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관련

독도와 대마도

수암11 2016. 8. 15. 15:06

독도와 대마도

 

지난 810일자 연합일보 뉴스에 '독도 한국령 첫 표시, 1947년 표목 사진 원본 공개라는 제하 기사와 사진이 실렸다. 표목 사진에는 조선 경상북도 울릉도 남면 독도1947820일 조선산악회 산하 '울릉도 학술조사대'가 독도 동도에 설치한 표목에 적힌 문구다. 이 표목은 독도가 한국령임을 표시한 최초의 시설물로 꼽힌다.

 

역사기록 가운데 조선말의 매천야록에도 왜놈들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110년 전에도 써놓았다.

 

매천야록은 황현이 1864(고종 원년)부터 1910(순종 4)까지 47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책으로 67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한말 위정자의 비리·비행, 외세의 침략과정, 특히 일제의 만행, 우리 민족의 끈질긴 저항 등이 실려 있어 식민통치가 끝날 때까지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다. 저자도 죽을 때, 바깥사람에게 보이지 말 것을 자손에게 당부했다. 그러다가 부본(副本) 1부가 상하이[上海]에 망명해 있던 지우(知友) 김택영(金澤榮)에게 보내져, 김택영이 한사계 韓史綮에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여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다음 백과).

 

병오년(고종 43, 1906)

매천야록 권5에 왜놈들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다

 

(4) 울릉도에서 바다 동쪽으로 일백 리 거리에 한 섬이 있는데, ‘독도라고 한다. 예전에 울릉도에 소속되었는데, 왜놈들이 억지로 자기 나라 영토라고 하면서 살펴보고 돌아갔다(황현 저, 허경진 옮김, 1995: 367, 매천야록, 서울: 한양출판).

 

참으로 집요하기 짝이 없는 행태이다.

 

일본이 대마도를 내놓지 않기 위해 독도 싸움을 계속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음은 뉴데일리 인보길 기자의 칼럼의 일부이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45큐슈에서 150로서 거리상 우리 땅이다.

 

대마도 반환을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이승만이다. 1948818, 대한민국 건국 사흘 만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국회에서는 대마도반환결의안을 만들었고, 이승만은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법적조치를 취하면서 수시로 대마도 내놔라고 요구한 것이 6.25때까지 무려 60여 차례나 이어졌다.

당시 신문에서도 이 내용을 기사로 여러 차례 실렸다.

당황한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워 회피하다가 북한의 6.25 남침전쟁이 나자 쾌재를 불렀다. “김일성이 일본을 살려준다.”며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조선 왕조 5백년간 대마도주는 대대로 조선의 관직을 받았다. 한 예로 세조가 대마도주에게 내린 직명은 '숭정대부 판중추원사 대마주 병마도절제사'(崇政大夫判中樞院事對馬主兵馬都節制使)였다.

조선왕조의 대마도 인식은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었다. 성종, 연산, 광해, 영조, 순조등이 내린 대마도 교지를 비롯, 빈번한 교류기록에 <대마도는 조선의 속방, 군신지간(君臣之間>이란 표현은 한곁 같다.

 

1750년대 영조때 <해동지도><대동총도(大東總圖)>설명문 "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태백산맥이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라는 말은 수천년 내려오는 우리의 국토인식, 주권의식에 다름 아니다.

해좌전도(海左全圖),팔도천하지도(八道天下地圖), 동국조선총도(東國朝鮮總圖), 조선방역지도, 동국도, 천하대총일람지도, 조선전도, 강원도도(江原道圖), 경상도도(慶尙道圖)등등 대마도 지도가 많기도 하다.

또한 퇴계 이황(李晃)의 문서, 실증사학자 안정복(安鼎福)'동사외전'(東史外傳) '동사강목'(東史綱目)은 물론, 특히 다산 정약용(丁若鏞)'비어고'(備禦考)에서 대마도현장 사료 및 주민의 언어, 복식, 풍습등을 종합하여 '일본 왜'와 다른 대마 조선인의 문화인류학적 특징을 고증해 놓았다.

 

일본이 숨겨오는 대마도와 독도의 비밀의 저자 김상훈씨는 , 대마도 안내놓으려 독도 싸움 계속한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메이지 정부에 의해 단행된 폐번치현(廢藩置縣)이래 대마도는 현재까지 나가사끼현에 소속되어 오고 있는데 해방 전인 1932년 나가사끼 현회(長崎縣會)에서 대마도 개발 문제가 논의되었을 때 혁신계의 후지마쓰모(藤松某)라는 사세보시(佐世保市) 출신 의원이 대마도를 나가사끼현에서 분리시켜 조선총독부의 행정 구역으로 이관시키라는 발언을 하여 일본 국내에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 발언의 이유를

 

이 발언은 대마도의 도민을 위한 것이다. 대마도에서 하까다(博多)로 가서 다시 사가현(佐賀縣)을 지나 현정 소재지인 나가사끼까지 가는 것은 불합리하다. 지사를 비롯 현의 관리가 대마도로 출장하는 것도 불편하다. 그러한 결과 현의 대마도에 대한 시책이 뒷전이 되지 않는가? 나가사끼현보다 더 큰 조선 총독부의 소관으로 하면 예산도 많이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김의환,1985: 90-91, 조선통신사의 발자취, 서울: 정음문화사)

 

만약 대마도를 조선에 이관 시켰더라면 오늘날 한국 국민이 되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