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관련

수련과 단란주점

수암11 2011. 1. 2. 00:15

수련과 단란주점

 

 

 

수련을 하는 학인들은 오욕칠정을 자극하는 환경을 회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학인들은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정‘, 그리고 ’흥과 신명‘의 문화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어서 이와 관련된 환경을 배제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쉽지 않다.

 

한당선생님에 관한 기억을 쓰다 보니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떠올라 마저 적으려 한다.

 

초기 수련을 할 당시에 접대 술자리와 수련과의 관계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었다.

특히 점검 날 약속된 접대술자리가 세 달이나 연속으로 있어서 술을 들이키면서도 내색은 않았지만 속으로 ‘내가 이게 무슨 기구한 팔자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련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잣은 음주 탓인지 기감이 전혀 없었지만, 단동일지만은 매일 빠지지 않고 보냈는데, 어느 단란주점에서는 예쁜 도우미 아가씨들과 일행이 광란의 춤과 노래를 즐기고 있었지만, 술기운도 조금 빌어 번쩍이는 현란한 조명 아래 눈을 크게 뜨고 생생한 수련일지를 써내려가 다음날 편집하는 분에게 보낸 적도 있다. 일지라는 게 떠오를 때 쓰지 않으면 그 감각을 잃어버려 다시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때에는 수련 도중에 중요한 심득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련이 파하고 나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경험을 수차례 경험한 후에는 수련이 파해도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해내는 요령을 습득하기도 했다. 법수련 점검에서는 수련일지가 필수적이었는데, 기감 하나 없는 내가 일지만은 살을 붙여서 근사하게 포장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옛 일지를 들여다보면 과거의 초심을 발견하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도 되니 솔직한 일지의 기록이 수련에 차지하는 비중이 참으로 크다 하겠다.

 

젊은 미혼남녀들의 모임인 선비단은 각 지역의 행사가 있을 때에는 하루 전에 내려가 일정을 도왔다. 당연히 명예회원 격인 나는 선비단의 일원이자 도각회의 일원으로서 늘 참여를 했다.

 

광양지원에서 도화재 체육대회를 할 때의 일이다.

도화재 전국체육대회는 일 년에 한 번씩 행해지는 전국 모든 도반들과 실무진의 행사인데, 모든 도장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새벽에 출발하여 당일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귀가하는 행사로서 연중 최고의 행사였다. 각 도장에서는 정성껏 마련한 각 지역의 특산물을 가지고 와서 나눠 먹기도 하며 처음  보는 어떤 도반도 기꺼이 맞아 들여 정성을 아끼지 않고 대접을 한다. 그래서 그 날만큼은 작심을 하고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처음 보는 사람과도 마주하며 술잔을 나눈다. 이 날 만큼은 생일 이상인데 내 경우는 어느 지역에서 우승을 하건 운동경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운동장을 몇 바퀴 돌면서 종일 술을 마시다 보면 그날 하루해가 저문다. 어떤 때는 만취가 되어 사람 넷이서 사지를 잡고 버스에 태워 싣고 온 적도 있었다.

 

상계지원인가 어디서는 객이 주인 행세를 하면서 오가는 이들을 모두 불러들여 술과 안주를 권하기도 했는데, 술이 떨어지면 아무 지원이나 찾아가서 술을 얻어와 대접하기도 했다. 주인을 밀쳐내고 하도 오가는 이를 불러 술을 권하니 참다못한 비슷한 또래의 상계지원의 도반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으나 괘의치 않고 뻔뻔스럽게 이어갔으니 지금 생각해도 후안무치였다.^^;;; 하지만 당시 내 생각에 그게 도화재 문화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광양지원에 주관하는 체육대회 때였다. 하루 전에 선생님을 모시고 내려가 도각회 틈에 끼어 대접을 잘 받았다. 선비단들은 내일 일정에 역할을 분담하느라고 회의가 길어졌다. 나중에 연락 하자고 하고는 2차에 따라 붙었는데, 단란주점 같은 곳이었다. 시중들 도우미를 두 명 불렀는데, 선생님은 중앙에 자리하고 그 옆에 도우미를 한 명 앉혔다. 나머지 한 명에게는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으니 뻘쭘하니 있다. 술을 시키고 마시는데도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점잖게 있으니 여기가 아가씨들이 시중드는 술집인지 본원 5층에 있는 선생님 집무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간 접대에 갈고닦은 솜씨로 혼자 썰렁하게 있는 도우미 손을 잡고 출줄 모르는 지루박을 추면서 흥을 돋우었다. 그러다가 선비단이 어느 노래방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말없이 줄행랑을 쳤다.

 

유흥문화는 도화재문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조화란 남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상대의 눈높이에 맞춤으로서 비롯되는 것이다. 선과 악은 양면의 동전 같아서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권장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는 그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본다면 악도 선과 동시에 하늘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악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의 용도는 분명 있는 것이다.

 

한때 선악에 대해 고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도마불이(道魔不二)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학인이라면 일부러 스스로를 좋지 않은 환경에 노출시킬 필요야 없겠지만 주어진 환경을 탓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어렵다고 그 역할을 회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공부환경이라는 것은 어려운 환경은 대부분 극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적인 관점에서 좋은 환경은 정말 극복하기 힘든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아무리 하찮은 영들이라 해도 그들의 생각들과 의사를 들으시고 하시는 말도 그들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마음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실천을 몸소 보여주는 당시 경사님의 말씀(2001년 1월8일)은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오랫동안 뇌리에 각인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