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관련

도를 닦는다는 것

수암11 2015. 10. 13. 14:50

 

도를 닦는다는 것

 

 

도를 닦는다는 것에 대해 문외한들에게 개괄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어서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세상에 할 일이 참으로 많은데 비생산적인 ()’타령이나 한다는 건 부질없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은 개나 소도 다 하는 것이어서 먹고 사는 것만 치중한다는 것은 개나 소와 다름없는 것이어서 도를 논하는 것은 개와 소와 사람이 다름을 언급하는 것과도 같다.

 

 

수련법의 주제는 의외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충 열거해보면 빛, 소리, 호흡, 마음 등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소리수련은 주문수련이 해당되는데, 염불이나 소리 내서 하는 기도 뿐 아니라 특정 음이 불러오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써 문외한들이 느끼기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없지 않은 세계가 포함되어 있는 수련법이다.

 

 

마음수련은 미묘한 마음의 작용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근저에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에서 나온 수련법으로 실제 마음수련을 하다보면 조금씩 풀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실체를 안 듯 하지만 깊이 들어가게 되면 혼란스럽다. 그것은 마음의 실체에 대한 개념이 없이 다소 막연하게 뛰어들었다가 부닥뜨리는 혼란과 같다. 쉬운 예를 들어 호흡수련 가운데에서도 마음을 닦는 과정이 있는데, 이때 마음을 드려다 보면 특정 감정 내에 또 다른 감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본인이 믿고 있는 자신의 감정이 실제 감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은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인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혼란스럽겠지만 특정 인물의 특정 시일 내의 평균 감정을 끌어서 볼 수 있는데 유명인물이건 처음 접하는 사람이건 즉각 그 감정을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객관화 과정이라는 것은 테스트에 통과한 사람들의 표현상의 차이는 다소 있을지언정 의미는 같다는 뜻이다. 궁극에 가서는 육신통에서 타심통을 의미한다.

 

 

마음의 실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누구라도 선뜻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에게 있어 마음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인간의 신체에 있어서 도대체 어디에 배속되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머릿속 혹은 가슴속도 언급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시각도 없지 않다. 가령 어린이집에 가 있는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린이 집에 가 있는 아이에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엄마에게 있는 것인가라는 원초적인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혹은 마음은 그야말로 마음먹는 대로 분리할 수 있어서 양쪽에 모두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가족을 생각한다면 더 많이 분리되기도 한다. 어쨌든 마음은 마음을 낸다든가‘ ’마음을 쓴다든가하여 분명한 주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체와는 명백한 괴리가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보다는 본능인 오욕칠정에 휘둘리게 되는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주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서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감정과 기분, 생각, 느낌, 기억 등 오욕칠정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히 말해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마음의 부산물일 뿐이며 마치 태양의 빛이 지구로 내려와 다양한 생명현상을 일으키듯, 사람들이 친숙하게 알고 있는 마음은 마음의 실체에서 뻗어 나와 파생되는 일종의 부산물이라 하였다.

 

 

호흡수련에 관해서는 책으로 써도 끝이 없을 정도이나 간략히 소개를 하면 다음과 같다.

유사 이래로 인간에게 있어 인종, 남녀, 종교, 국가를 포함 그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그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것은 바로 호흡과 죽음이다. 태어나면서 마시는 호흡에서 죽음에 이르러 내쉬는 과정에 이루어지는 호흡에 있어서만큼 누구나 공평하며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인식했지만 이 공평함 속에 조물주가 안배해놓은 봉인이 채워져 있었다. 처마의 낙수가 보잘 것 없지만 세월이 흐르면 섬돌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이 호흡수련의 효과도 바로 이와 같다.

 

 

호흡을 통해 기운을 모으고 그 기운을 일정한 통로로 흘려보내는 운기과정을 하다보면 나중에는 빛 수련으로 이어지게 된다. 빛 수련은 호흡수련 이후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빛 수련에서는 양신이라는 일종의 도체(道體)를 만들어 비가시적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단계도 여러 단계가 있지만 현재 소위 최고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믿거나 말거나 단지 표현할 언어가 없기에 드러낼 수는 없지만 우주의 창조에서부터 인류의 시작과 여러 비밀들에 대해 단편적으로 들은 바도 있다. 오히려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를 몰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게 된다. 처음 이 수련을 접했을 때 소위 도통한 백면서생의 젊은 청년은 그 어떤 질문에도 잠시 생각하는 바도 없이 즉각 답을 해줬다. 당시 연배가 배 이상 되는 질문자는 잠시 의혹을 풀고 자 갔다가 너무도 놀라운 대답들에 충격을 받아 늦도록 대화를 나누고 다음날도 이어서 대화를 나누고 수련을 시작했다.

 

 

호흡수련을 하다보면 마음을 동시에 닦을 수밖에 없는데 소위 성명쌍수(性命雙修)니 심기쌍수(心氣雙修)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자연과학도들이 이 수련을 하게 되면 바라보는 시각차가 있으므로 세상의 많은 비밀들을 훨씬 더 쉽게 풀 수 있다. , 소정의 단계에 이르면 혜안을 지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