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배분과 집중
우리 옛 선비들의 풍류 가운데 시조창(時調唱)이 있다. 이 시조창을 하면서 더불어 단전을 의식하고 집중하는 ‘의수단전(意守丹田)’을 해보면 새로운 느낌을 맛볼 수 있다. 즉 단전기감(丹田氣感)이 좀 더 확연해지는 것이다. 이는 의식배분의 효과이다. 시조창을 모르면 느린 곡조의 노래를 부르면서 의수단전을 해도 그 효과는 비슷하다.
뛰어난 연기자들이 실제 삶이 아닌 영화나 연극 등을 통해 다양한 삶을 연기할 때 쓰는 표현으로 ‘연기는 감정 몰입이라기보다 감정 배분’이나 ‘감정이입이 아니라 먼발치에서 바라봄’으로써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성숙된 연기를 할 수 있으며 또 그 상황이 종료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 수련에 있어서 채약으로 2분운기를 할 때 12정경과 기경팔맥 모두를 시혈에서 종혈까지 동시에 운기하는 방법도 의식배분을 이용한 집중방법인데 언급한 내용들은 모두 수평적 의식배분방법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에 따르면 “인식과정은 관찰자(인식자)를 관찰할 때 드러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관찰자를 관찰하라고 말한다. 관찰자의 관찰은 일차등급관찰에서 이차등급관찰로 전환을 뜻한다. 철학적 작업이 이차등급관찰로 전환하여 다른 관찰자가 어떻게 관찰하는지 관찰할 경우, 세계, 존재, 실재 등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은 급진적으로 변화한다.”고 하였다.
루만의 표현을 쉽게 설명하면 자신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현저한 의식의 확장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적당한 예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가령 우리가 바둑을 둘 때 훈수꾼의 시야 폭이 훨씬 크다는 말이다. 이 경우는 위에서 언급한 수평적 의식배분이 아니라 수직적 의식배분방법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젊은 남녀의 관계에 대해 ‘쫓으면 멀어지고 물러서면 다가온다.’는 미묘한 표현처럼 수련에서 집중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이 오히려 집중을 저해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당선생은 양신(陽神)수련에서 “빛이나 여의주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자연의 경관을 관조하듯 의미 없는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 각각의 현상에 집착하거나 의식을 두게 되면 도심(道心)이 흩어져 빛과 여의주가 보이지 않게 된다.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고, 보는 가운데 보이게 되는 이치를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여기에서 그러한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어 길을 잃어버리면 더욱 집착에 빠져 아예 보이지 않게 된다. 절대로 의식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라고 하였다.
의식배분을 통한 집중을 비유하자면 ‘꿈속에서 꾸는 꿈’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꿈속에서 꾸는 꿈은 설혹 좋거나 그리 좋지 못한 꿈이라도 감정의 여과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깨닫더라도 다만 신기할 뿐 감정의 기복이 적다.
의식을 배분하는 방법은 개인적인 부분에 있어 집착을 경계하고 버림으로써 오히려 더 몰입에 이를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집중을 위한 의식배분은 마치 주역을 빌어 설명 하자면 곤위지(坤爲地, ☷☷) 괘상처럼 ‘앞서면 미혹하고 뒤따르면 얻는 선미후득(先迷後得)’과 같다. 마치 세밀하면 미혹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면 얻는 이치이다.
실생활에서 의식배분을 통한 집중과 관련된 예는 적지 않다. 바둑에 있어서 사석의 활용 역시 일종의 의식배분에 의한 결과이며 지난(至難)한 문제나 고민거리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우도 이와 유사한 사례에 해당된다. 후자는 수련 도중에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에 수련하는 자신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면 훨씬 더 깊은 몰입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응용하다 보면 유기적 통합적인 의식배분방법을 찾게 된다.
학인(學人)에게 있어서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하여 마음이 앞서가는 것을 경계한다. 의식이 집중하고자 하는 대상에 일방적으로 머무르려는 시도에는 바로 인간 간의 교류에 비유하자면 완충작용을 해주는 도덕예의법률이라는 매개체가 없다. 따라서 불협화음이 생겨나고 그 결과는 집중이 떨어지고 몰입이 안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 의식배분을 통한 집중은 그 과정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준다.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의식을 단전에 집중하고 또 관찰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의식집중을 바라본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의식배분이 필요하다. 이때 1차 대상에 대해 집중하려는 의식은 2차 배분된 의식집중의 완충역할을 자연스레 하게 되면서 착심(着心)이 없는 더 깊은 집중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는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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