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관련

혜안

수암11 2016. 8. 22. 14:30

혜안

 

다담 말미에 나 자신과의 소통에 있어서 마냥 기다리지 않아도 나중에는 실시간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도장 윗분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그런 수련은 들어 보지 못하였으며 누구라도 그런 수련을 할 수 있는 공평한 여건을 지니고 있다면 그야말로 공전 절후한 수련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 이후로 이것은 화두가 되었다. 물론 전혀 와 닿지 않았다. 다만 예전에 한당선생님께서 대주천을 이루면 혜안이 열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으며 실제 주변에 혜안이 열린 도반이 있었다.

혜안이 열린 경우에는 본인 스스로 어느 정도 여과, 제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너무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이 되어 오히려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내가 들은 바로도 고수의 도움을 받아 열린 혜안을 닫는 경우도 2건 정도 있었다.

 

혜안이 열린 도반은 처음에는 내면에서 무언가가 자꾸 삐져나오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나중에 혜안이 열린 것이고 혜안은 주변 사람들의 공부를 위해서만 사용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듣고 조심스레 사용하게 되면서 당시 단동에 혜안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야말로 본인부터 가까운 주변인들까지 수련과 관련된 궁금증을 묻는 행렬이 당시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그냥 이름과 간단한 인적사항을 언급하면 즉각 시가 쏟아져 나왔다. 당시 주옥같은 시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오니 하도 아까워서 그걸 모아 시집을 내도되겠다는 생각이 내내 있었다.

삼행시가 너무 짧다고 아쉬워하면 오행시나 칠행시로 쏟아내기도 했다.

나중에는 점점 묻는 이들도 진화하여 가령 수련을 하는 이가 중요한 일을 목전에 두고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나 방향을 묻는 등 다양한 의문에 대해 혜안의 힘을 빌렸다.

 

대개 내용은 당사자만 알 수 있는 내용이었는데, 옆에서 워낙 많이 듣다보니 대강의 내용이 짐작될 정도였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한 시절 조선시대의 대학자 출신이어서 시가 그렇게 매끄러웠던 것이었다.

당시 수많은 사람과 일에 대해서 혜안을 열어 족적을 남겼는데, 개인사들이어서 소개하기는 그렇고 현무와 현공은 다음과 같다.

 

현무

 

현무란 한을 풀어냄이 아니라네.

깊은 도의 뜻이 숨어 있음인데...

너무나들 가벼이 여김이...못내 아쉽다네.

 

현공

 

나를 비우고 기운을 타라.

상대의 움직임에 현혹됨이 없어야 한다.

나를 믿지 못하면 움직임도 없다.

 

도장 윗분께 자신과에 있어 실시간 대화가 혜안이냐고 질문을 드렸더니 같은 종류라고 답변을 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