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나아가는 길이 아니다.
2011. 01. 10
수련과 수련을 통한 완성을 바라는 나 자신의 염원은 나 혼자만의 염원이 아니다.
나를 창조한 조물주의 바람이기도 하고 나라는 존재를 지구라는 수련장에 보낸 ‘그 무엇’의 의지이기도 하다.
그동안 수련의 당위성에 오욕칠정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도리에 끄달리며 이러한 사실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의 봉착은 끝없는 수심으로 이어졌으며 갈림길에서 ‘진정 내가 선택하고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하는 고뇌와 함께 순간순간 주어지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문득 생각에 그간 나 혼자의 관점에서 늘 바라보고 접근하고자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조화라는 명제 아래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염두에 두었지만, 스스로의 수련에 있어서만큼은 간과하고 적어도 그 부분에 있어서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주지 아니하였다.
이 부분은 오랫동안 윗분 혹은 선배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들어 온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념으로만 머물고 있었다.
진정한 배려의 실천과 그 실천이 자연스레 배어나오도록 노력한다고 했지만, 스스로에게조차 배려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그야말로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책임이 따른다.
내가 부여받은 자유의지는 부여한 자의 의도나 염원이 담겨진 것이다. 그동안 내게 주어져 있으므로 주체가 되어 내키는 대로 사용했지만, 순수하게 부여한 자의 의도나 담겨진 염원에 대해 깊이 있게 숙고하고 사용한 적은 없었다. 막연히 인간의 도리와 규범을 근거로 한다 하였지만 그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감정에 휘둘려 사용되어졌다.
그동안 그 입장을 아주 조금이라도 인식했더라면 과연 어리석은 판단으로 이어졌을까?
한마디로 그간의 내 삶은 아주 몰염치한 행적의 연속이었다.
설혹 도덕이나 규범, 혹은 부여한 자의 의도와 일 순간적이나마 부합되었다 하더라도 진정한 주체로서의 자유의지나 노력은 사용되지 아니하였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이제는 좀 더 사고의 확장을 통해 더 큰 ‘나’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며 수련 또한 더 큰 주체의 인식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공자는 주역 계사전(繫辭傳)에서 공부의 방법으로써 "근처저신(近取諸身)하고 원처저물(遠取諸物)하라" 하였다. 이는 "가까이서는 너의 몸에서 취해보고 멀리서는 만물에서 취해보라"는 의미로 ‘진리를 구할 때 가깝게는 자신의 몸 안에서 구하고 멀리는 사물과 우주현상에서 구하라’ 하였다. 그러나 학인으로서 우리 수련을 통해 좀 더 실체적 자아를 인식한 이상 멀고 가까운 대상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나가가는 마음도 필요하다.
그동안 더 큰 자아와 교감을 얻고자 했지만, 정작 내 쪽에서 문을 닫고 있으면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련도 마찬가지이다. 수련의 진척을 바라는 마음은 비록 간절했지만, 소아(小我)를 통해 담을 수 있는 그릇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막연한 수련에 대한 염원은 좀 더 구체적이지 못하고 관념에 머물고 있었다.
오늘 수련은 이런 관점에서 시도되었으며 보다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되었으며 나름대로 소중한 성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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