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과 비국소성
비국소성(非局所性, non-locality) 원리란 우주의 어떤 구성요소도 전체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고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실상은 서로 연결된 있다는 이론을 말한다. 따라서 떨어져 있는 입자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호 작용이 거리와 상관없이 빛보다 빨리 동시적으로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아울러 관찰자와 대상은 공간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과거, 현재, 미래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별들도 같은 시간에 보내진 빛이 아니라 각각 그 별의 거리에 따라 보내진 시간이 다르다. 가령 1광년의 거리에 있는 별과 100광년의 거리에 있는 별은 빛은 동시에 각자의 눈에 포착되지만 사실은 1년 전의 모습과 100년 전의 모습이다. 만약 그 사이에 다른 변화가 생겼다면 지금 바라보는 빛은 현재의 실체와 다르다.
그런데 빛보다 빠른 존재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국소성은 빛보다 더 빠른 존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빛보다 더 빠른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기(氣)이다. 마음은 시공을 뛰어 넘는다. 기운도 마찬가지로 심즉기행(心卽氣行)이라 하여 마음이 가는대로 따라서 움직인다.
그 예를 들어보자.
일월성법 수련 시 일월성을 의식하게 되면 마음은 즉각 일월성에 가게 된다. 우리가 다만 보낸 마음이 도달한 것인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다름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서로 아주 잘 통하는 사람에게 보내면 명료하지는 않지만 어렴풋 인지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이 교류하는 증거이다. 가령 풍수법에서 특정 지역의 감정에 대해 기운을 끌어 보면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그 특정 지역의 기운에 담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 특정 지역이 감정을 받아들이고 느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일월성법 수련을 할 때 소정의 단계에 이르면 기운을 끄는 별빛이 깜빡거리며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거리와 시간과 무관하게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에 몇 사람이 각각의 별을 골라 시도를 해보면 같은 반응을 보이는데 바로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기운용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수반되는데, 기운을 보낸다거나 기치료를 하는 경우에도 확인이 가능하다.
기운을 보내는 경우에 대해 예를 들어보자. 지금은 인터넷 시대여서 채팅이 가능한데, 예전에 경기도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수련에 관심을 보이는 분이 있었다. 이 분은 나의 추천으로 구리지원에 잠시 다니다가 수련을 그만 두었다. 초심자인 경우 꾸준히 옆에서 관심을 가지고 케어해주는 멘토가 매우 중요한데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니 결국 도중에 포기한 것이었다. 로그인 상태에서 인터넷을 하다 보면 대화상대가 접속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분은 수련에 관심이 많아서 어느 날 대화를 청해왔기에 기운용을 시도했다. 티백에 담긴 녹차를 뜨겁게 우린 상태에서 뚜껑을 덮고 기다리라고 이야기했다. 차가 너무 뜨거우면 향을 느끼기 어렵기에 찻물이 어느 정도 식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운을 보냈다. 수련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런 시도가 처음이었기에 조심스러웠다. 갑자기 기운을 보내려니 마땅한 대상이 떠오르지 않아서 복숭아 통조림을 연상하고 그 기운을 보냈다. 보낸 기운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당히 찻물이 식었을 즈음 맛을 보라고 했더니, 찻잔을 덮은 뚜껑을 여니 복숭아 통조림의 향이 가득 난다고 하였다. 심력이 제대로 작용한 것이었다.
기치료의 경우에는 경남 해안 부근에 사는 다소 상태가 심각한 어린 환자가 있었다. 도반과 인연이 있는 분의 자제여서 여러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우려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기로 하고 전국 각처에 있는 도반들이 천리안 도담실에 모여 각자의 기운을 미리 지정한 혈자리로 나누고 시간을 정해 여러 번 보냈다. 이 기치료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 어린 환자는 병명과 증상이 일치하지 않기 시작하였으며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있다는 연락을 나중에 받았다.
이러한 비국소성의 의미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확대해석한다면 이기적이거나 배타적인 사고의 결과는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인과율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수련이 나아가고 단계가 높아질수록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선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단계가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큰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라는 개념이 협의의 개념이 아니라 포괄적인 광의의 ‘우리‘라는 바탕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즉 같이, 함께 더불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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