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혼란
삶 자체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선악의 개념에 대한 인식이 구체화된다고 해서 삶이 사실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 오욕칠정이라는 본능을 완전히 제어하고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숨을 쉬지 않고, 먹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속성은 굴레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변화와 발전이라는 추동력으로서의 근간을 제공하는 듯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져다주는 장점은 대개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적어도 사교춤에서 텐션의 타이밍을 체득하듯이 변화의 시기와 의미를 깨달음으로써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비교적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통을 거듭 강조한 이유도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 있어 본성의 근간이 되는 오욕칠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결국 마음이라는 가장 불가사의한 존재를 닦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은 사실 닦는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닦는다고 닦여지는 것이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내려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빨리 거치기 위해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일들을 시도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날선 자존심과 자신들을 괴롭히고 자신이 극복해야할 감정의 대상과의 갭을 고려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서 어느 하나가 부서지더라도 감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던 것이다. 소위 뛰어난 고승들의 만행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소통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니 가장 큰 변화는 이성과 가족을 포함한 주변에 대한 이해였다. 특히 남녀는 단적으로 표현하다면 외형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부부 간에는 살을 붙이고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기도 했는데 바로 사교춤에서 말하는 텐션의 역할 때문이었다. 쉽게 표현하면 전혀 다른 족속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시각으로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었다. 즉,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필터를 통해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어서 의외로 교집합이 적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그런 점에서 나이가 어려도 기혼자에 대해 성인 취급을 해주고 미혼자에 대해서는 미성숙하다는 선입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찾은 이런 역할을 이성 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성소수자들‘ 간에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아직 사회적으로 마음이 완전히 열려 있지는 않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가장 효율적인 이성을 통하지 않고서도 마음을 닦을 수 있는 다양한 소통 방법이 열려있기에 점차 결혼관에도 변화가 불고 있다.
이런 변화들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현재의 남녀가 지니는 사고는 학습과 경험의 반복에 의해 형성되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는데 수많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이를 반증한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개념들을 너무 깊이 인식하게 되면 오히려 변화에 필요한 추동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 자체의 존재문제와 결부되는 것이어서 어느 선까지 제어해야 할 것인가는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마치 오욕칠정을 극복하기 위해서 마음을 닦으려 하지만 오욕칠정이 없다면 마음을 닦을 필요도 없어서 근원적인 존재여부 자체에 휘둘리게 되는 것과 같다.
소통은 매우 중요하지만 너무 많은 소통의 일시적 과부하는 존재성에 대한 인식의 혼란으로 인해 오히려 추동력을 잃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가 불비타인(不比他人)이라 해서 ‘남과 비교하지 말라‘ 하지만 남과 비교하는 심리야 말로 변화와 발전의 추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 경구가 처음부터 완전히 배제된다면 도리어 인간의 창조의 목적 가운데 가장 첫 번째로 ’스스로의 존재성과 존재가치의 인식‘ 자체에 회의가 생기는 것이다.
근래에 있어 내게 생겨난 변화는 이런 존재성의 인식에 대한 절박함이 줄어들고 있다. 습(習)이 가져다 준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다소 필연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는 자위를 해보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문제의 원인과 그 대책을 알지만 추동력을 잃은 탓인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편 생각에 수련을 하기 어렵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수련이 필요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