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 받은 자대를 지금 생각하면 강원도 산골짜기에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한 곳에 마치 옛날 팔로군들의 사진에서나 볼 듯 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엄격한 규율을 지닌 최하급 부대에서 외출 외박은 상상도 못하는 처지였는데, 몇 푼 되지 않는 돈이나마 지니고 있어도 PX라는 곳을 모를 뿐 더러 설혹 알았다 하더라도 눈코 뜰 새 없는 졸병처지에 10개월이 지나도 아예 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사회에서 삽질 한 번 해보지 않고 먼 길 걸어 다녀보지 않았지만, 어느 부대구호처럼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를 거창하게 외칠 것도 없이 끝없는 훈련과 행군이 연속이었다.
(그 훈련들은 결국 다리 힘을 길러 다리가 강해지면 정신력이 강화된다는 속설과 일치한다.)
자대배치 며칠 후에 따라나선 7시간가량 소요되는 유격장은 차츰 익숙해지면서 마치 초등학교 아이가 지니는 소풍가는 설렘으로 바뀌었을 정도였다.(군 시절 5번의 유격을 받았는데 마지막 한 번은 부조교의 신분으로 참여하였다. ‘유격에 관한 추억‘으로 별도의 이야기로 대신할까 한다.)
여하튼 브라보지역으로의 첫 이동은 대략 23시간가량 소요되었는데, 새벽에 도착을 하고 보니 열 발가락과 발바닥에 물집이 크게 부풀어져 있고 그 안에는 피가 가득 고여 있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토록 오래 걸을 줄도 몰랐으며 이렇게 걷다가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중 왼쪽 발바닥에 생긴 물집은 너무 깊이 생겨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 있을 정도이다.
이런저런 훈련들을 끊임없이 하는 가운데 막내로서 혹은 졸병으로서 소대 내의 뒤치다꺼리에 허우적대다 보니 씻거나 빨래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이야기가 좀 벗어나지만, 당시 3.5인치 소위 바주카포 사수였던 고참은 관리개선안이라는 제도에 제안하는 내용으로 ‘동내의를 오래 입는 법‘이라면서 ’동내의를 3개월간은 그냥 입고 나머지 3개월간은 털어서 뒤집어서 입는다.’라는 우스개의 개선안을 제시할 정도로 날씨도 추웠을 더러 물 사정이 좋지 못했다. 봄이 오면 모포를 개울에서 빨아 널어 말리기도 했는데 그 개울에는 얼음이 잔뜩 얼어 있어서 얼음을 깨고 맨손으로 빨래를 해야 했는데, 손이 곱은 것은 당연하거니와 빨래비누가 풀리지 않아서 건성건성 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는 널어놓은 빨래가 얼어붙어 며칠간씩이나 말려야 했던 기억도 있다.
10개월 즈음에는 훈련에 조금은 이력이 날 때도 되었건만 유달리 힘든 훈련을 맞이한 때가 있었다. 훈련 내내 내리막길에서 무릎 뼈가 시큰거리는 것이었다.
특히 5개월 만에 M60 기관총 사수를 맡아서 등짐이 남들보다 더 무겁다 보니 그랬는지도 모른다. 쩔뚝거리며 80여km를 걸어서 복귀하는데 비가 와서 날은 추운데다가 한 쪽 근육을 지속적으로 쓰다 보니 쥐가 났다. 소지한 녹 쓸고 날이 문드러진 면도날로 톱질하듯 해당부위를 베어내고 피를 짜내서야 비로소 쥐가 멎었다.
최악을 훈련을 끝내고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는데 당시 교통이 워낙 안 좋아서 오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입대는 했는데 도대체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이 닿지 않으니 물어물어 찾아온 것이다. 연락을 받고 분주하게 옷을 다리고 준비를 하여 같은 영내지만 연대본부여서 좀 떨어진 PX를 처음으로 물어서 찾아갔다.
첫 면회여서 씻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내 몰골은 가히 가관이었다. 가을에 들어선 지도 제법 지났는데도 얼굴이 새까맣게 탄 대다가 눈빛만 반짝반짝했으니 감정표현이 별로 없으신 부친께서도 눈빛이 흐려진 것을 느낄 정도였다.
부대 앞 여인숙을 잡아 부모님께서 챙겨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아마 충격을 받으신 듯하다. 닭 2마리 삶은 쇠고기 몇 근에 엄청난 양의 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이 보양식 덕인지 시큰 거리던 무릎의 증상은 바로 그 날로 사라졌다.
당시의 식욕이 얼마나 왕성했던지 단적인 예가 있다.
어느 정도 짬밥수가 늘어나 중고참 시절에 벼 베기 대민지원을 나갔는데, 점심시간에 아주머니가 꿈에 그리던 하얀 쌀밥을 함지박 보다 훨씬 더 큰 플라스틱 다라이(대야)에 가득 담아 왔다.
4명인가의 인원이 정신없도록 먹어대기 시작했는데, 결국 그걸 다 먹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빈 공기에 고봉밥을 계속 담아 주셨고 아랫부분 보다 올라 온 윗부분의 밥 양이 더 많았는도 나는 7그릇을 먹었다. 식사 후에 배가 불러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모두 들판에 누웠다. 웬걸,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배가 너무 불러서 일어날 수 없어서 모두 누운 상태에서 소나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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