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자장면에 관한 기억

수암11 2008. 12. 11. 10:46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물으면 많은 경우에 자장면을 언급한다.

지난 면회 시 아이들과 일요일 점심은 중국집으로 갔을 뿐 더러 우리 말고도 면회 온 다른 분들이나 외출 시 들린 현역병들이 보였으니 자장면은 서민음식이자 가장 사랑 받는 음식 중에 하나이다.


78년경의 일인 듯하다. 그 날도 어김없이 월요일 새벽 비상, 사방거리를 지나 브라보지역에서 일주일간의 훈련을 받고 복귀하는 중이었는데, 매양 그러듯이 춘천 시내를 관통하는 코스로 이동 중이었다.

저녁 무렵의 춘천시내는 늘 통제된 생활과 인적이 없는 산중에서 지내던 우리에게 아주 별천지였다. 장미촌을 지나면서 신이나 듯 뻔 한 농지거리를 던지면 반응을 떠보는 것도 별난 재미중에 하나였다.

물론 이런 재미도 문제점을 적시한 윗분들의 조치로 언젠가 부터는 외곽도로를 그도 도시가 잠들은 늦은 밤을 이용해서 통과하게 되어 그런 잔재미는 사라지게 되었지만......


당시 한창 일할 시기인 내개 어느 날은 분대장이 춘천 번화가를 통과 하면서 자장면도 아니고 중국집에서 짜장을 오백 원어치 사오라고 지시를 했다.

행군도중에 부리나케 앞 동료의 군장에서 반합을 분리해내고 받아든 오백 원을 가지고 눈에 띄는 중국집으로 달려갔다.


중국집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식사를 하거나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일주일간이나 형편 무인지경인 강원도 산중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씻지도 않고 완전군장에 총을 맨 군인이 허겁지겁 쫓아 들어오니 사람들이 모두 무슨 일인가 놀란 눈치가 역력하고 호기심 반 긴장하는 분위기다.

춘천 시내를 관통할 시에는 행군보속이 빨라 따라 잡으려면 한참을 뛰어야 하므로 마음이 급했던 나는 주방에다가 대고 “짜장 오백원어치만 주세요!” 라고 소리를 질렀다.

야전에서, 산중에서 뒹굴다가 온 터니 거지꼴과 다름 없었는데다가 마치 거지가 음식을 구걸할 때 깡통을 내밀듯 반합을 내밀었으니 주방에서도 당황한 듯 했다.


조금 시간이 경과 한 후에 사태를 파악한 주방장이 “짜장 오백 원어치 요?” 반문을 하면서 조리를 하기 시작한다. 마음은 급한데 준비된 짜장을 그냥 덜어주는 게 아니라 새로 데우는지? 볶는지? 시간은 지나가고 식당 안의 손님들은 호기심 반, 진한 연민의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중국집에서 짜장 만을 따로 팔수는 있겠지만, 사는 이도 없거니와 실제 사려해도 무척 비싸게 판다는 것을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 알았다. 결국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걸 많은 돈도 아니고 오백 원 어치 달라고 했으니 그들이 당황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완전군장한 시커먼 군인이 총까지 들고 와서 짜장 오백 원어치 달라는데 불안하기도 하지만, 몰골은 온갖 풍상을 다 겪은 거지꼴이니 당황, 공포, 연민 등 아주 복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총을 들고 음식점에 들어가 짜장 달라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당시에는 무장 탈영병들이 가끔 있거나 다른 특수 상황을 대비해서 오분대기조를 가동하고 있었는데, 해당 소대는 한 달 간은 군화 끈도 풀지 않고 잠을 자면서 걸핏하면 실제상황 혹은 훈련점검으로 한밤중에 출동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고참들이 신입인 나를 놀리려고 한 건지 처음 자대배치를 왔을 때에 투항을 거부하고 총질을 하는 무장탈영병을 사살해서  막사 앞 화장실 바로 옆에 가마니로 덮어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군형법을 잘 모르지만 법 규정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무단이탈에다가 몇 죄목이 추가될 법한 사안이지만 당시는 별 생각 없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어쨌든 다시 볶은 짜장을 반합 가득히 담아 카운터에 오백 원을 건네고 부리나케 나서는데 식당안의 손님들이 격려의 덕담과 함께 박수까지 보낸다.

행군 대열을 쫓아 우리 소대를 찾는데 한참을 달려도 보이질 않는다. 반합 안에 든 짜장이 쏟기랴 조심스레 들고 제법 달려 제자리를 찾았다.

그날 저녁은 춘천댐 아래인가? 강변에서 자리를 잡고 먹게 되었고 채 식지 않은 짜장을 반합뚜껑으로 가득 소대장과 선임하사에게 상납을 한 후 나머지는 분대원이 나누어 밥에 비벼 먹었는데, 그날만큼 맛있는 짜장을 먹어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