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관련

의식분할과 집중

수암11 2011. 3. 14. 11:31

 

의식분할과 집중

2011.13.14

 

 

5년 넘어 해오던 채약을 끝내야 될 때가 온듯하다.

“채약노트를 써라” 한지도 몇 해가 되었다.

기감 탓으로 돌리고 그냥저냥 해왔던 수련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다 보니 수련을 등한시하게 되고 넘기 어려운 심고에 끄달리게 되고 육신의 병까지 얻어 제법 오래 자포자기와 제반사정으로 한동안 수련도 그만 두었었다.

꼭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있다 보니 주변의 여러 관심과 채근으로 수련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어려운 환경을 조금도 개선될 여지가 없었다.

 

그런 어려운 환경은 태생(胎生)적으로, 원래 의도한 바로 나아가기 위한 동력(動力)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다잡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한편 안배된 사실을 번연히 알고 그냥 방치하면 결코 수월케 넘어가는 법이 없어서 이것저것 번잡하게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근래에는 오랫동안 힘든 생활을 해오는 가운데, 사소한 일이라도 생길라치면 즉각 그 의미가 와 닿는다. 어려운 가운데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가 많다 보니 예민한 탓도 있겠지만, 자연스레 전해져 오는 메시지의 의미가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러한 메시지 이전에 능동적인 대처로 불필요한 상황으로 몰고 갈 필요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탓인지 계속 습을 반복하고 있다.

 

 

주변에서 전해주는 강력한 메시지는 설렁설렁하는 수련의 습에서 벗어나 현재의 국면을 뛰어넘어 라는 것이어서 수련의 집중도를 높이기로 했다. 그 방법 중의 하나로 일정한 수련의 패턴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쉼 없이 집중적으로 꾸준히 수련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수련이라는 것은 도장에 와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몸과 마음이 늘 준비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수련에 임해야 효율적인 수련이 되다 보니 호기심 많고, 즐길 거리가 많은 세상에, 호구지책과 가족, 그리고 주변까지 신경을 쓰고 잘못된 육신의 습까지 극복해야 되다 보니 참으로 쉽지 않다.

 

 

저녁 정규수련시간 사이에 다담을 빌미로 수다를 즐기던 습도 버리고 수련에 매진하다 보니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다.

 

 

큰소리가 성대주변의 자율신경을 각성시켜서 몸과 마음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앞에서 체조 시에는 흉곽을 부풀려 애써 큰소리를 내는데, 조금 전까지 어두움 속에서 수련을 하다 보니 전등에 눈이 부셔 눈을 감고 체조를 하게 되고 자연 의수단전과 내관반청(內觀反聽)이 이루어지면서 몰입과 체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체조동작을 설렁설렁 하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하면서 목청은 더 또렷하게 하지만, 한편에 단전에 몰입은 여전히 이어져 있어서 그 끊을 놓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의식분할이구나!’ 하는 생각이 일었다.

 

의식분할과 몰입을 두 번째로 경험한다. 얼마 전 단전에 끝없이 다량의 노란 빛이 쏟아져 들어올 때에도 그런 경험을 하였다.

당시 수련을 마치고 귀가하는 밤길 운전 도중에 눈을 뜨고 있는 상황에서도 단전에 빛이 한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며칠간이나 경험 하였다.

 

의식분할은 의식을 둘로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나눌 수도 있겠지만, 나눈다고 해서 그 깊이가 얕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몰입도가 깊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문득 ‘장수에 집착하는 것이 장수의 최대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도통에 집착하는 것이 도통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는 문구가 생각이 난다.

 

이루고자하는 간절함이 때로 욕속부달(欲速不達)로 이어지기 십상이어서 인간이라면 마음이 앞서고 집착에 빠지기 쉬운 것이 당연지사이다. 그래서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와 닿는다. 내관반청을 통해 담박(淡泊)하게 의식을 나누는 것이 더 깊은 몰입으로 유도 한다.

 

 

때로 나름대로 열심히 수련할 때보다 바쁜 시간을 쪼개 수련할 때 우리는 그 정성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수련의 효과를 본다고 이해하려 한다.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보다도 바쁜 시간 가운데 수련을 한다는 것은 의식분할의 효과와도 유관하여 평시보다 더 쉽게 몰입에 들 수 있는 여건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수련의 효율성은 의외로 가까운데 있으며 우리 수련이 쉬운 수련이 될 수 있다는 표현은 이점에서도 입증되는 것이다.

 

 

 

여의주에는 ‘신명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를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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