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이 잘되지 않을 때
수련이 잘되지 않을 때
근래에는 기운이 좋은 탓인지 무척 수련이 잘되는 편이다. 학인에게 있어 수련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상당히 예민한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수련이 잘되는 시기에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는 속담처럼 바짝 수련에 매진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도 쉽지는 않다. 대개 마음만 앞설 뿐 이미 몸에 젖은 습으로 인해 의도대로 잘 진행이 되지 않는다. 이것을 바로잡는 일은 단 하나 밖에 없다. 강박관념을 버리고 평시에 꾸준히 틈이 나는 대로 수련을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지금 현재는 과거가 쌓여 존재하는 것이다. 미래는 내가 만드는 것처럼...
어떤 선각자는 인간에 대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을 한다. 그 내용은 ‘한 공간에 존재하는 인간일지라도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닌 실상은 각각 시공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로서 자리한다.’ 라는 표현을 했다. 집단은 개개인이 같은 공간에 모여 있는 듯하지만 서로 다른 빛대의 시공에서 투영된 모습이 자리하고 있어서 동등한 개체가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대의 개체가 모여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는 것이다.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에는 그런 부분이 포함되어 있고 대화와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인간이 인지하는 차원의 시간과 공간 너머의 부분을 설명하지만 현대물리학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기도 하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자신의 위치를 더 큰 인식체계 안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훨씬 더 간결하게 바라볼 수 있으며 이해의 폭도 커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차원의 존재가 모여 있다면 인간이 늘 추구하는 경쟁이나 비교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예 서로 간에 비교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인데 이 논리가 세상에 나온 것조차 때가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처음부터 인식하고 있었다면 삶의 추동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변화나 발전의 여지가 줄어든다.
이 내용에는 인간이 만든 여러 제도적인 관습이나 인식이 오히려 나중에는 영혼진화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며 삶 가운데에서도 스트레스의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하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한조도담에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에는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은 항상 주변과 비교하고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수련이 잘된 때와 비교를 하기 때문에 수련이 잘 되느니 못되느니 힘들어 한다. 인간의 이러한 습성 때문에 스스로 만든 자가당착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수련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련을 하라고 하는데 실상을 알고 보면 내려놓을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비교하는 심리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 하고 왜 수련이 안 될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 가보면 제대로 잘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련이 잘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단정 짓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섣부른 단정이 수련을 가로막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지부진 한 경우에는 과감히 떨쳐 버리고 간절함을 가지고 복습을 빠르게 진행(가령 2분 단위)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기감을 느꼈던 기억을 염두에 두고 수련할 필요는 없다.
이미 수련은 잘 되고 있는 것이다. 오직 필요한 것은 도성오심이니 하는 덕목들이지만 이 또한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다만 화두로 잡고 있으면서 나아가는 가운데 조금씩 깨달아도 좋다.
복습을 빠르게 간절히 하라는 의미는 잘하려는 강박감과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마음을 추스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순수나 순일 등의 덕목이 와 닿지 않는다면 무심한 상태에서 한조도담3(219)에 보이는 심법과 심상과 심력이 하나 되는 것이야말로 간절함과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