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야생너구리
어쩌다 보니 속리산 자락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금년은 충청도와 인연이 많은가 봅니다. 보은은 더운 여름 한철을 포함, 벌써 2번째입니다.
속리산IC 부근에 삼가 저수지가 있습니다. 언젠가 이 저수지가 넘쳐 제방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 하류에 새로운 댐을 쌓기로 하고 지금은 공사 중에 있습니다. 속리산 자락이어서 그런지 산세가 험하고 기암절벽이 많습니다.
저수지 하류
본 댐이 위치하는 지역은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협곡부분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이곳도 마찬가지여서 양 쪽의 지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새로 축조될 댐은 비룡댐으로 이름이 붙여졌고 충청북도에서는 담수량이 가장 큽니다. 본 댐에 인접한 사면을 절개하다보면 낙석이 많이 발생하게 되는데 여기는 그 정도가 더 심합니다. 절취면을 보면 수많은 절리와 구조대들이 보입니다. 특히 여러 군데의 단층대가 절취과정에 사면을 불규칙하게 패이게 만들었고 이들로 인해 생긴 불안정한 구조를 보강하기 위한 작업들입니다.
멀리서 본 현장 - 200톤 크레인 상부를 우선 보강합니다.
단층대 - 중앙 좌측에 보이는 누런 부분이 단층에 의해 생긴 소위 단층점토와 그 우측 부분을 포함하여 단층대라고 합니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철골로 만든 틀을 대차라고 하여 매달린 호스를 통해 콘크리트 뿜어붙이기(shotcrete)를 하여 1차 낙석방지와 보강이 이루어집니다.
저 높은 위쪽은 200톤 크레인의 붐이 닿지 않아서 사람들이 로프를 매고 작업을 합니다.
이번 공정은 여러 후속 공정들이 이어집니다. 여기 지질은 백악기의 안산암과 그 상부에 쌓인 응회암 그리고 이들을 후기에 관입한 암맥들이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콘크리트 뿜어붙이기는 고압공기를 이용해서 골재를 분사, 부착시키는 공법인데, 약간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골재를 주입하는 호스가 가끔씩 막히는 것입니다. 골재에 의해 호스가 막히면 작업을 중단하고 굳기 전에 모두 털어내야 합니다. 보시다시피 저 긴 호스를 털어내자면 만만치 않습니다. 11월 14일 오전 11시 경 주입호스가 또 막혔습니다. 저는 10일 여기 온 이래로 제반서류와 작업준비 관계로 전혀 짬이 나지 않았으므로 이 기회에 댐 상류부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삼가저수지 제방까지 왔습니다. 천천히 운행 중에 길옆에 누워있는 작은 짐승을 발견했습니다. 여기는 공사구간 내로 일반차량진입이 통제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로드킬인가 해서 차를 세우고 보니 너구리 한 마리가 누워서 천천히 숨을 쉬고 있습니다.
삼가저수지 안내판
처음 발견했을 때는 14일 오전 11시경, 아스팔트 포장 위에 엎드려 있습니다. 전 로드킬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랫배가 울룩불룩 천천히 숨을 쉬고 있습니다.
제가 뭐라고 말을 붙이니 한동안 경련을 일으키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길 가로 간신히 몸을 옮깁니다.
말을 계속 걸어 보지만 모른 체하며 간신히 몸을 옮깁니다.
다시 드러눕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보니 눈을 뜨고 있습니다.
기진해서 엎드려 있습니다.
계속 말을 붙이니 너구리는 감았던 눈을 뜨고 잠시 쳐다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곳저곳에 전화를 했습니다. TV에서 본 것처럼 119에 전화를 하니 속리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로 연락을 취하라고 합니다. 114의 안내대로 연락을 하니 위치를 확인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삼가저수지입니다. 몇 년 후면 수몰 되겠지요
상류를 바라보고...늦가을 늦은 오후, 을씨년스럽습니다.
제방 위에서 바라본 모습
잠시 기다리는 동안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반대편 도로는 통행을 차단하기 위해 막혀 있습니다. 다시 너구리가 있는 곳으로 옵니다.
요란한 지프차 엔진 소음에 놀란 듯 여러 번 경련을 일으키더니 안간힘을 쓰고 일어나려 합니다.
안간힘을 쓰며 걷습니다.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속리산 국립공원 관리차량이 왔습니다.
세 분이 오셨는데, 너구리가 침을 흘린 모양을 보니 병이 들은 게 아닌가 합니다. 털 상태가 좋고 튼실해서 늙어서 수명이 다한 것은 아닌 듯 보인다고 합니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외상이 아닌 한 야생동물의 생활에 간섭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 합니다. 더 이상 손을 쓸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연락을 취하기 전에 지니고 있는 배낭에 너구리를 담아 관계 기관에 연락을 취해 가져갈까 생각도 했습니다만, 연락된 주변에서 너구리는 죽은 체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안간힘을 다해 덤벼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리고 저의 과도한 행동이 너구리에게 더 많은 스트레스를 줄 것이 틀림없는 것이고 잡아서 가져갈 곳이 없다면 그도 문제인 것이지요.
오후 4시경 잠시 짬을 내어 너구리를 찾아 왔습니다.
기진해서 누워있습니다.
속수무책이지만 스스로 살아나기만을 바라고 현장으로 복귀했습니다. 내일 날씨가 추워진다는데 나뭇잎이라도 덮어줄까 했지만 마음뿐이었습니다. 너구리에게 힘을 내라고 이야기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니 눈발이 날리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통상 아침조회가 있지만, 오늘은 눈 때문에 조회와 작업을 중단합니다. 미끄러운 암벽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눈 내리는 삼가 저수지 새벽전경, 반사된 불빛은 눈으로 생각됩니다.
불쌍한 너구리는 눈을 맞으며 죽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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