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명분
우주만물의 존재는 인력과 발산력이란 상반된 두 가지 성질이 동시에 작용할 때 가능하다는 매우 모순된 결론에서 악(惡)이 세상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것에도 불구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는다. 어떤 노래 가운데 남녀 어린이 둘이 만나 서로 점차 사랑을 하고 아들, 딸 낳아 한결같이 한평생 행복하게 살았다는 아주 이상적인 가사가 있다. 누가 들어도 근사한 것 같지만 사실 삶이 고단하기 때문에 바라는 이상적으로 표현한 가사 일뿐 내용과 같은 삶은 실제로 무의미한 삶일 뿐이다. 고단한 삶이기에 자신의 색안경으로 아주 근사하게 비춰지는 것이지 그토록 노래 가사 속의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당사자들은 반대로 고통 속에서 만년에 헤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들에게 자신의 잣대만을 강요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일까? 연극이나 영화에서도 갈등이나 기복이 없었으면 하면서도 막상 없으면 혹독한 평가를 받아 가장 중요한 흥행에서 멀어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결혼생활에 대해서 감사할 구실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복잡다단하여 주변과의 조화만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가 없지 않다. 학인들에게 있어 그때의 기준을 말한다면 바로 명분이다.
특히 천손민족인 우리 민족에게는 명분이 중요한 구심점이었다.
최근 신문기사에 소개된 내용 가운데 논문으로 사회적 소수자였던 여성들을 포함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주역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10대에서 7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보였다는 박경목(44)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장의 논문(충남대 박사학위)이 심사에 통과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대체로 전 지역에서 고루 참여했다. 평범한 모든 이가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는 그 이전의 시기에도 반상의 구분이 뚜렷한 나라였지만 풍전등화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 승병 등 자발적 움직임이 일어났으며 그 이후의 시기에도 나이 어린 남녀학도병의 희생이 있었다. 언젠가 이러한 희생의 기반에는 ‘명분’이라는 대명제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명분을 위해서는 목숨조차 초개처럼 여기는 우리 민족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한국의 비극》을 쓴 매켄지는 조선의 의병을 “정의의 군대(Righteous Army)”라 영역하였는데 한국에서 의병을 직접 목격한 그로서는 의용군(Volunteer)이라는 흔한 보통명사를 붙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의병의 실상에 맞는 새 단어를 만들어냈는데, 그만큼 국가의 위기를 맞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과 사고가 남달랐으며 명분을 앞세운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교수였던 박성수(1988)는 의병에 대해 자신이 들은 사례를 거론하고 있다.
“연전에 춘천에 갔을 때 한 퇴직 교장 한 분이 어릴 때 간도에서 자랐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이불천 이야기였는데 위는 붉은색 밑은 검은 천으로 꾸미는 것이 한국 고유 이불의 특색이라고 한다. 이 특생을 한국인 자신은 모르고 도리어 중국인이 그것을 알아 차려서 우리 중국인의 이불색깔과 다르다고 하면서 그 뜻을 이렇게 설명하더라는 것이다.
즉 한국인은 밤에 자다가도 갑작스러운 적의 기습경보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 무기를 드는데 그 때 이불의 붉은 천을 뜯어 어깨띠로 둘러매고 싸움터로 달려 나갔다는 것이다. 이 유습(遺習)은 너무나 오래어서 삼국시대나 아니면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라고 교장 선생님은 덧붙여 설명하였다.“
박은식 선생은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수다(義兵者吾族之國粹也)”고 하였으며 “만일 의병이 이기고 진 것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의병의 본질을 천박하게 이해하는 것”고 하였다. 또 그는 침략자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나라는 멸망시킬 수 있어도 의병은 전멸시킬 수 없다.”
동양사회구조의 주요특징인 종법제도(宗法制度)는 씨족사회의 혈연관계와 조상숭배에서 발전된 것이다. 농업기반사회여서 노동력의 확보가 가장 큰 목적이었으나 내적으로는 응집하여 단결하나 외적으로는 서로 배척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관계를 맺게 될 경우 새로운 혈연관계를 맺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위에서 소개한 박경목(2015)의 논문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역시 지연과 혈연, 학연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종법제도와 유관한 것으로 나타나 이러한 제도가 기본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분이라는 대명제 아래서는 그 어떤 경계를 넘나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 목침지뢰 도발로 나라가 어수선해지고 있다. 그들의 도발은 항시 있는 일이었지만 이번 도발은 시기적으로 아주 부적절했다. 연평대전이라는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실상을 파악한 우리 국민에게 단호한 명분을 주었다. 사실 북한이라는 체제는 터무니없기도 하지만 명분으로 똘똘 뭉쳐 있기도 하다. 조선 500년이 끝나고 가장 홀대 받았던 지역에서 조선왕조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 이상의 군주독재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 항시 내세우는 것은 명분이다. 그들은 내부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항상 적대관계에 있는 남한과의 충돌을 통해 내부의 위기를 다스려 왔다. 그들은 내부의 위기를 다스리기 위해 충돌을 조장하지만 명분은 포장이며 본래의 의미는 정권의 유지에 있으므로 더 큰 모험을 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몇 번의 학습효과에 의해 우리 측은 강경한 대응이 아니고서는 무고한 일선 장병들에게 격심한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에 대한 대응책과 재량권을 일선에 주지시켰던 것이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이를 피하려고만 해서는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진다. 과도하다고 느낄 만큼의 반응은 그들로 하여금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것은 체제유지가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에서는 최근의 남북 무력 대치 상황에서 전역을 연기하겠다고 신청한 장병들을 신입사원 채용 때 우선적으로 뽑겠다고 25일 밝혔다. 그들이 입대하는 날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전역을 미루고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이 나라는 그들이 반복적으로 제공한 학습효과에 의해 더 커지고 명확해진 명분을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