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드렸듯이 여기 밀림은 코코넛 농장이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다닌 흔적들이 남아 있고 드문드문 농막들이 산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석금(사금과 구분지어 일컫는 표현)을 찾기 위한 첫 조사로 저는 수계를 중심으로 한 분수령을 경계로 구획을 정해 퇴적물을 먼저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밀림을 헤쳐 갑니다. 강바닥은 모래나 자갈로 덮여 있는데다가 고르지 않아 신은 장화 내에 수시로 강물이 들어찹니다. 상류여서 깊지는 않지만, 때로 사타구니까지 빠져 등짐이나 허리에 맨 전자장비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GPS, 디지털카메라, MP3 전구달린 루뻬(고배율 휴대용 확대경)등 여러 품목들을 소지하고 있거든요.
장화 안에 물 뿐 아니라 모래 알갱이도 스며들어 걷는데 조금 불편합니다. 귀찮아서 양말을 신지 않았더니 새 장화이어서인지 이음매에 스친 안쪽 복숭아 뼈 일대 살이 헤져 쓰라립니다.
현장에 랜턴을 하나 밖에 준비해 오지 않았더니 여기 분들이 심지와 등유를 가지고 현장용 호롱을 만들었습니다. 날이 조금만 어두워지면 꼼짝 못하나 했는데, 다행히 저녁식사도 옹색하나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무척 다양하고 많은 새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새 사냥꾼들이 많다기에 무슨 소린가 했었습니다. 주로 붉은 종류의 앵무새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새는 사람들의 말을 곧잘 따라하는 새로서 숲 속에서는 수백m 밖에서도 들리도록 아주 크게 운다 합니다.
이 새는 높은 나무에 서식하나 그 울음소리로 쉽게 발견되는데, 현지인들이 찾아내면 어미 새는 잡지 못하니, 그 큰 나무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 칼(바랑)로 베어 쓰러뜨리고 새끼를 잡아 키워 판다고 합니다. 멸종위기의 보호조 입에도 불구하고 새장에 넣어 집 앞에서 판다고 합니다. 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돌래르말래우라는 큰 새가 있습니다. 10일은 아침 7시 반에 농막을 출발하여 칼날능선을 타고 무려 8시간을 걸어 오후 3시 반에 당초 계획하였던 땃뚱(현지인들의 표현)이라는 강에 도착 하였습니다.
얼마나 칼날 능선인지 도처에 나무 한그루가 달랑 능선 정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양쪽은 백 길 낭떠러지입니다. 이 칼날 능선에는 사람들의 손길을 타지 않은 큰 나무들이 많은데, 고사목 아래 땅굴을 파고 사는 이 새의 둥지를 발견한 사람들이 한군데에서는 돌래르말래우 알을 4알, 다른 한 군데에서는 1알을 채집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알이 오리 알보다도 훨씬 큽니다만 불행하게도 그냥 저녁 반찬이 되었습니다.
10일의 8시간 이동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는 이동 시 개천을 만나면 신발을 신은 채 그냥 건넙니다.
한동안 걷다가 갑자기 모두 멈추더니 짐을 내리고는 각자의 짐을 모두 합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배낭을 미처 2개 밖에 준비하지 못했기에 보따리래야 큼직한 우리네 80kg짜리 비닐 쌀부대였습니다. 걸더니 익숙한 솜씨로 가르다란 나무를 자르고 껍질을 벗기고 멜빵을 만들었습니다.
도중에 앞을 가리키기에 바라보니 거대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거기를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앞장을 서서 잔뜩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발 디딜 곳을 확보하며 익숙하게 올라갑니다. 저도 혼신을 다해 기어 올라갑니다.
솔래만과 돌래르 말래우 알(손에 잡고 있는 것이 돌래르 말래우 새끼입니다.)
한 발을 디딜 때 마다 나뭇가지나 뿌리를 잡지 못하면 큰일 납니다. 거의 쓰지 않던 팔 근육의 고통도 있지만, 진퇴양난의 어려움 속에서 절벽을 오르자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탈진합니다. 고무장화로 인해 내측 봉숭아 뼈가 몹시 아파 샌들을 신고 올랐더니 잘 미끄러지기도 하려니와 뿌리나 넝쿨에 걸려 걷기에 몹시 힘듭니다.
사람들의 자취가 보이지 않는 밀림 안을 그들은 용케 길을 찾아 걷습니다.
아마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제가 이 지역은 최초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결국 점심을 먹고는 내리막길에 발을 높이 하여 제법 쉬었습니다.
도착지 내리막 절벽에서는 결국 미끄러지며 추락할 위기가 있었는데 간신히 풀줄기를 잡아 아슬아슬 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착 즉시 숙소로 쓸 움막을 뚝딱 지었습니다.
그들이 옆구리에 항상 차고 다니는 바랑만을 이용해서 모든 움막을 지었는데, 지붕과 바닥은 야자 잎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야자 잎으로 경사지게 지붕을 만들고 바닥도 야자 잎을 깐 그 위에 그냥 자는 겁니다.
비가 오면 수량이 급격히 불기에 움막은 다소 높은 물가에 자리 잡습니다.
오는 동안에 인상적인 것으로 라마르라는 평범한 나무는 상처에서 수액이 나오면서 굳어지는데, 하얀 덩어리로서 불을 붙이면 쉽게 타며 검은 연기를 내면서 한참 연소됩니다. 송진 마냥 피식 거리며 불꽃을 수시로 내뿜습니다.
식간랠래라는 나무는 마치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데, 계란노른자 만한 크기로 껍질과 씨를 바랑으로 제거한 후에 맛을 보았는데 덜 익은 탓인지 몹시 시었습니다.
어제 농막에서 모기에게 무척 많이 뜯기었는데, 그들이 이것저것 일을 하는 동안 이 글을 쓰고 있었는데, 모기들의 집중적인 기습을 받았습니다.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가려워서 긁다가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가렵지 않았는데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수시로 가려운제 제법 오래 갑니다. 어떤 종류의 모기는 좀 두터운 작업복을 뚫고 공격을 하는데, 그런 종류의 모기에게 물리면 즉시 무척 가렵습니다.
오는 도중에 불개미에게 물린 자리는 몹시 가려우며 좀 부어 있습니다.
황토 화장품을 가져와서 전체에 발랐더니 가려움증이 사라지고, 모기가 달려들지 않는데 신통합니다.
땃뚱이라는 이 하천은 물은 그냥 떠서 먹어도 될 정도로 깨끗하며 인적이 거의 닿지 않는 원시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워낙 오지여서 칼날능선을 타지 않고는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하류 쪽에서의 접근은 급류와 폭포로 인해 불가능합니다. 모든 하천들은 협곡이며 민가도 전혀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이 현지 헬퍼들이 사는 또소아라는 마을이지요.
일행 중 2명이 밤이 한참 지나도록 오지 않기에 물었더니 근처에 낚시를 갔다는군요. 빈손으로 오기에 허탕인가 했는데, 아침에 “뽀또“, “뽀또“(Photo) 하기에 보니 70~80cm되는 메기도 아니고 가물치도 아닌 가물치 무늬에, 머리는 메기보다 작은 큼직한 물고기가 굵직한 낚싯바늘에 꿰어 퍼덕이고 있습니다. 바다에 사는 곰치와도 닮았는데 물론 이빨은 없습니다. 여기서는 쏘길리라 불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메기의 일종인데 아주 좋은 고기라 합니다. 토막을 쳐서 약간 걸쭉한 스프가 생기도록 기름에 볶아 아침상에 올랐습니다. 메기처럼 쫄깃쫄깃한 맛이 있습니다.
모기에 물린 자리가 황토를 바른 덕분에 더 이상 많이 물리지는 않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또 가렵습니다. 한 이백 여 군데 이상 물린 듯 합니다. 말라리아 때문에 모두들 주의하라 했지만, 야영하는 동안에 어쩔 수 없습니다. 현지에 적응하려면 일일이 대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말라리아에 대한 우려는 이미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그 문제까지 생각하면 아예 일을 포기해야 합니다. 몹시 가려울 때는 준비해온 신선의 아침 연고가 약간 따가우면서도 가려움증을 재워줍니다. 다음 날 아침에 가려움증이 재발해서 황토를 다시 발랐더니 마르면서 팔다리가 원시인들 마냥 울긋불긋한 치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발목 안 쪽 복숭아 뼈 여기를 경락상 곤륜이라고 합니다. 곤륜산에서 떠왔는지는 확인해봐야 합니다. 곤륜에서 약간 뒤쪽으로 양쪽 발 모두 맨발에 장화를 오래 신고 다닌 탓으로 헤진 부분이 몹시 따갑습니다. 이상한 것은 곤륜 아래쪽과 뒤쪽으로 오목한 부분이 종아리 방향으로 길게 심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잠을 이루기 어렵고 통증으로 인해 자다가 깨기 일쑤입니다. 물에 들어가기에 겁이나 어제(10일)는 씻지도 않고 잤습니다.
주무르거나 기운을 주입해도 일시적으로 통증이 사라질 뿐 반복됩니다. 혹시 신경이 손상이라도 되지 않았나? 우려할 정도입니다.
알렉스가 잡은 쏘길리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리스라는 현지인과 나더러 쉬라하고 자기들이 석영 맥을 찾으러 가겠다고 합니다. 하도 고마워서 “생큐”를 연발했습니다.
여기는 마치 중국의 장가계 같은 직벽들이 서있는데다가 표피는 화산분출물의 풍화토가 두텁게 덮여 있을 뿐 아니라 나무와 풀, 무릎까지 빠지는 썩은 낙엽들이 덮여 있어서 노두조사는 하천을 따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조사할 지역이 모두 먼 곳이어서 하루나 이틀씩 밀림 속 칼날능선을 타고 이동해서 겨우 두세 지역을 보는 정도이니 어젯밤 잠을 설친 이유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의적인 배려가 고마울 수밖에 없지요.
떼르나떼 현장 사무실에서 챙겨준 밑반찬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권했지만 선뜻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만 빼고 모든 음식을 공유하고 똑같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과는 의사소통이 거의 되지 않으니 제 전공인 바디랭귀지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나 봅니다.
그들이 제 대신 일을 나가고 협곡에 볕이 들자 움막은 훌륭한 웰빙 별장이 되었습니다.
몸이 조금 불편한 아리스는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바랑으로 땔감을 준비하거나 나무를 자르거나 대나무를 쪼개 식기건조대와 식탁을 만들며 부지런을 떨고 있습니다.
바랑은 벨리즈에서는 얇고 기다란 강철제(주로 미국산)를 쓰지만, 여기서는 칼등이 두터우면서도 다소 짧습니다. 하지만 무게 때문에 웬만한 나무는 미국제 보다 더 쉽게 잘려 나갑니다. 숲에 들어갈 때 항상 휴대하는 바랑은 대나무로 만든 칼집을 쓰는데, 칼등은 노출되며 끈과 끝부분이 고리로 쉽게 허리에 맬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칼을 집어넣을 때 마지막을 살짝 누르면 끼게 되어 있습니다.
바랑과 대나무로 만든 칼집
가인사롱을 입고 바랑을 허리에 찬 사께우스
피곤한데도 잠 못 이루며 고민하던 생각들, 언어소통을 위해 충원을 해야 하는가?, 모터보트를 빌려다가 최대한 조사를 해볼까? 이 생각 저 생각들로 잠 못 이루던 밤이었지만, 이 아침은 주어진 환경이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도 긁어서 새까매진 손톱 밑이 부끄럽지도 않고 황토가 칠해져 울긋불긋한 다리 위에서 노는 파리가 한가롭습니다.
아침이면 이동해야하는 터라 마를 새가 없던 옷과 땀에 절고 수시로 물속을 들락거리던 바지도 오늘은 모처럼 말리고 있습니다.
야자잎으로 지붕을 만든 움막(정면이 사께우스, 우측이 아리스입니다)
대나무를 쪼개 만든 식탁과 식기건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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