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病苦)는 마음공부
병고(病苦)는 마음공부
질환을 앓고 있으면 당사자는 무척 괴롭다. 인간은 쉽고 편하고 남들보다 더 나은 생활을 원하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삶을 지속적으로 누린다 해도 결코 완벽한 삶이라고 장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단지 누리기를 원하는 관점에서만 일시적으로 행복할거라는 생각뿐이다. 인간에 있어 기복 있는 삶의 의미는 살아가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행복한 삶도 다시 태어난다면 같은 삶을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 누구도 선뜻 쉽게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녀 간에 있어서도 아무리 현실에 사랑하고 만족하더라도 말년에 다시 태어나도 부분의 연을 맺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살았기 때문에 아무리 행복하더라도 같은 경험을 반복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부부가 만년까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과 다시 태어나서 같이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인간은 자극에 반응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자극의 원동력은 거의 본성과 관련되어 있어서 이는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인간의 이러한 반응은 대개 음양과 상보성(相補性)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음양은 서로 상극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런 대립구조야 말로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로 혹은 주변의 환경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진화론으로 알려진 다윈은 자연 속에 발전을 향한 본질적인 추동력이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자연선택이 오직 개체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만 작동하듯이, 모든 육체적⋅정신적 특성들은 완벽함을 향해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생물학자들은 맨 아래쪽에 미생물이, 그리고 맨 꼭대기에 인간이 있는 ‘진보의 사다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는 상보성이란 음양상극이 아니라 서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되 보완해주는 역할로서 자극과 반응의 팽팽한 줄타기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메기효과를 예로 들면 메기와 미꾸라지는 서로 상극이라 할 수 있지만 한 수조에 넣었을 경우에 그 긴장감으로 인해 서로가 생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상극이라는 표현은 한 단면만을 언급한 것이다.
이는 마치 남녀 간에 추는 춤과도 같다. 관객들은 무심하게 바라보지만 무용수들의 손에는 텐션이 작용하고 있어서 서로 미는 힘에 의해 다음동작의 동선이나 미적 요소를 한결 쉽게 표현할 수 있다. 의례 잡은 손인 듯 하지만 서로 밀고 당기는 호흡이 자연스러워야 하며 그 가운데 때로 서로 미는 힘을 이용해서 쉽게 다음동작으로 이어진다. 뛰어난 무용수들은 이 기법이 능란하여 자유자재로 이루어진다. 전문 무용수들의 춤에서 대척(對蹠)의 극치이자 고도의 균형으로 상보적인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상보성은 인간에게 있어 질병도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질병이 상보성의 중요한 한 축을 자리하고 있다면 질병에 대한 사고관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많은 여러 어려움들의 근간에는 본능적 욕구가 자리하고 있으며 욕구와 실제가 충돌될 때 어려움이 생겨난다. 질병은 이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같은 맥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려움들이 인간을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 추동력과 관련이 있다면 그 어려움도 하나의 과정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각자의 몫이다.
몸이 아프면서 만사가 의미가 없어졌으며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리게 됨에 따라 본능으로 인해 존재하던 그나마 확연하지 않던 나의 추동력도 사라졌다. 죽음 앞에서 남은 가족의 걱정은 어쩔 수 없으나 결국은 무의미하니 그나마 떨굴 수 있었다. 그러나 질병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은 어떻게 해소할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나름대로 그간에 살아 온 흔적들에 대해 조금씩 주변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내게 추동력을 다시 되살린 것은 바로 현재 나를 괴롭히고 있는 질병이었다. 입원 가운데 가장 먼저 ‘명분‘을 의식한 것은 바로 추동력과 관련된 생각이었다.
본능에서 비롯된 여러 욕망들은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해소할 여지가 없지 않지만 그나마 질병은 홀로 해소할 여지조차 없다. 여타 심고(心苦)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이 기회가 심고(心苦) 이외에 병고(病苦)도 마음을 닦는 또 하나의 방법임을 알게 된다.
죽음이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단절시키지는 않더라도 무언가 결(結)짓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내게 다가오는 시련들은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암시하는 듯하다.
언젠가 입천(入天)한 분이 위에 약이 가득한 창고가 있다기에 신명들이 무슨 약이 필요한가 내가 되물었더니 그 약들은 인간을 위해 쓰여질 것이라 하셨다.
혹여 병고는 내게 또 다시 수련에 대한 의지를 묻는 마지막 기회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