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는 다른 인종
남녀의 시각차가 현저하다는 표현은 여러 관점에서 언급되지만 내 경우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언젠가 언급했던 비교적 완고한 기성세대분이 젊은 세대의 짧은 옷차림에 대해 지니는 생각을 말했듯이 시각차가 워낙 커서 병존할 수 없는 그 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다른 하나는 조선통신사의 기록을 읽으면서 생긴 의문이었다. 일본을 방문했던 조선통신사들의 기록을 보면 일본 불교의 풍습이 나오는데 그 내용을 보면 아연할 정도였다.
조선은 유교국가여서 남녀의 구별이 엄격했지만 일본은 남북조의 내란이 수습되었다고 하지만 호족 사이에 반목과 다툼이 계속되었고 무력충돌로 많은 남성이 죽었다. 자연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나 많았다. 너무도 개방적인 성 풍속에 당시 《노송당일본행록》을 썼던 송희경은 당황하여 그 내용들을 기록에 남기고 있다. 심지어는 젊은 비구니외 비구가 동숙하여 아이를 가지면 그의 부모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낳은 후 불전으로 돌아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꿇어앉는 자세도 속옷을 입지 않아 볼썽 사납게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행해진 습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조선통신사의 기록들은 흥미진진하여 모든 관련 기록 뿐 아니라 관련 서적 및 학술논문을 섭렵하고 정리하는 계기가 되는데 이런 역사, 사회문화적 배경을 도외시하고 가타부타 논하는 것은 편향된 시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나의 도덕적 잣대와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적 사실들은 남녀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남녀는 서로 다른 족속이라는 점을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남녀는 동일한 사회 속에서 결혼이라는 오랜 관습으로 맺어져 생활을 같이 하고 있지만 인종적으로는 따로 구분 짓지 않고 다만 성별정도의 구분만 하고 있어서 같은 족속이라는 개념이 더 강하다. 같은 언어를 쓰고 있기에 같은 족속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남녀가 구사하는 언어의 의미는 남자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개 남녀 간에는 7가지 정도의 현저한 차이가 있으며 이 차이를 남성들은 거의 관심도 없고 알지 못한다.
학창 시절 복학 후 학점에 여유가 있어서 아는 형과 가정대 4학년에서 수강하는 ‘가족관계‘ 라는 과목을 듣는 과정에서 배웠다. 아는 형은 수업에 잘 들어오지 않아 수업을 들으러 교실문을 여노라면 40명 정원의 졸업반 여학생과 이전 수업을 하고 있던 여교수님까지 82개의 시선집중을 받았다.
전통적인 사고관은 남녀의 차이에 대해 남성 측은 어느 정도 힘을 쓰는 입장이어서 별반 염두에 두지 않지만 여성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차별적인 부분이 많아서 여대생 4학년의 과정에서 전공 선택과정으로 수강하고 있었다. 기억나는 부분만 대강 나열해보면, 성장, 발달의 차이, 표현(감성 혹은 이성적)의 차이, 성적 충동의 차이 등 정확한 표현인지는 확연하지 않으나 의외로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으나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자들은 원래 그러려니’ 치부하는 편이어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비록 원서로 된 책이었으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올 듯하지만 인터넷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다시 또 꺼내는 것은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를 하고 있지만 나름 통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해라기보다 오히려 포기가 더 적절한 표현이다. 상대가 하는 표현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보다는 자신의 필터를 통해 받아들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의도하는 정확한 의사전달이 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약자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어느 정도 관용적으로 용인이 되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역할이 커지고 지위가 올라가면서 이런 전통적인 사고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많은 여성들은 이제 과거의 순수한 약자의 입장에 있지 않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대중매체들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의 변화는 역동적이면서 여성이라는 집단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여성들에 의해 황혼이혼이 쉽게 회자하는 것은 소통의 부재가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기존의 관습이 여성들의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기에 그나마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좀 더 사회가 변화한다면 더 많은 질서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여성들은 그동안 남성들을 위해 포기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불소통에 대해하나의 습관과도 같이 포기를 거듭하면서 살아왔다.
어설픈 영어가 국제학술대회의 공식 영어라는 의미에는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이어서 미리 충분해서 귀를 열고 있기 때문이듯 여성들은 거의 선천적이라고 할 만큼 항상 마음을 열고 있다.
남녀는 같은 사회조직 안에서 같은 언어로 생활을 하다 보니 별개의 족속으로 취급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다른 인종보다도 더 다른 족속들이며 실제 표현되는 언어도 다르다. 그런데도 평시에는 별반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바로 남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의 어머니요, 누이요, 딸이기도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 간에는 이미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열려있기 때문에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대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기질적으로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소통에 있어서 충분히 마음이 열려 있는 편이다. 여자들은 속칭 ‘나쁜 남자’ 라는 이해되지 않는 표현을 쓰는데, 그 나쁜 남자에게조차 매력을 느끼도록 마음이 열려있는 것이 여성이다. 그러나 여권이 커지고 대중매체의 발달로 소통이 쉽게 이루어지면서 이런 시회구조에 변화가 오고 있다. 황혼이혼이니 만혼이나 과거에 비해 현저히 늘어난 이혼율이 바로 그것이다.
소통이 확대되면서 더 많은 소통이 요구되는 과도기임은 틀림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