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관련

도마불이道魔不二

수암11 2006. 7. 26. 13:46

도道와 마魔가 다름이 아니다.

 

 

여러 해전 선악의 구분이 없다는 심득이 확연히 와 닿던 시절이 있었다.

 

늘 지녀왔던 가치관과 도덕률이 흔들리면서 경허선사의 만행을 견주어보기도 하고,

고민하던 가운데 마침 기회가 있어서 윗분께 질문을 드렸더니, 그 기준은

 

‘주변과의 조화‘라는 답을 주셨다.

 

바로 느낌이 왔었지만, 실천에 있어서 적지 않은 딜레마를 경험한다.

주변과의 조화에 대한 기준은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돌이킬라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소위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잣대로서 도덕예의법률로 다시 귀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도덕예의법률의 잣대가 흠결 없는 오직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자명한 사실일 뿐 아니라, 선악의 구분이 없다는 표현에 배치되는 것이다.

사회에 속칭 ‘악’이라는 존재는 어디에도 자리 잡고 있으며, 있어왔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한편의 영화에 선과 악, 혹은 이념의 충돌 등 대립 혹은 갈등구조는 영화라는 존재성을 드러내게 한다.

 

만약 한편의 영화에 이러한 극적 요소가 없다면 그 누구도 관심을 지니지 않을 것이며, 결국 영화라는 단어조차 사라지게 할 것이다.

우리의 삶도 영화의 예와 다름이 아니다.

거개의 사람들은 삶속에서 스스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바라며, 나아가 근사한 주인공이 되기를 갈망한다.

 

악역은 대부분 맡기 싫어하는 것이다.

단순한 논리로 이러한 악역이 없다면 사회의 갈등도 없을 것이고,

사람들의 삶이란 것도 결국 영화에 빗대어 볼 때처럼 그 의미가 현저히 줄뿐 더러 삶뿐만 아니라 나아가 인간의 존재여부 조차도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통해 볼 때, 인간의 세계에 있어서 선과 악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그 가치 기준이 선이기 때문에 옳고 악이기 때문에 그릇되다 는 표현은 한 면만을 바라본 소박한 시각이다.

 

나아가 가끔 쓰는 표현 가운데, 도고일척 마고삼장道高一尺 魔高三丈 이라는 말이 있는데 도道와 마魔는 세불양립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분리해서 가를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결국은 도道 떠난 마魔 없고, 마魔를 떠난 도道가 없다는 것이니,

도道와 마魔로 표현되어질 뿐 둘이 다름이 아니라는 결론에 귀착된다.

 

자! 이제 누구도 꺼려하고 싫어하는 힘든 악역을 맡은 이들에게 격려를 보내자!

 

인간적인 잣대로 이 악역은 완성에 이르기 까지 어느 단계 할 것 없이 그 단계에 걸맞은 악역이 고루 분포되리라 생각되어진다.

 

아쉽게도 나는 소심하여 악역을 두려워하고 인간적인 관점에서 악역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내는 것으로 뻔뻔스럽게 면피하고자 한다.

 

한 이십 년 전 회사에 다니고 있을 무렵, 여러 달 동안 회사가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앞이 막막한 터이었지만, 넋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처음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미래에 대해 알고자 주역 점을 본 일이 있었다.

괘상은 잊었지만, 기억에 남는 구절은

 

‘구름이 해를 가려도 해가 없어지지 않음이요. 다만 시간이 가면 절로 구름이 걷히리라’

 

는 의미의 괘를 얻었고 한시름 놓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머지않아 일이 잘 풀려서 순풍에 돛단 듯 좋은 한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

뜬금없는 오래 전의 이 이야기는 근래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돌이켜 볼만한 것이라 여겨진다.

 

제법 여러 달이 지나도록 나 자신 뿐 아니라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바, 심지어

 

‘거개의 사람들에게 이제는 수련까지 못하게끔 어려운 환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는 극단의 비애 섞인 표현이 생겨날 만큼 정신적 질곡에서 벗어나는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 일어나고 있는데, 윗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시련과 고통은 하늘의 지극한 사랑이라~‘

 

하늘의 사랑을 듬뿍 받은 탓인지? 악역에 대한 작은 심득 덕인지? 여러모로 좀 더 여여해지고 있다.

 

한때의 작은 어려움에 휘둘리어 전전긍긍하는 어리석음도 필요한 과정이라면 덤덤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소명을 지녔든, 소임을 깨닫든 하는 원초적인 부분조차도 때로 담담해지며,

건강과 더불어서는 부지불식간에 생사여의를 가늠해 본다.

 

근래 마음의 변화 가운데 하나는 영화나 영상 혹은 책들을 통해 접하는 유독 감동적인 장면에서만 목이 멘다거나, 눈시울을 적신다거나, 가슴이 북받치는 등의 감정의 조절이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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