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리쥐(2/8)
05.02.15 04:11
제가 있는 곳은 Pine Ridge라는 국립공원 안에 있습니다.
지명이 말해주 듯 특이하게도 아열대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소나무가 많은 곳입니다.
아열대 지역에 소나무라! 이해가 안 되지요?
여기 소나무는 특히 화강암 지역에 더 많이 자라고 있는 편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오두막 일대의 푸른 잔디밭에도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여기저기 서 있습니다.
여기는 국립공원이라 하지만, 그리 볼 것은 없고, 제가 현재 거주하는 오두막이 있는 오거스틴에서 현장인 산루이스 가기 전, 한번 가봤음에도 불구하고 외국 지명은 외우기 힘든 탓에,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근사하고 큼직한 폭포가 있습니다. 가끔씩 미국 단체 관광객이 구경 오기도 하지요. 그리고 벨모판에서 제가 있는 현장 쪽으로 비포장도로가 끝나는 조지빌이란 곳에서 남쪽으로 꺾어 들어오게 되는데, 국립공원 입구를 지나 한참 오다 보면, 여기 오기 전에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다섯 자매 폭포라는 곳이 있다더군요.
아마 물 떨어지는 지점이 다섯 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그곳 역시 비포장도로 구간에 위치되지만, 폭포를 명소로 삼아 호텔이 같이 있다는데, 언젠가 시간을 내서 구경할 계획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이 한국에서는 설날 아침이군요.
모두모두 즐거운 설날 되시고, 더 건강하시고, 복 많이 지으시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학인들은 더 많은 정진이 있으시길 빕니다.
아침 일찍 현장에 갔다가, 숙소로 와서 잠시 밀린 일도 하고, 수련도 한 타임(근래에는 주로 오전 시간 때에 시간을 내서 수련을 일단 한 타임 하는 편입니다.) 하고 점심 때 즈음 현장을 가니, 시추 팀들이 오전, 작업용수 호스를 까는 동안 작은 멧돼지가 나타나더니 쏜살같이 도망을 가더랍니다.
조사를 하다보면 아주 큼직하고 검은 색의 새들이 인기척이나 차량소음에 놀라 기겁을 하고 달아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언제 말씀드렸나요? 마운틴 카우는 때로 길에서 부닥뜨렸을 때, 피하라고 경적을 울리면 차량을 공격한다는 주변의 얘기도 있습니다.
벨모판 사무실에는 몇 개의 공장이 같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미 사양 산업이 된지 오래인 석재가공공장, 그리고 콘크리트 흄관 및 파일, 전신주들, 레미콘 블록등 을 생산하는 플랜트 공장들입니다.
모두 국내에서 반입된 것들 이지만 가동률은 아주 낮습니다.
목재 가격도 비싼데, 이 콘크리트 제품은 더 비싸서 서민용 수요가 아주 적은데다가, 정부 재원 또한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공장 한쪽 작은 연못에 악어가 살고 있습니다.
공장 부지가 비교적 넓은데, 초기에는 밀림지대였었고, 인접된 곳에 작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강물을 끌어 작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는데, 임시로 담아 두기 위해 작은 연못을 팠습니다. 한 번씩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나서 낮은 지역 일대가 범람하는데, 그때 새끼 악어가 공장부지 내로 들어 왔습니다. 한 직원이 그걸 잡아 숙소로 가지고 와서 큼직한 수족관에 넣어 키우면서 며칠에 한 번씩 물도 갈아주고, 주로 닭고기를 먹이로 주며 키웠는데, 나중에는 힘이 들고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어서 공장 내에 작은 연못에다가 방사를 시켰다 합니다. 그 연못에는 민물낚시로 잡아다 넣은 물고기 외에 홍수 때 떠 밀려온 물고기들이 있어서 그걸 먹이로 삼고 있는데, 길이가 50~60cm 되는 놈이 겁이 많아서, 제가 구경 하려고 다가갈라치면 잽싸게 물속으로 뛰어들어 모습을 감추곤 합니다.
오늘 저녁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한 후 모처럼 만에 거울 을 잠시 드려다 보았습니다. 그간 따가운 햇볕 속에 정글을 얼마나 돌아 다녔는지, 얼굴이 거의 현지인 수준으로 타서 머리와 몸이 마치 다른 인종의 사진을 붙여 놓은 듯 합니다..흑..
여기서는 정글을 다닐 때, 통로를 확보하고자 누구든 긴 칼을 지니고 다닙니다.
나무들이 무성한 탓도 있지만, 인적이 거의 없어서 아예 길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벌목도 라던가 정글도로 표현될 수 있겠지요.
저도 가까운 곳을 혼자 다닐 때는 당연히 하나 갖고 다닙니다.
수염은 여적 깍지 않아 더부룩하고, 얼굴은 타서 새까맣고, 긴 칼(정글도) 하나 들고,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선플라이가 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손목까지 내려오는 긴소매 옷을 입고, 홀로 정글을 헤치고 다니는 제 모습을 연상해 보십시오!
거의 산적 수준이나 진배없습니다. 아아! 이렇게 망가지고 있습니다..ㅠ.ㅠ
이 칼을 어릴 적 읽었던 책에서는 야만인들이 쓴다 하여 ‘만도’라 표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저도 그 칼을 쓰려하지 않았더랍니다.
꽃과 풀과 나무와, 때로는 새와 짐승과 대화하는 소현님이 생각났거든요. 하지만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피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저도 현지인에게 칼을 버려달라고 한 후(여기서 벌목도는 길어서 숫돌로 가는 게 아니라 줄로 칼을 갑니다.), 조자룡이 헌 칼 쓰듯, 진행 방향에 있는 길목의 나무들을 쳐내기 시작합니다.
아아! 이젠 제가 숲 속으로 들어가면, 숲 속의 나무들은 완전히 경악과 공포 분위기입니다.
베어져 나가는 나뭇가지들의 비명소리며 단말마!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ㅠ.ㅠ
그 가운데 신명심의 한 단면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작업을 하고 있는 산루이스는 지금은 숲 이지만, 역시 비포장이긴 하나 예전 도로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지도상에는 아직 수 십 채의 집들이 남아 있는 것처럼 표기되어 있습니다. 노두를 찾으러 숲 속을 다니다 보면, 버려진 폐차 일부분이나 오래 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여러 흔적들이 광범위 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들이 소개된 것은 가량 군사적인 이유라던가, 그런 가능성도 있겠지만, 아마 산불 때문이 아닌가? 추측을 해 봅니다. 그들이 살았던 집터의 정원이었을 법한 일대에는 열대 유실수들이 아직도 자라고 있는데, 망고나 열대야자, 그리고 여기서 낯익은 유실수들이 보이고, 오늘은 조금 덜 익은 코코아를 따서 그 속에 들어 있는 물을 마셨습니다.
지금 숙소가 있는 현장에서 5마일 거리의 오거스틴도 알고 보면, 한 쪽 외진 곳에, 비록 비포장이지만, 훌륭한 경비행기장도 있습니다.
경비행장 인근 입구에 중국인 댐 건설현장 사무실과 숙소가 30여 채 울타리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숙소 정문 앞을 지나 남쪽으로 소롯길이 있는데, 그 길은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제법 거리가 있어서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작은 산위에, 몇 채의 집과 보다 더 높은 곳에 대략 3층 높이의 망루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거스틴
중앙에 있는 집들이 철망으로 울타리치고 무장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댐공사 현장의 중국인들과 인부들의 숙소 입니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고원 위에 펼쳐진 수해(나무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해 너머의 일몰
이 망루에 올라서면 아득히 멀리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데, 돌아보면 수해樹海 속에 묻혀 있는 듯합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이들이 여기서 삼림의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그 이상의 감동적인 느낌이 일거라는 생각이 불현 듯입니다.
바로 이 망루가 오거스틴에서 유일하게 휴대폰 통화가 가능한 곳입니다. 물론 일반전화는 가설되어 있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마저도 흐린 날은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사무실과 업무보고 차 휴대폰 하나를 지급 받아 이틀에 한번 꼴로 여기서 통화를 합니다.
제가 휴대하고 있는 전화번호는 벨리즈 610-1820입니다만 제게 연락을 하지 마십시오.
벨리즈 전화요금이 비싼 탓도 있지만, 통화 서비스 지역 밖이어서 연결이 안 됩니다.
다만 포장도로가 있는 조지빌에 가야 비로소 통화가 가능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가량 숙소나 사무실에 일이 있어 주중 오전이나, 금요일 저녁 이때나 전화를 켜두기 때문입니다.(전화를 하라는 얘긴지? ^^;;;)
사무실과의 통화를 끝내고 망루에서 내려오는데, 웬 동양인 하나가 헐떡이며 허겁지겁 올라오는 것입니다. 뭐라고 하는데, 휴대전화기 배터리가 없다고 하며, 국제전화카드를 보여주며 제 전화기를 빌려 쓰자는 의미인 듯 말을 해 댑니다. 다시 망루에 올라, 한참 이리저리 눌러대더니 통화가 되는지 금새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두고 온 가족과 통화 하는지, 애타는 마음과 급한 마음이 어우러져 목소리에 묻어나옵니다.
덕분에 저도 삼림의 바다를 보며 덩달아 가족 생각을 해 봅니다. 다들 잘 있는지?
여기 댐 공사를 위해 벨리즈에 온지 8달이 되었다는 중국인 그 친구는 가족에게 전화할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제가 탄 차량이 그리 가는 것을 보고, 허겁지겁 제법 먼 산길을 �아 올라 온 것을 보니, 가족 소식이 무척 그리웠나 봅니다.
이젠 선 플라이에 물려도 피부가 예전처럼 극도로 예민해져 단단하게 부어오른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물렸던 자리들도 거의 아물어 이젠 콩알만 한 울긋불긋한 반점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물려도 한 며칠 가렵다가 증상이 완화됩니다. 한편 생각으로 선플라이가 제 피 맛에 식상해했나 싶기도 하고, 또 다른 생각은 선플라이의 독성이 제 피를 정화 시켜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도 해 봅니다.
숲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때로 용변을 숲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 때는 참으로 난감스럽습니다. 선플라이의 공격에 속수무책인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같이 일하는 이들도 그렇고 제 속살에도 몇 개의 반점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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