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란...
2009.03.25 20:52 | 무림비사 | 가난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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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강호라 하면 육조 혜능의 제자인 마조 도일과 석두 혜천이 각각 강서와 호남에 머물렀기 때문으로, 당대의 고승인 두 사람에게 배움을 청하고자 사람들이 두 지방을 오갔기에 이를 두고 강호라 했다고 많이들 알고 있다. 물론 불교에서 전해지는 전설로써, 무술가들이 말하는 강호는 이와는 약간 다르다.
또다른 설로써 강은 장강을, 호수는 동정호를 가리킨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또 무술가 가운데서는 강은 회하를, 호수는 소호를 가리킨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창주의 팔극권을 비롯 팔괘장 등의 여러 무술의 발흥지이자 수많은 무술가를 배출했던 안휘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참고로 수호전의 무대가 되는 양산박도 안휘성에 있다.
하긴 그러고 보면 안휘는 회하 외에도 구강과 사수 등의 여러 강과 지류가 굽이굽이 갈래져 있는데다 그 사이에는 습지며 호수가 무수히 자리하고 있었다. 수양제 때는 대운하가 건설되면서 황하와 장강을 잇는 교통로로 중요하게 여겨지기는 했지만 워낙 삼국시대, 그리고 오호십육국과 남북조시대에 서로의 군사력이 대치하는 최전선이었던 탓에 개발이 뒤쳐져 북송 대까지만 하더라도 죄인들을 유배보내는 유배지로 쓰이고 있었을 정도였다. 수호전에서도 임충, 양지, 무송 등이 유배된 곳이 바로 이곳 안휘였다. 여러가지로 무협에 나오는 강호의 배경에 딱 맞는다. 그래서 또 최근에는 이쪽에 무게가 실리기도 하는데...
그밖에도 원래 강호란 말했듯 장강과 동정호로써 안휘, 강소, 절강의 강남을 일컫는 말로, 수당 이래로 대운하가 건설됨에 따라 강남이 크게 성장하면서 여기저기서 기회를 바라고 미국에서 골드러시가 있듯 강남러시가 이루어지던 것들 말하는 것이라 하기도 한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게 그런 뜻인데, 미국의 서부가 그러하듯 아직 행정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 자유롭지만 또한 위험하기도 한 강호라는 환경이 이후 강호라는 말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강호라는 단어는 이미 장자의 대종사편에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泉학 漁相與處於陸 相구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 與其譽堯而非桀也 不如兩忘而和其道
샘이 말라 물고기가 서로 뭍으로 나와 서로 물기를 끼얹고 서로 물거품을 적셔줌은 드넓은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사는 것만 못하다. 요를 칭찬하고 걸을 욕하기보다는 둘 다 잊고 하나가 되느니만 못하다.
물론 여기서도 강호는 말 그대로 강과 호수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비유로써 육지와 대비되는 세상을 뜻한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참 뒤에 나온 반고의 <한서>에는 이보다 더 의미있는 강호가 쓰이고 있으니,
乃乘扁舟, 浮江湖
(범려는) 마침내 한 척 배를 타고 강호로 나갔다.
여기서 보이는 강호가 우리가 흔히 아는 바로 그 강호다. 자유롭고 기회와 위험이 상존하는. 풍진세상이라던가? 얼핏 잔잔해 보이는 강과 호수지만 비바람이 치고 하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기에 어느덧 관이 지배하는 세상 바깥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그러고 보면 마조 도일과 석두 혜천의 예나, 장강과 동정호, 혹은 회하와 소호에 대한 설이나, 안휘의 설이나, 수많은 강과 호수로 이루어진 강남에서 기원을 찾는 것이나 가리키는 바는 결국 하나다. 천하가 천자가 다스리는 세상이라면 강호란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관의 지배를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들이 위험을 벗삼아 기회를 탐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무협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문필가들 역시 강호라는 말을 세상이라는 말 대신 흔히 쓰고 있었고.
즉 강이 어디다 호수가 어디다 하는 것은 단지 후대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그리 갖다 붙인 것일 뿐 강호란 그저 강호일 뿐이라는 것이다. 장자는 이미 강과 호수로써 세상을 뜻하는 말로 썼었고, 반고도 풍진세상을 뜻하는 말로 강호를 쓰고 있었다.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것으로 부족하다 여기니 사람들이 따로 의미를 만들어 붙였을 뿐.
산천山川이라 한다고 산과 개울만을 이야기할까? 사해四海라 한다고 네 바다만을 말할까? 강산江山이니 산하山河니 결국은 강과 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강과 산으로 이루어진 세상 자체를 뜻하는 것이다. 강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굳이 강과 호수를 나누고, 산과 강을 나누고, 강으로만 호수로만 산으로만 강으로만 말하려 하고 있으니...
이 이상은 전화 걸려올지 모르니 패쓰. 다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하는 성철스님의 법어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문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것이다. 설마 10년이면 강산도 바꾼다는게 10년이면 운하 하나 파고, 산에도 골프장을 지을 수 있겠다는 그런 뜻었을까? 강호는 강호, 강산은 강산, 산천은 산천... 무식한 건지 아니면 무모한 건지...
참고로 원래 무협소설에서도 무림이라는 말이 쓰인 것은 20세기 이후부터다. 정확한 작품제목은 기억을 못하는데, 아무튼 20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협소설에서 그들의 세계를 칭하는 이름은 강호, 혹은 녹림이었다. 그보다는 강호. 요즘에야 참 찾아보기 힘든 단어가 또 강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요즘은 진짜 강호라는 말 안 쓰더라. 세대가 바뀐 탓인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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