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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패러독스

수암11 2016. 1. 4. 08:56

삶의 패러독스

 

생명유지를 위해 인간은 자극에 쉽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졌지만 그 자극이 자극으로서의 효용을 지니기 위해서는 소위 오욕칠정과 적절하게 맞물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를 닦는다는 것은 이러한 오욕칠정을 비우고 담담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어서 진정 마음을 모두 비운다면 도를 닦을 수 없다. 마음을 완전히 비운다면 도를 닦는다는 마음조차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직접 와 닿은 것은 몸이 몹시 아파 모든 의욕을 잃고 다만 죽음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한동안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에는 너무 힘이 들어서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가장 나중에 오는 욕심이 바로 소위 권력중독이라는 권력욕이다. 그 단계까지 가보지 않아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언급하기는 어려우나 나이 먹은 사람들이 권력욕으로 인해 추한 남은 삶을 전전긍긍하면서도 헤어나지 못하면서 빌미로 국민의 이름을 파는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인간의 이러한 기질적 특성이 없다면 세상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에 가장 이상적인 세계, 천국이나 극락도 좋고, 조화선국이라는 이름으로도 좋다. 그런 세상이 펼쳐진다면 그 이상 발전은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기대치가 필요 없으니 노력할 필요도 없고 처음 잠시 동안은 행복을 누리겠으나 그 이상은 삶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며 이 세상의 존재가치가 사라질 것이다. 즉 완벽한 상태는 더 이상의 여지가 없으므로 목표가 사라지는 무의미한 삶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목표가 있고 변할 여지가 있고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있으므로 해서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추동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그 부분에만 집착을 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가 외견상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와 멀어지게 되어 그 또한 삶의 진정한 목표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흑백논리로 본다면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닌 삶이다. 도대체 기준을 맞추되 어디에 맞추어야 제대로 된 삶인지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양 극단을 지양하는 삶이라 할지라도 중도를 걷는 삶이 바람직한 삶은 전혀 아니다. 그야말로 어디를 잣대로 대더라도 패러독스의 극치라 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 세계에서 끊임없이 자신만의 잣대를 내세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분쟁이 끊일 날이 없는 지구촌의 현실은 이미 구조적으로 당연한 것이어서 분쟁과 갈등을 탓할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분쟁의 불씨를 인정하는 데에서 그나마 다소 해결책이 엿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삶 가운데 도를 논하는 것은 그나마 날선 공방을 피하여 되풀이 되는 역사인식에 패러다임의 전환을 도모해 보자는 의도가 잠재되어 있다. 그간 개인과 집단의 이익 추구를 위해 주변의 희생을 포함하여 소모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되풀이 해왔다.

 

스스로 불완전하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하다. 인간 이외의 모든 대상은 불완전하다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불완전은 인간 고유의 존재적 특성이다. 이 불완전함 속에는 변화를 주도하고 선택하며 더 나은 모습을 창조해 갈 수 있는 자유의지가 내재되어 있다. 즉 불완전은 완전함으로 가기 위한 변화와 발전의 단초이자 동력이 되는 것이다(석문도문, 2010: 232).

그런 점에서 자기준거는 가변적이며 불확실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이러한 인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인류역사상 여러 차례에 걸쳐 존재해 왔다.

토머스 S. (2012: 36)물리과학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학혁명이며, 하나의 패러다임으로부터 혁명을 거친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연속적인 이행은 성숙된 과학에서의 통상적인 발달양상이라 하였다.

 

유형전합의 개념은 사물에 한정되지만 과학혁명과 관련된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해 석문도문(2013: 162-166)은 몇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인간의식은 단편성, 복합성, 입체성, 다원성, 다차원성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간의식이 보편적인 진화와 발전을 하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은 거울, 비행기, 인공위성, IT 등이라고 한다. 거울은 그 이전까지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었던 인간에게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사고를 한 방향인 단편성에서 쌍 방향인 복합성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비행기의 발명은 기존의 인간의식이 가지는 단편성과 복합성을 뛰어넘어 입체성을 보편적으로 가지게 한다. 인공위성의 발명은 가히 유형적인 물질성에 근거한 인간의식의 혁명을 가져오게 하는데,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고 자신의 삶이 어떤 식으로 존속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를 통해서 각 민족, 국가, 사회로 나누어졌던 인간의식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오게 하여 지구공동체의식을 일깨워내게 한다. IT의 발명은 인간의 보편적인 의식이 다원성에서 다차원성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가교한다. 현실 속에서 가상의 세계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차원의식에 적응하게 한다. 그리고 다자 상시 통신망을 형성해서 정보를 상시적으로 공유하게 하여 정보의 보편화와 함께 인간과 인간 간의 심리적인 거리를 좁혀서 지구 단일시장, 일일생활권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이러한 IT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인간의 보편적인 의식이 차원성을 가질 수 있게 한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이상과 같이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해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과거에 비해 막연하게 도를 닦는다는 개념에서 진일보되고 구체화 된 개념이 아닌가?

인간 의식의 변화는 과거에는 성현들의 말씀으로 귀감으로 여겨왔던 부분들이 좀 더 자세히 드려다 보게 되면 이제는 점차 피부에 와 닿고 있다.

 

()가 비생산적이고 비합리적인 것 같지만 인간 의식의 변화와 더불어 왔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이며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함께 나아가야할 덕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이 추구해야할 이상향은 목표지만 도달할 수도 없고 도달해서도 안 되는 아이러니한 관계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