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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 신박 : 북한사람들의 음주문화 - 이상한 나라 이야기-4

수암11 2015. 9. 24. 08:23

 [펀글] 신박 : 북한사람들의 음주문화 - 이상한 나라 이야기-4


술? 좋지요. 술이라면 주종불문이요, 원근불문이라 자다가도 술이라면 벌떡 일어나고, 술 마시기 위해 애써 땀 흘려가며 운동하는 차에 북한에서의 술자리는 날이면 날마다 벌어지니 이 어찌 쾌재를 부르지 않을소냐.......


북한에 들어가기 전에 김연중 처장의 일갈이 있었다.


“술 하나 만큼은 마음대로 마실 수 있다. 1개월 동안 마시는 술은 1년 마시는 술이니 술걱정일랑 하덜 말어.”


평양 고려호텔에 도착하여 야간열차를 기다리는 4시간 동안 43층의 만장라운지에서 북측 안내원들과 마시기 시작한 맥주는 밤새워 달리는 침대칸에서도 이어져 Duty shop에서 산 죠니워커 3병 마저 거덜이 나버렸다.


강상리 외국인 숙소에 도착해서는 시추장비 도착을 기다리며 낮에는 경계측량하랴, 보장회의다 실무자회의다 하여 정신없이 보내다가 밤 11시경에서야 비로소 한숨을 쉴 짬이 생기게 되므로 자연히 물매대에 모여 처음 보는 들쭉술, 뱀술, 인삼주, 북한소주(평양소주, 양강주)등을 맛본답시고 동석한 북한안내원들과 서로 떠보기도 하고 궁금한 것에 대하여 이야기도 하면서 밤이 이슥하도록 권커니 잣커니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북한 안내원과의 술자리 분위기가 처음부터 자연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몇 번의 술자리에서 하는 대로 놓아 뒀더니 잘 나가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고려연방제 통일론이며 김일성 부자의 찬양으로 돌아버리고, 말리면 ‘내가 어디 시비했댔시요?’하지를 않나, 다음날 아침에 술에 취해 비실비실하지를 않나, 한 놈 한 놈 차례대로 마시고 나가며 어디든지 찔러 보고 싶어 하는 작태가 눈에 그대로 보였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술자리에서 헛소리를 한다거나, 사소한 예의를 무시한다거나, 술 취한 척 하며 이상한 언행을 했을 때는 즉시 ‘이 정도밖에 안돼?’ ‘주도 자체를 모르는구만’ 등의 자존심 건드리는 말로 언행을 자제시켰다.


술 먹을 줄 아는 놈만 술 먹으란 식의 법칙이 열흘이 못 가서 정착되었다.


북한의 음주문화?


도대체 음주문화란 무엇인가?


우리가 늘상 하듯이 저녁에 반주삼아 고기야 생선이야 보신탕이야 차례대로 먹거리를 바꿔가며 1차로 소주를 한잔하고 노래방에 가서 술 깨도록 노래 부르다 집으로 가든가, 아니면 간단히 입가심 한답시고 호프집에 들렀다가 갈 때까지 가는 게 음주문화의 정석인가?


요즈음처럼 주머니 사정에 따라, 모이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술좌석이 이루어지고 술좌석에서의 분위기도 달라지는 지극히도 개별성이 부각되는 것을 음주문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개인적으로 느낀 북한의 음주문화란 한마디로 ‘너무나 고색창연하여 절로 옛날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삭막하면서도 나름대로의 풍류가 있는 정서’라고 표현하고 싶다.


술집이 아닌 강상리 외국인 숙소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사고방식과 성장환경이 다른 숫놈들만 모여서 마시는 술자리지만 북측안내원들은 하나같이 술이 세고 조용히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성향이었다.


정치적이거나 서로의 생각을 알고자 하는 대화를 제외한다면 횟수를 거듭하며 마시는 술좌석에 날이면 날마다 다른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할 밑천이 없을 수밖에 없는 그네들의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며, 대체로 듣고 맞장구치고 웃어가며 그 다음은 무슨 얘기를 하나 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기 밖에 할 수 없음이 이해되었다.


서로가 터부시하는 것을 피해가며 이야기 하자니 자연히 대화의 내용은 술좌석의 예의, 양반문화, 개인적인 취미생활, 가족이야기, 화려했던 취중의 실수, 음담패설......등으로 제한되었지만 은근하면서도 따스한 정취는 술자리를 거듭할수록 서로의 거리를 좁혀 막역한 사이가 되어감을 서로가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쳇바퀴돌기의 변함없는 일상에서 서로의 정이 그리워 밤마다 조직되는 수놈들만의 술자리에서 똑같은 얘기로 파안대소하며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답답해하면서도 서로가 지극히 사소한 부분에 의견일치라도 볼라치면 가슴 벅찬 희열을 느끼곤 하였다.


한마디로 북에서의 술자리에서는 좌중의 분위기를 끊임없이 즐겁고 재미나게 이끌어 가며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버티는 옛날 어른들의 풍류를 아는 한량(?)이 대접받는다는 관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너무나 고색창연하여 절로 옛날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삭막하면서도 나름대로의 풍류가 있는 정서’를 감히 북한의 음주문화라고 정의해 본다.


1차 부지조사시의 특이한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레 유도된 안내원들과의 막역한 술자리와 신포를 떠나올 때 서로가 정들어서 느껴야 했던 진한 별리의 아픔을 회상하면서 술자리에서 즐겨 구사했던 문구(핑계대며 슬그머니 사라지는 작자의 뒤통수에 대고 내밷던 말)를 적어본다.


“비겁한 자야, 갈 테면 가라. 적기는 내가 지킨다.” (황장엽 탈북이후 북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