. 3시간 거리의 마나도를 거쳐 다시 1시간 거리의 할마헤라의 떼르나떼로 이번에는 프로펠러 비행기로 이동하다.
여기는 지금 우기입니다. 우기라 해도 그리 많이 내리지는 않고 조금씩 오기도 하고 안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할마헤라의 주도인 떼르나떼 숙소 앞은 통행량이 무척 많아서 밤늦도록 오토바이의 엔진 소음이 심합니다. 떼르나떼는 아주 작고 둥근 화산섬인데 동측으로 도심지가 밀집해 있습니다. 여기는 한국과 시차가 같은데도 첫날밤 자다 깨다 합니다. 네 시 반경에는 모스크에서 무슬림들의 기도를 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장엄하고서 다소 구성진 육성이 듣기에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중간에 경유한 마나도는 대부분이 기독교가 성행하고 떼르나떼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반반이고 전체적으로는 무슬림이 대부분인데 종교 간의 알력이 일부 지역에서 발생하고 이어서 당국의 촉각을 늦추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여기에는 종교분야를 관장하는 종교성이 있어서 각 종교를 관할하고 있는데 직접적인 선교활동은 불법으로 간주되어 처벌된다고 합니다.
자이롤로에는 대부분이 모슬렘이지만 교회도 엄청나게 많다고 합니다. 그만큼 선교활동이 활발했던 증거입니다.
네덜란드의 오랜 지배를 받아오는 동안 팁문화에 익숙해져 있는데 익숙지 못한 저로서는 어떤 상황에 어느 정도의 돈을 줘야 하는지 몰라 수시로 묻곤 합니다.
여기 화폐는 루삐아인데 우리네 대충 계산으로는 원화와의 비율이 10:1 정도이며 물가는 3~4:1로서 국민소득에 비하면 다소 높으며, 여기도 우리나라와 같은 시기에 IMF가 닥쳐서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 합니다.
제가 조사할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깜꼬노라화산은 화산은 활화산 중에 하나로 얼마 전에 분출하여 언론에 보도되었으며 현지 주민은 3일가량 대피 후 다시 복귀하였다 합니다. 제 선배 중의 한 분은 그 흔적을 확인코자 현장에 방문하였으며 열에 탄 흔적과 식은 용암을 확인하였다 합니다. 여기 활화산들은 정상의 분화구가 연기가 나던가? 그 분출되는 열기로 인해 수목들이 자라지 못하고 열에 탄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깜꼬노라화산의 폭발이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보도되자 서울에 있는 본사에서는 놀라서 안전여부를 묻는 전화가 불이 나게 왔었다는 선배의 전언입니다.
구름이 덮여 있는 깜꼬노라 화산의 꼭대기는 화산폭발 시 열로 인해 수목이 말라죽어 있습니다.
사진은 선배에게서 얻은 것입니다.
사진은 깜꼬노라 화산 폭발 시 또소아 주민들이 대피한 사진으로 역시 선배에게서 얻었습니다.
현재로서 우리는 이 활화산의 가장 가까운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조사지역도 이 활화산에서 발원된 수계를 대상으로 조사하고 있으며 여기의 물로 식수를 사용하거나 씻기도 합니다.
이 일대는 코코넛 농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이 코코넛은 수확 후에 팜유로 가공되어 팔려나가는데, 수확을 위해 도처에 비를 피하거나 쉴 수 있는 농막들이 드문드문 있습니다.
농막에서 하루를 보내고 불가피하게 이틀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농막에서 좌측에서 우로 아리스, 알렉스, 솔래만, 사께우스
남자들만의 생활이어서 음식은 아주 단조롭습니다. 현지 라면과 밥입니다. 다행히 떼르나떼 한국인 관리소장이 한국 밑반찬을 넉넉히 싸주어서 별 어려움 없이 끼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헬퍼들이 네 분 동행 하는데 오늘은 새로운 요리를 시도 합니다. 인근에서 캐온 고구마를 씻어 튀김도 간식으로 먹고, 가다랑어 훈제를 작게 잘라 양념을 넣고 볶습니다.
너무들 순박해서 나이를 떠나 금새 친구가 되었습니다.
화산 바로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규모 있는 하천이지만 고기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8일 탐사에 개울을 거슬러 오르며 가는 도중에 일행 중에 한 분인 솔래만씨가 지질햄머의 뾰족한 부분으로 모래톱의 얕은 물속을 내려치기에 보니 작은 메기 한 마리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퍼덕이고 있습니다. 얼른 제지한 후 물밖에 빠져나온 놈을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그야말로 원시림에서 날벼락을 만난 물속의 친구였습니다.
숲에서의 첫날인 7일 어제는 전혀 씻지 못한 채 잠을 청했는데 오늘은 강물에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합니다. 벌거벗은 몸을 강물에 담구려니 이상한 목소리의 새가 흉이라도 보듯 짖어댑니다.
지질학에서 초생수, 처녀수라는 별스런 용어가 있는데, 문득 그 단어가 떠오릅니다. 물론 그와는 상관이 전혀 없지만, 이 맑은 물에 양치한 물과 세탁한 물, 비누로 씻은 물로 오염 시키니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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