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맏이

수암11 2015. 9. 26. 22:47

맏이


 

과거에는 영화에 대한 편견이 없지 않았다.


개연성이 있다고 하지만 꾸며진 이야기에 일희일비 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연기를 잘한다는 표현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인생의 폭이 넓어지고 나니까 다른 삶이란 의미가 어렴풋 다가왔다.


다양한 모든 삶을 동시에 경험할 수 없기에 영화를 통해서 좀 더 세밀하게, 혹은 무게 있는 다른 삶을 공유하는 방법을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좋게 표현하자면 소통의 방법이 더 늘어난 것이었다. 때로 줄거리나 구성도 중요하지만 소위 ‘소름끼치는 연기’에 내심 갈채를 보내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며 그네들의 삶이 부럽기도 했다.


 

뛰어난 연기자들이 실제 삶이 아닌 영화나 연극 등을 통해 다양한 삶을 연기할 때 쓰는 표현으로 ‘연기는 감정 몰입이라기보다 감정 배분’이나 ‘감정이입이 아니라 먼발치에서 바라봄’으로써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성숙된 연기를 할 수 있으며 또 그 상황이 종료되게 되어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지만 고도의 집중을 원하는 우리 선조들이 행했던 수련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의식배분을 통한 집중이라는 방법이다.


집중을 위해 의식을 모아도 부족한데 배분을 한다는 표현은 쉽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보인 역사적 인물들을 간혹 접할 수 있는데, 한 분야의 전문가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보여주는 그들 능력의 끝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했었고 그들이 보여주는 성과는 사실 의식배분을 통한 집중에 있는 것이다. 즉, 해당분야가 아무리 폭넓고 다양하더라도 서로 간에 융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얻는 것으로 근래에 소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학문적 이종교배‘가 필수라는 점은 주목해서 관심을 가질만하다.


 

물론 아직도 특정 분야의 영화들은 기피대상이다. 소위 개연성 없는 구성이나 스토리, 흥미나 자극만을 강조하여 관객 수만 의식한 영화 등이 그러하다. 영화관계자의 입장에서는 흥행이란 요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자극적이고 관능적인 소재만을 강조해서 관객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하다고 느껴지기보다는 불편하기까지 하다.


다양한 시각과 삶을 연기라는 과정을 통해 감독이 제시하는 의도가 행간에 비쳐질 때 오히려 더 많은 감성적 공감이 이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흥행을 결정짓는 특별한 영화의 패턴 중에 하나는 영화 속에 녹아 있는 명분이다.


 

한국영화시장은 지난 10여년 사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에인트잇쿨뉴스(www.aintitcool.com) 등 해외 영화마니아층이 즐겨 찾는 스쿠프 사이트들에선 한국 영화흥행에 대해 종종 의문과 놀라움을 표하는 포스트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아저씨’ 같은 영화가 당시 최대흥행기록을 세웠다는 점을 들며, 어떻게 이런 진지한 영화가 팝콘 블록버스터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이런 영화는 팝콘무비가 아니라 차라리 예술영화에 가까운데 이런 영화에 국민의 4분의 1 이상이 몰린 게 희한하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역대 흥행 10위권 안에 전반적으로 진지한 주제의 드라마들이 많다. 보지 않은 영화는 거론할 수 없지만 ‘명량’이나 ‘암살’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관객의 영화에 대한 성향 선택이나 사회적 코드는 명분을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기질과 상당히 관련이 있다.


 

영화 ‘국제시장’은 우리가 살아온 시대와 중첩된 부분이 많아서 감상평들은 처음부터 흥미를 끌었다. 후에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가 삶의 일부가 녹아 있어서 상당히 많은 부분에 공감이 있었고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내용들을 알고 있어서 더 많은 감성을 자극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더 내 마음을 울린 것은 힘든 시기에 맏이로 태어나 세상의 무거운 짐을 모두 짊어지고 가야만 했던 맏이들의 역할이었다.


그들은 집안의 그 모든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감수했었다. 물론 차남들도 보고 듣는 게 있어서 부담이 없지야 않았겠지만 맏이들의 짐은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었다. 부모와 형제의 기대, 가문을 일으키고 격변하는 과도기의 시대에도 적응해 나가야만 했다.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그들은 단지 치열하게 또 힘들게 살다보니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수많은 세월 속에 그 모든 것을 녹여내었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맏이 역할을 자청한 형제들도 없지 않다.


 

나는 내 주변의 맏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