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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 복습을 하며-한당 선생님에 대한 추억2...

수암11 2008. 6. 1. 10:43

온양 복습을 하며-한당 선생님에 대한 추억2...


05.04.09 08:03


낮에 문득 개미고속도를 살펴보았는데, 세상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비오는 날에도 고속도로를 채우고 가던 개미들이 그야말로 ‘개미새끼 한 마리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점심식사나 오수를 즐기는 것이라면 다행이겠지요.


그 개미들의 단 하나 문제점은 제 창 바로 바깥에 있는, 대략 수령 10여년 이상의 잎이 무성한 4m 정도 크기에, 나뭇가지가 휘어져 분재처럼 보이는 나무의 나뭇잎을 싹쓸이해서 잎사귀 줄기만 남고 앙상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나무가 유실수 인듯한데, 새들이 먹이로 삼는 건지? 토박이 새 한 마리가 자신의 머리 크기에 가까운 열매를 물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은 꼭대기에 단 4개만 남아 있습니다.


동네에 방목되는 말들 6마리는 며칠에 걸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오두막 주위에 풀을 뜯어 먹으러 방문합니다. 가끔 그들끼리 무슨 분란이 있는지? 말굽 소리 요란하게 집주변을 쫓아다닙니다. 풀을 뜯을 때면, 그들 곁에 항상 머리에 노랑 깃털을 한 백로(?) 2마리가 동행하며,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온양복습을 하면서 도대체 이 많은 생각들은 또 무엇인고? 하실지 모르지만, 생각들도 수련과 같아서 자주 반복하게 되면, 운기속도가 빨라지듯, 그리되는 모양입니다..^^;;;


당시 천리안 단동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 때는 무슨 바람이 불어 ‘도화제의 성지’로 제가 이름을 붙인 삼천포를 홀로 불쑥 갔습니다.

‘성지’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지원장이 직접 상주하면서 운영하는 도장도 아닌데다가, 고참회원들이 구심점이 되어, 인구 대략 5만(정확한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도 안 되는 소도시에 회원이 70명이 넘는데다가 늦은 밤 까지 용맹 정진하는 불가사의한 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의 발도심과 항상심은 남달라서, 수련진도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도반들의 배려로 진주지원의 특별수련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선생님의 특별수련 이외에는 특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수련이 없었던 시절이지요.

그 날 운집한 도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규모가 작지 않은 진주지원에 발 딛을 틈이 없었지요.


저는 당시 수련 참가를 함구하라는 부탁을 받았고, 이 자리를 빌려 처음 드러냅니다.

여러해 전이라 정확한지는 기억이 가물거립니다만, 그런 준비를 위해 그때만 해도 당시 경사님의 정성이 담긴 한 달가량의 준비기간이 필요로 했고, 모든 도반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으니, 도장 간의 괴리감을 우려한 배려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어쨌든 굵고 낮은 당시 경사님의 합일한 음성으로 수련 시작을 알렸고, 노독이 풀리지 않았던 저는 의식이 조금 뜬 상태로 깊은 몰입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다만, 수련이 파하고, 나누는 대화 가운데, ‘순수’라는 심득을 얻었습니다.


다시 삼천포로 돌아와, 밤늦은 시간까지의 음주, 가무, 도장 문 앞까지의 배웅(?), 도장에서 일박, 복어죽을 맛보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오신 일현형님, 그리고 귀한 글씨 선물, 도반들과의 드라이브, 공룡 발자국이 있는 바닷가 산책, 찻집에서의 담소......

여러 기억의 편린들이 글을 쓰는 동안에 제게 보내준 환대와 그 분 한분 한분들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오후에는 강암님의 차로 부산으로 향했지요.


동래지원에서 주최하는 부산축구쑈에 참석하기 위해서였고, 역시 선생님의 특별 수련이 있었으며, 여러 도반들이 도장을 가득 매웠습니다.

수련 가운데 소현님의 딸 자운이가 처음 느끼는 도장 안의 열기와 분위기에 거북했는지, 바깥으로 나가기에 제 무릎에 앉혔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얻은 심득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자운이의 순수함을 빌어 수련에 임한다’

는 심법을 걸었는데, 무기감인 저로서 현재까지도 전후 무후한 온양기감을 체험했었지요.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몰입에서 어깨를 적셔오는 차가운 온양기운의 단면이 그대로 조금씩 내려오는 것을 체감했지요. 뒤에 한청님으로부터 순수에서 진전된 ‘순일’이라는 표현도 배웠지요.


수련이 파하고 다과자리가 한동안 있었고, 동래지원회원들의 배려로, 횟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화장실에서 선생님과 마주쳤습니다.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뜨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3~40명가량 되는 방안의 좌석 중에, 단 하나 남은 곳이 거산문사님 옆자리이자, 선생님과 마주한 자리, 그 옆에는 사모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얼마나 당혹했겠습니까? 당시 유행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선도모‘인가(?)이었는데, 풀어쓰면 ’선생님에게서 도망 다니는 모임‘입니다.^^;;;

어쨌든 조심스런 가운데, 거산 문사님과 건배도 하고,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무사히(?) 자리를 마쳤습니다.

물론 그날 밤은 부산단동도반들에게 신세를 졌지요.


서울로 돌아와 여러 날이 지난 후, 저녁 수련을 파하고, 차량에 같은 분당 사는 당시 현강님이 동승했습니다.

도중에 조심스레 제게 조언을 해 주는데, 저를 지적하며, 온양 수련하는 이가 기운이 많이 떠있다는 선생님의 전언을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저는 운전 가운데서도 자세를 바로하고, 경청을 했지요. 그 후로 여러 달 동안 당시 흔치 않던 삼행공과 평소보다 수련시간을 더 할애했던 온양수련에 대한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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