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관련

명분

수암11 2015. 2. 20. 14:51

명분

 

 

이혜자(2004)는 우리의 “민족주의는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과거에 만들어진 이념이라는 사실이 입증된다. 국민 전체를 포괄하는 한민족의 민족주의는 19, 20세기 전환기까지는 발견되지 않았고 20세기 들어, 특히 3․1 운동과 일제 식민 통치를 겪으면서 형성된 이념이라고 보는 견해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고 한다. 서두를 이렇게 꺼내는 이유는 우리 민족이 다인종, 다문화 사회였으며 현재 종교분쟁으로 전쟁이 그칠 날 없는 국제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종교분쟁은 커녕 다종교의 융합사회라는 것이다.

 

 

조선말 한국을 방문했던 선교사, 여행가, 외교관 등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은 이미 조선을 방문하기 이전에 여러 국가를 통해 얻은 경험이나 지식들을 통해 다양한 인종들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들을 지니고 있어서 그들 나름대로 경험적인 한국인의 인상에 대해 비교 언급했다. 이런 견해는 당시 발간된 대부분의 책들에서 발견되는 것이어서 일일이 논하기는 어렵지만 공통적인 견해는 몽골리안 이외에도 왕족들에게서는 코카서스족 혹은 아리안족, 일부는 영국의 목사 겸 지주의 얼굴형, 일부는 유대인과 똑 같다는 다양한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초록색이나 파란 눈, 밤색 눈을 볼 수 있으며 노란 머리칼과 수염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언급하고 있으며 그들의 눈에도 중국인뿐만 일본인과도 구분된다고 언급했다.

UN의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서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의 수석고문으로 일을 하기도 했던 김병호는 1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경험한 사실과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언급한 내용과 연관되는 가설을 제기했다. 그는 어느 부족이나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기본적인 낱말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는 점에 주목하여 여러 나라의 기본적인 낱말과 지명의 비교연구를 통해 우리 민족의 뿌리가 우랄알타이족이 아닌 아리안족 계통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가설은 위 내용과 일부 상통한 점이 없지 않다. 헐버트(1999는 “한국의 언어가 남인도의 드라비다인의 언어와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낸 사람은 한국에서 활약한 프랑스의 선교사들이었다. 한국어와 드라비다어를 주의 깊게 비교해 보면 음성, 어원 및 구문상으로 너무도 비슷하여 이것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 이상의 어떤 연유가 있다고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고 하였으며 “다른 종족과 혼혈된 흔적이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드라비다족의 생리학적 모습은 어느 모로 보나 한국인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하였다. 칼스(1999)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신부들에 의해 출판된 《한국어 문법》에 따르면, 한국어는 타타르어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느 그룹에 속하는지가 의문이어서 이에 대한 결론을 유보하고 있다. 동시에 그 저자는 한국어 문법과 드라비드어 문법 사이의 유사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 유사성은 두 언어 사이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특정한 단어들에 기반을 둔 것이다”고 언급하고 있다.

 

 

김병호(1991)는 우리나라의 선박회사 직원들이 그리스선박 직원들과 만나면 예사로 그들과 그리스 말로 지껄여댄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나라 선박회사 직원들이 따로 그리스어에 대한 특별교육을 받은 바도 없는데 말이다. 그들의 얘기인즉 우리말과 그리스어는 비슷한 데가 많아서 배우기가 쉽다는 것이다.

이런 자료들은 너무도 많아서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은나라 때부터 백의민족(《봉사일본시문견록(奉使日本時聞見錄)》/건(乾)/5월 29일)으로 그리고 단일민족으로 인식되어 온 우리 민족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 먼저 거부감이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천손 민족이고 인류의 시원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정문화에서 파생된 여러 갈래의 이질화된 문화가 다시 역수입될 경우 당연히 그 친연성으로 인해 거부감이 덜하다는 것에 대해 전혀 비논리적인 측면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890년 조선 주차 미국공사와 이듬해 고종황제의 고문을 지녔던 샌즈는 이와 관련해서 “선사 시대에 반도로 이민된 흔적이 다소 보이고”라고 적고 있다.

 

 

무엇보다도 천손민족으로서의 중요한 증거는 신명심에서 근거하는 명분에 집착하는 기질적 특성이다.

이 명분에 집착하는 기질은 모래알처럼 뭉치기 힘들다는 민족성을 보여 분란으로 인해 수많은 위기를 맞기도 했고 반면에 풍화전등의 국난에서는 모든 국민이 하나로 뭉쳐 헤쳐 나가는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장황한 부언설명은 수련하는 학인(學人)으로서의 아집을 명분이라는 신명심으로 승화시켜 수련과 결부지어 생각해보자는데 있다.

 

 

다문화를 쉽게 수용하는 우리 민족은 과거 농경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공동체 사회에서 비롯된 공동체의식이 발달하였는데 보자기 안에 이것저것 모두 감쌀 수 있어서 ‘보자기 문화’, 또는 다양한 식재료를 섞어 독특한 밥맛을 내는 ‘비빔밥 문화’ 그리고 더러 ‘상선약수(上善藥水)’ 등으로 축약 표현되기도 했다. 한당선생께서는 이러한 조화에 대해서 물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물은 형태가 없으면서도 사각 병에 넣으면 사각으로, 둥근 병에 넣으면 둥근 형태가 되어 그릇 형태에 맞추어 스스로 변형시켜 조화를 이룬다. 조화란, 모든 만물과 다툼 없이 슬기롭게 지내는 것이다.‘고 하였다.

우리민족에게 공동체의식은 노동집약적 농업사회에서 기반을 둔 까닭도 있겠지만, 다인종 사회, 다문화주의, 종교의 다원성이 의미하듯 우리민족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다원적 사회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외래문화를 쉽게 수용하는 양식을 보면 우리의 전통문화는 벌써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종교의 다융합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의 전통 샤머니즘은 어떤 강력한 외래종교가 유입되더라도 모두 수용하면서 동반 성장해왔다. 샤머니즘의 끈질긴 생명력은 유입된 외래종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국가의 보호 속에서 찬란한 융성의 길을 걸어왔으면서도 어느 종교도 샤머니즘을 제거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외래종교들은 수용과정에서 샤머니즘에 흡수 융합되어 변질이 되었던 것이다. 다른 종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샤머니즘의 자체는 변질됨이 없이 오히려 발전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헐버트는 “한국인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며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을 당할 때에는 영혼숭배자다.”라 하였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가 전해진 이후, 한국인이 기존의 전통들을 소거하지 않은 채 그 위에 기독교를 하나 더 얹어 신앙의 레퍼토리에 추가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기독교인이자, 유교인이자, 불교적 사상가이자, 무교인으로서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의 종교 생활까지는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房家).

 

 

특이한 개성을 지닌 집단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결집한다는 것은 현대인의 사고로 볼 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다원적이자 이질적인 요소들을 결합하고 조화로 이끄는 것이 우리의 흥과 신명이다.

이러한 기질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것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최근 IMF때의 금모으기운동과 월드컵 응원을 통해 나타난 응원문화이며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국채 보상 운동(國債報償運動)이다. 그것은 바로 다원주의적 사회 안에서도 ‘명분’이라는 대전제 아래에서는 그야말로 모두가 한 마음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결집력을 보이는데 바로 표출되는 형태가 ‘흥과 신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민족에게 있어 다중(多衆)적 대중(大衆)적 감성표출인 흥과 신명의 그 근저에는 ‘명분’이라는 구심점이 내재하고 있는데 특히 조선은 반상(班常)의 구분이 엄격한 계급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명분은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고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으며 때로 자신의 목숨이상으로 명분을 중요시하기도 했다. 때로 선비들은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을 걸고 지론을 굽히지 아니하였는데, 고려의 성리학자 우탁과 조선의 조헌과 최익현이 올린 지부상소(持斧上疏)가 바로 그것이다. 도끼를 들고 들어가 죽음을 무릅쓰고 간했으며, 벼슬을 버리면서까지 직간을 했고, 머리를 찧으며 이마에 피를 흘릴 때까지 간했다.

내기에 강한 우리민족의 성향은 일정한 일의 할당량을 주고 경쟁을 시키는 ‘돈내기’에서는 그야말로 죽어라고 일을 한다.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초기 중동에 진출하여 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철야작업’이니 ‘돌관(突貫)작업’이니 하여 공사일정을 훨씬 앞당김으로써 세계 건설시장에 주목을 받은 부분은 바로 우리 민족의 기질적 특성인 이 ‘돈내기’에 있는 것이다. ‘돈내기’라는 표현이 속된 느낌이 전혀 없을 수 없지만 속내를 드려다 보면 이 돈내기는 바로 우리 한국인에게 있어서 명분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영화시장은 지난 10여년 사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에인트잇쿨뉴스(www.aintitcool.com) 등 해외 영화마니아층이 즐겨 찾는 스쿠프 사이트들에선 한국 영화흥행에 대해 종종 의문과 놀라움을 표하는 포스트들이 올라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공개된 '아저씨' 상황이 있다. 포스트들은 '아저씨'가 지난해 한국영화 중 최대흥행기록을 세웠다는 점을 들며, 어떻게 이런 '진지한' 영화가 팝콘 블록버스터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이런 영화는 팝콘무비가 아니라 차라리 예술영화에 가까운데 이런 영화에 국민의 4분의 1 이상이 몰린 게 희한하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역대 흥행 10위권 안에 전반적으로 진지한 주제의 드라마들이 많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많은 이슈와 파문을 몰고 와 관련학교 허가취소와 시설폐쇄뿐 아니라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에 대해 재수사 입장을 밝힌 영화 ‘도가니’도 같은 맥락이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 미증유의 국난을 맞이해서는 의병, 승병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현⋅근대사에 있어서도 일제강점기 시절을 전후해서 그리고 6.25사변을 맞이해서 의병과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학도병 등은 바로 누란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지키고자하는 명분을 그만큼 중요하게 취급했기 때문이다. 실제 조선의 승려는 사대문 안을 출입할 수 없을 정도로 홀대와 천시를 받았지만 그들은 국난에는 목숨을 걸고 앞장서서 발 벗고 나섰다.

승군(僧軍)의 역사기록은 삼국시대에서 확인된다. 비숍(1994)은 허가 없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승려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데 이러한 홀대를 받는 승려들조차 국난의 위기에 앞장을 서는 것은 명분을 소중한 덕목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 믿어진다.

《한국의 비극》을 쓴 매켄지는 조선의 의병을 “정의의 군대(Righteous Army)”라 영역하였는데 한국에서 의병을 직접 목격한 그로서는 의용군(Volunteer)이라는 흔한 보통명사를 붙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의병의 실상에 맞는 새 단어를 만들어냈는데, 그만큼 국가의 위기를 맞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과 사고가 남달랐으며 명분을 앞세운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국인들은 의로운 일이라면 돈을 우습게 알고 쾌척(快擲)하는 성질이 있다’고 조선말 당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헐버트). 1907년 남자는 담배를 끊고 여자는 비녀 등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국채 보상 운동은 익히 알려져 있다. 1919년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인 화가 르로이 볼드리즈는 가난한 청진 주민들이 독립 자금에 쓰라고 정성스럽게 내놓은 금과 은 장신구들을 받아 몸 안에 감추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압록강을 건너 밀반출하여 상해 임시정부 요원들에게 전달해 주는 자발적인 모험을 강행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 의해 한국 내 금을 국외로 반출하는 것이 엄격히 통제받고 있었으며 청탁 받기 얼마 전에도 3명의 학생들이 금을 몰래 소지한 채 600마일 이상을 걸어와 압록강 다리를 건너 밀반출 하려다 발각되는 바람에 2명은 현장에서 4만 달러어치를 압수당했으며, 거의 같은 양의 금을 지녔던 나머지 한 학생은 강물로 뛰어들어 만주로 헤엄쳐 가려다 그만 금 무게를 못 이겨 익사했던 사건이 있었다. 금을 내놓은 사람들은 노부인에서 어른과 대동한 남루한 옷을 입은 어린이, 짐꾼 심지어 여인들의 결혼반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백성현, 이한우, 2006). 샤를르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 나오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순교과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의 순교사에서 복자(福者)의 성렬에 오른 신유ㆍ기해 순교자는 79명이며 이중 근 3분의 2에 해당하는 47명이 부녀자였다. 병인교난(丙寅敎難)에 검거된 천주교도의 수는 남자 셋에 여자 하나의 비율이었는데, 배교(背敎)하지 않고 순교한 수는 78명으로 남녀 비율이 남자 하나에 여자 둘 꼴의 반대현상을 보이고 있다.(이규태, 1988))

1866년에 처형된 베르뉘주교는 “조선 민중의 성격은 매우 단순하여 사리를 깊이 따지길 싫어한다. 성교(聖敎)의 진리를 가르치면 곧 감동하여 믿음에 들고 어떠한 희생이라도 무릅쓴다. 하지만 진리를 풀이하면 잘못 알아듣는다. 특히 부녀자들과 천인층의 남자들이 그러하였다”고 자적하고 있다.

1868년 감옥에 갇힌 한성임이란 여신도는 학식 많기로 이름난 여자였다. 그녀는 법정에서 우매한 한국 부녀자들의 값싼 신앙 태도를 한탄하였다.

“미련한 여인들은 겨우 한 구절의 성구만을 외고는 바로 세례를 받는다. 그리하여 천당에 갈 줄 믿고 기꺼이 죽음을 택한다. 마치 불꽃 속에 뛰어드는 부나비들만 같다.”

혹자들은 종교의 힘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바로 명분에 목숨을 거는 신명심이 자리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인 반대의 사례는 너무도 많다.

선조에 의해 극도로 조장된 붕당정치는 이후 나라를 극도로 분열시켰으며 그 전통은 이어져 오늘날 정치판에도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명분 앞에 항상 국민을 내세운다. 소통과 화합을 내세우면서도 그들의 소위 작은 명분 앞에서는 금새 무너지고 만다. 전형적으로 큰일에는 대범하고 작은 일에는 목숨을 거는 천손민족의 기질적 특성 중에 하나이다.

 

 

이러한 특성은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동물들도 해당되었다.

조선말 외국인들이 머슴들의 고집에 손을 들은 사례는 적지 않다. 조랑말들에 대해 제임스 게일은 ‘그의 발꿈치는 대단히 강하고, 조금만 성이 나더라도 6인치 두께의 철판을 깨물어 뜯을 수 있을 정도’이며 ‘조선 머슴들이 제 고집대로 하듯이 대담하게 제 고집대로 움직인다. 일단 변덕이 나기만 하면 그의 목은 놋쇠로 된 것 같고, 생각한 것은 연주창처럼 오래간다.’ “조선의 조랑말과 조선인이 결속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뭐라고 말해 봤자, 그런 것은 다 ‘돌로 쌓은 벽과 다투는’ 거나 마찬가지로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개도 똑같다. 보통 개들은 최초 서열을 가리기 위해 다투어 서열이 정리가 되면 항상 그 상태가 유지가 된다. 그런데 진돗개는 우리민족의 기질을 닮아 다음날 어제 싸운 일을 잊고 도 서열싸움을 한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한 울타리에 풀어 키우기 힘든 것이다. 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던 이참은 진돗개연구가 이기도 한 그는 토종견인 진돗개가 한국인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하였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진돗개를 조사하였는데 단 세 집에서는 서로 싸우지 않았다. 이 세 집의 공통점이 멧돼지 사냥에 진돗개를 이용하고 있었다. 멧돼지를 진돗개가 1 대 1로 상대하면 다 죽게 되는데 세 마리가 공동작전을 펴서 멧돼지를 피로하게 한 다음 물어서 죽인다. 강한 적을 거꾸러뜨리기 위하여 협력하다가 보니 세 마리가 친해져서 사이좋게 지내는데 한국인들도 공동의 적,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는 단결하며 한강의 기적이 그런 경우”라 하였다. 우리나라 소도 다를 바 없다. 융통성이 없이 매우 질기고 센 고집을 ‘황소고집’이라고 한다. 황소가 얼마나 고집이 있으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유일하게 명분에서 벗어나 있는 대상은 어린아이이다. 어린아이는 명분과 무관한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에 개인주의가 판치는 현대와는 달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처럼 어린아이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민족은 없었다.

 

 

수련을 하는 학인(學人)들은 더 할 나위가 없다. 신명심에서 비롯된 학인들의 아집은 스스로 수련의 발목을 잡을 뿐 아니라 수련이 나아갈수록 불필요하고도 막대한 수심공부의 원천이 된다. 어차피 닦아야 될 수심이라면 부담을 안고 갈 것이 아니라 먼저 내려놓고 가는 것이 학인의 자세이다.

소모적이고 근시안적인 명분에 집착하는 것은 불필요한 아집일 뿐이다. 불필요한 아집에 얽매인다는 것은 수련에 발목을 잡히고 역행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조랑말이나 진돗개나 다름없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덕목들에 대해 우리는 늘 가르침을 받아왔다.

자신의 빛을 밝히고 나아가 주변을 밝히며 모든 세상이 업그레이드되는 조화선국이다.

이러한 대명제가 모든 명분에 우선되어야 진정한 천손민족이자 수련을 하는 학인들의 덕목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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