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장가계 여행기 4

수암11 2006. 9. 7. 15:13

장가계 여행기 4



천자산



원가계 관광을 끝내고 천자산으로 이동 합니다.


버스로 40분가량 이동 하는데, 도중에 양가계라는 관광지가 있다고 설명해 줍니다.


아직 관광코스가 개방되지 않은 곳인지? 가이드가 어쨌든 좀 위험 지역이라고 덧붙입니다.


장가계의 관광코스는 일부만 개방되어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지역이 개발 중인 것이지요.


천자산에도 절경들이 많습니다.


황제가 붓을 꽂아 놓았다는 형상의 ‘어필봉‘


중국 10대 원수 하룡장군의 동상이 있는 ‘하룡공원‘


수천개의 봉우리가 바다를 이루는 ‘천대서해’


봉우리의 모양이 마치 선녀와 같다는 ‘선녀산화’


기이한 봉우리들과 암석이 한 폭의 산수화를 이루는 ‘십리화랑‘등이 있습니다.


하룡공원에서는 많은 관광객들 가운데 눈에 띄는 한 무리가 있습니다.


흰 모자에 흰색유니폼 젊고 늘씬한 여성들이 십 수 명 열을 지어 다닙니다.


알고 보니 북한 기예단원들입니다.



현지 호객하는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집적거리며 희롱을 합니다.


토가족들은 여성에게 세 번 발을 밟아서 피하지 않으면 청혼의 의미로 받아들인답니다.


애들이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자꾸 밟을 밟으려 하는 거지요.


점심은 식당에 들러서  현지식 음식을 뷔페로 들지만, 마냥 똑같은 음식에 약간 질려 있는


지라 가이드들과 운전기사들이 먹는 국수가 먹음직스러워 물어보니 현지식 냉면이라 합니


다. 가격이 이천 원 하기에 뷔페 음식으로 배가 가득 찼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를 시켜 나누


어 먹었는데 맛이 괜찮습니다.


이들 냉면은 조선족 여성분들이 한국에서 그 맛을 못 잊어 하면서 자연히 알려지게 되었는


데 만약 기회가 있다면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촛대바위가 즐비한 천자산


어필봉

 

 

 

 손에 땀을 쥐는 아슬아슬한 천자산 케이블카


천자산

 

천자산



십리화랑



천자산 관광을 끝낸 후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옵니다.


케이블카 안에서 보는 전경도 아찔하기만 합니다.



하산 후에는 십리화랑 계곡으로 모노레일을 타고서 이동 합니다.


저 위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토가족 아가씨가 언제 끼어들었는지 세자매봉을 배경으로 해서 옆에 붙어서 같이 찍고는 천


원을 요구 합니다.


아래 사진도 토가족 현지인이 찍고는 즉석에서 현상해준다며 천원을 받습니다.


알고 보니 일반 A4 용지에 프린트해서 천원입니다.


며칠 후면 빛이 바래겠지만 또 다시 천원을 주고 코팅까지 합니다.



 

십리화랑 안에서 볼 수 있는 바위



십리화랑

 

역시 십리화랑안의 세자매봉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장가계관광은 물가도 쌀뿐더러 어디 가나 우리말로 호객행위를


하며 대부분의 상점에서 한화의 통용이 가능합니다. 가이드들도 모두 조선족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이 드신 관광객 분들이 대부분이며 일정을 소화 하는 데는 좀 무리 일


수도 있지만, 비교적 편한 분위기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아이 안은 아주머니가 천 원권 열장을 내밀며 만 원권을 교환해 달라고 부탁


을 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만 원권은  천 원권 열장 이상의 가치가 있는 듯 합니다.


혹시 요청을 받게 된다면 바꿔 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쨌든 천원 권은 유용하게 여러 곳에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자산은 위에서 보는 느낌과 아래 십리화랑 계곡 안에서 보는 느낌이 또 다릅니다.



이 일대는 약 3억 8천만 년 전 바다에서 퇴적된 곳입니다. 지각변동에 의해 산으로 변하였


고, 이후 침식을 받아 이런 독특한 지형을 형성 하였습니다.


관련 자료에는 석영 사암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다른 종류의 가령 머드나 실트스톤 혹은 세


일, 석회석 등도 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고화도는 높지 않은 듯하며, 이 사암은 층


리면과 수직절리가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사진을 잘 보면 삐죽 솟은 봉우리들의 끝은 그 높이가 비슷합니다.


협곡으로 변하기 전의 지형은 밋밋하거나 해발고도는 높으나,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는 거지요.


고산지대로 올라가면 밋밋한 지형 말고 기복차가 있는 산들이 있습니다.


퇴적암들로 이루어진 지역들은 무수히 많습니다만, 이렇게 까지 험준하고 독특한 이런 지형


을 이루는 사례는 거의 없지요.


우리나라에서도 하천을 끼고 있는 퇴적암 지역에서 절벽은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많고 높은


봉우리들은 없지요.



제 견해는 이렇습니다.


고산지대에 기복차가 남아있는 산과 밋밋한 지형이 같이 있다는 것은 통례적인 풍화침식 과


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4억년 동안 풍화 침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지역에 비해 고산지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풍화저항에 강한 암석들이 피복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 증거가 저는 고산지대에 있는 가파른 산들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을 해봤습니다.



물론 밋밋하고 평탄한 지역에 피복된 석회암은 다 침식되어 사라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석회암은 강도가 낮은 돌이지만, 오래 지날수록 마그네슘이 증가하면서 풍화저항에 강한 특


성을 지니게 됩니다. 기묘하면서 험준하거나 수직벽을 이루는 많은 지형들이 오래된 석회암


들로 형성된 지형입니다.



이들의 다른 특징 중에 하나는 봉우리 끝이 둥근 형태를 이루기도 합니다.


이러한 형태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소개될 ‘장가계의 혼‘이라 불리는 천


문산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이어서 참고가 될 듯 합니다.


지금의 봉우리 끝에 해당하는 지층은 오래된 석회암층이나, 혹은 좀 더 규질이 풍부하거나


변성도가 높은 비교적 단단한 층이 자리 잡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고지대를 형성하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후에 수반된 혹은 동시대에 수반된 지구조운동에 의해 수직 단층이나 혹은 수직절리가 형


성되었으며 이 틈을 따라 급속히 침식이 진행 되었습니다.



단층 혹은 대규모 절리의 가능성을 예측케 하는 것이 바로 백룡엘리베이터를 오른 후에 확


인되는 전경입니다.


늘어서 봉우리들을 연결 시켜보면 일정한 면을 기준으로 서 있습니다.


바로 이 침식면이 풍화침식 저항에 약한 구조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열대 지역의 다소 많은 강우량과 단위 시간당 높은 강우강도로 인해 수직절리가 발달한


틈을 따라 급속한 침식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류와의 기복차가 크므로 유속이 빨라 어느 시기부터는 더욱 침식 속도가 빨라졌으며 이


과정에서 벌어진 성층면과 많은 수직절리가 동시에 쉽게 분리되었으리라 봅니다.


층리면이 수평을 이루고 있어서 남은 봉우리 들은 측면의 침식을 통해 계곡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특히 고화도가 비교적 낮은 점도 한몫했으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가이드의 설명에서 또 하나의 증거를 얻었는데, 십리화랑의 예입니다.



1999년 폭우가 쏟아졌는데 물난리가 나면서 산과 봉우리들에서 분리된 토사와 절리가 십리


화랑을 5m 두께로 메워져서 지금도 십리화랑 계곡에는 물줄기가 보이지 않으며 그 퇴적된


토사 아래를 흐르고 있습니다.



수직절리가 발달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로 약 2,000년 전에 한


차례의 지각변동이 있었답니다.


그 증거는 나중에 소개될 용왕동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당시 용왕동 내의 종유


석들이 대부분 뿌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떨어진 종유석 위에 새로운 석순이 자라고 있는데, 그 길이를 역으로 산정한 값이 이천년이


지요.


지금의 봉우리 끝에 해당하는 지층은 오래된 석회암층이나, 혹은 좀 더 규질이 풍부하거나


변성도가 높은 비교적 단단한 층이 자리 잡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고지대를 형성하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후에 수반된 혹은 동시대에 수반된 지구조운동에 의해 수직 단층이나 혹은 수직절리가 형


성되었으며 이 틈을 따라 급속히 침식이 진행 되었습니다.



단층 혹은 대규모 절리의 가능성을 예측케 하는 것이 바로 백룡엘리베이터를 오른 후에 확


인되는 전경입니다.


늘어서 봉우리들을 연결 시켜보면 일정한 면을 기준으로 서 있습니다.


바로 이 침식면이 풍화침식 저항에 약한 구조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열대 지역의 다소 많은 강우량과 단위 시간당 높은 강우강도로 인해 수직절리가 발달한


틈을 따라 급속한 침식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류와의 기복차가 크므로 유속이 빨라 어느 시기부터는 더욱 침식 속도가 빨라졌으며 이


과정에서 벌어진 성층면과 많은 수직절리가 동시에 쉽게 분리되었으리라 봅니다.


층리면이 수평을 이루고 있어서 남은 봉우리 들은 측면의 침식을 통해 계곡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특히 고화도가 비교적 낮은 점도 한몫했으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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