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장가계 여행기 2

수암11 2006. 9. 7. 15:12
 

장가계 여행기 2



이곳은 김구선생께서 장사에서 항일투쟁 중 테러범에게 총을 맞고 요양을 하던 요양지로서


당시 선생께서 사용하던 침대니 탁자, 가재도구와 별도의 주방 안에는 주방기구들이 보관되


어 있습니다.



기념관을 만들기까지 장사시의 협조가 없어서 여러 번에 걸쳐서 당국을 설득하여 어렵사리


한국관계자들과 가이드들이 힘을 쓰고 갹출을 해서 써서 어렵사리 조성되었다 합니다.



김구선생 기념관(중앙이 부부동반에 같이 유일하게 같이 간 건영이)



김구선생 기념관을 거쳐 내려오니 언제 사진을 찍었는지? “천원”, “천원” 하면서 얼굴이 들


어있는 열쇠고리 사진을 현지인들이 내밉니다.



나중에 보니 가는 곳마다 이런 진풍경들이 벌어지는데, 감쪽같이 사진을 찍어서 사라고 졸


라댑니다. 


인화지에다가 사진현상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빛이 바랜답니다.


자신의 얼굴이 든 사진이라 안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살 수도 없는데, 다른 관광지에


는 이도 결국 모른 체하였습니다.


남는 시간에 열쇠고리를 뜯어보니 컬러 프린터로 뽑은 사진을 잘라 끼워둔 것으로 안 사게


되면 끼워진 종이를 빼내고 다시 활용하는 형태입니다.



악록서원



다음 코스는 유명한 악록서원입니다.


악록서원은 천년도 더된 중국 최초의 대학으로 현재 호남대학교 캠퍼스로 이용되고 있으면


근래까지도 유명한 인물들을 배출 하는 곳입니다.


악록사원에 대해서는 여러 쓸 이야기들이 많지만, 관련 자료를 간략히 소개합니다.




악록서원

 




인터넷의 관련 글을 발췌해 보면...



『 악록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중국 강남의 송대 4대 서원중의 하나로 송 태조 개보 9년


(AD 976년) 건조된 중국 최초의 대학이다.


중국 후난성(호남성)의 악록서원은 중국 고대의 4대 서원중에 으뜸이며 세계 최고의 고등학


부의 하나이다.



19세기말 서방 교육제도가 중국에 들어온 후 중국의 고대 사학 제도가 차츰 빛을 잃어갔다.


이 악록서원은 청나라 말기 후난湖南고등학당으로 변신하여 천년세월의 교학정신은 아직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1천년 동안에 걸쳐 중국의 유명인물인 쟝스張,栻, 왕후즈王夫之, 웨이윈


魏源, 청구어환曾國藩,차이어蔡鍔, 양치초梁啓超, 마오쩌동毛澤東 등을 배출 하였다.


조선시대의 유생들이 성지로 여겨온 곳이 취푸曲阜에 있는 공부孔府와 주자가 가르친 장


사의 악록서원이다.


천년 역사의 악록서원에서 유구한 전통 교육방식을 현대에 접목해 10명 안팎의 박사학위


과정을 전 세계에서 모집키로 하여 국내외에서 지망생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



이규태 코너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 조선시대의 유생들이 성지로 여겨온 곳이 취푸曲阜에 있는 공부孔府와 주자가 가르친


장사의 악록서원이다.



천년 역사의 그 서원에서 유구한 전통 교육방식을 현대에 접목해 10명 안팎의 박사학위 과


정을 전 세계에서 모집키로 하여 국내외에서 지망생이 쇄도하고 있다 한다.


서원의 중심 건물인 강당의 좌우 벽면에 절이라는 주자사상을 집약


시킨 등신대의 붓글씨가 붙어 있는데, 주자의 친필이다.



그 강당에 들면 복판에 나무의자 두 개가 놓여 있는데, 하나에는 주자가 앉고 다른 하나에


는 악록서원 원장인 호남학파 거두 장식張栻이 앉아 그 유명한 ‘주장회강朱張會講’이라


는 세미나를 주재했던 현장을 보존하고 있었다.


 

과거를 치러 가는 서생들이 멀리 이곳까지 와 주자가 앉았던 나무의자에 앉으면 그 식견이


전도되어 급제한다고 소문나 나무의자가 닳을 지경이라 손을 대지 말라는 ‘청물촉수請勿觸


’라는 방이 붙어 있었다.


  

그 강당 뒤로 돌아가면 백천헌百泉軒이라는 당호의 집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주자가 기거


했고 집 앞에 주자의 먹물을 댄 문천文泉이란 샘이 있는데, 이 서원 서생 아니고는 이 물


로 먹을 갈 수 없는 유구한 전통이 있으며 서원 입구에서 이 문천 물을 오지병에 담아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근대까지도 중국의 수위학부로 명맥을 이은 악록서원 출신으로 모택동毛澤東, 증국번曾國蕃,


그리고 한국에 와 묄렌도르프와 함께 한국 개화를 도왔던 양계초梁啓超도 악록서원 출신들


이다. 


주자의 학문과 행실을 한국에 수혈한 한국 유학의 비조鼻祖 안유安裕는 주자의 화상을 모시


고 주자의 호인 회암晦菴과 같은 항렬인 회헌晦軒으로 호를 삼았을 정도다.



고려 말까지만 해도 백일장이던 부모상을 주자가례에 따라 3년상으로 의례개혁을 한 것도


안유다. 



그 후 정몽주, 이이, 이황, 김굉필, 조광조로 주자 수혈의 한국 도학전통을 이어 유학의 본


고장인 중국보다 싱그러운 유과儒果를 열매 맺기에 이른 것이다. 』

 


 

 

악록서원은 호남대학교의 캠퍼스로 쓰이고 있으며, 지금도 대학의 출반부가 들어서 조용합


니다.


거쳐 간 수많은 인물가운데서도 내게는 주희나 왕양명 등의 석학 강사나 모택동보다도 금세


기 초인문학의 거장 김용의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두 번째 사진에서 학달성천學達性天은 건륭, 호남정맥湖南正脈은 강희제의 글씨입니다.


김용의 초인문학에서 자주 대하던 인물이라 넣어 보았습니다.


모택동의 실사구시實事求是 글씨도 있습니다.


지금 소개드리는 내용들은 유물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에 해당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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