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실천
사랑의 실천
한때 김용의 초인문학(무협소설)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특히 그 소설의 마니아가 되어서 신간이 나오면 빠뜨리지 않고 샅샅이 찾아내 구입해 읽었다. 호흡이 긴 소설들이어서 읽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힘이 드는데, 그 분량이 도합 50여권이나 되는데도 십여 번 이상 독파하였다. 가끔씩 그의 필명을 빌려 쓴 위서를 구입하여 읽으면서 실망하여 버리기도 했지만, 그의 책은 제본이 뜯어지고 훼손되어도 책장에 잘 간수하였다. 다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서 책장에 책을 깊숙이 이중으로 꽂아 눈에 가급적 띄지 않게 하였다.
나보다 더 한 마니아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기인기사 속의 영웅호걸들에 대해 인물평을 내리기도 했는데, 그 중의 압권이 영웅문의 주인공 곽정이다. 다만 곽정은 너무도 뛰어난 인물이기는 하지만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속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판단을 보류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그런데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속의 인물인 곽정보다 더더욱 상상을 초월하신 분이 바로 한당 선생님이다.
한때 선생님의 전기를 쓰기 위해 전국의 실무진과 도반들에게서 에피소드나 관련 자료들을 수집한 적이 있었다. 그 에피소드들은 모두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었으며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내용들이었으나 기록이 없이 입으로 전해진 것들이어서 취합당사자가 구체적으로 궁금한 부분에 있어 세밀하지 못하여 활자화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토로하였다. 육하원칙에 의해 말하거나 표기를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기록이 없이 기억만으로 전달이 되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적(異蹟)이 한두 번이면 생생하여 기록해둘 수도 있으나 워낙 일상사처럼 빈번하다 보니 그러려니 해서 생겨난 현상이었다. 기억이라는 것도 인상적인 부분만 남아있으되 사람마다 인식하는 부분에 차이가 있다는 점도 객관화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는 고서에서 기인이사를 언급할 때 바람을 부르고 비를 오게 한다는 호풍환우를 예를 들기도 한다.
축구팀인 일월팀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월례행사로 축구시합을 하였는데 장마철과 겹치는 시기가 적지 않았다. 매스컴에서 태풍이 한반도를 직타하고 있다고 시간마다 방송하고 있을 때에도 선수들이나 해당관계자들은 별반 걱정을 하지 않았다. 태풍이 피해 가거나 최소한 축구시합 동안은 비가 그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당시 PC통신 천리안 단동에 게시 글이 떴다. 태풍이 오고 있는데...어쩌고...
강력한 태풍이 바로 한반도 코앞을 덮치고 있다고 실시간 방송을 해대니 축구쇼 행사관계자들의 마음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불안한 마음을 다독인다고 글을 올린 것이었다.
행사장을 태풍이 살짝 비껴 간 것인지? 한 순간 잠시 멈추어 소강상태였는지 기억이 모호하나 결과적으로 빗맞아도 한방인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를 몰아치는 가운데 축구쇼가 무사히 끝났으며 그 일련의 과정은 게시판글로 중간 중간 빠뜨리지 않고 중계되었다. 즉, 태풍이 오고 있다는 것과 와도 축구쇼를 한다는 것과 태풍이 와도 괜찮다...선생님이 어디 식당에서 이런 조처를 취했다...축구를 한다. 그리고 무사히 잘 끝났다는 후기까지 그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련의 내용이 실시간으로 올려진 것이다.
광양축구쇼를 할 때에는 나도 있었다. 당시 하루 전에 내려가서 준비를 하는 것이었는데, 내려가게 되면 현지 지원에서 도반들이 힙을 합쳐 융숭한 대접을 했다. 그날은 선생님을 모시고 단란주점 같은 노래방을 가기도 했다. 주최 측에서 여흥을 돋우기 위해 여성도우미를 2명 불렀는데 도판의 유흥분위기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그대로이다. 나는 청춘남녀들의 모임인 선비단들과도 뒤에 어울렸는데, 그 후유증으로 힘든 아침을 맞이했다. 문제는 운동장으로 이동하는 차량이 한참을 가는 것이었다. 날씨가 별반 좋지 않아도 아무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한당선생님께서 여기서 하는 게 아니냐며 물으셨다. 경기장은 숙소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본의 아닌 삑싸리로 인하여 처음으로 빗속에서 축구쇼가 벌어진 날이었다. 뒤에 나는 다른 분께서 남도의 가뭄을 걱정하여 비를 부르는 상황을 경험했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체면치레할 정도의 비는 내렸는데 주관하신 분께서 그 일련의 과정을 설명해 주시며 보이지 않는 신명들의 노고가 대단하다 하여 쉽게 벌릴 일이 아니라 하셨다.
선생님께서 축구를 하시게 된 계기 중에 하나는 지병인 당뇨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지속적으로 무예 수업을 하셨고 무예사범을 하셨던 분께서 축구를 선택하여 즐긴다는 것이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오랫동안 무예를 하시던 분이 몸을 쓰지 않으니 자연 몸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예를 다시 하는 것도 볼썽사나운 것이어서 당신의 운신에도 도움이 되고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할 수 있는 축구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한당선생님께서 도통을 하시고 당신의 앞날을 미리 아셨으며 귀천시기까지 이미 오래 전에 언급을 하셨다. 예전 분당지원에 다녔던 당신의 누님도 내게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믿지 아니하였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치부했었다는 그 말씀을 하시곤 했다. 인간이 육신을 지닌 이상 무병장수는 아니어도 무탈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자연스레 축구를 통해 다소 해소하고자 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 한당 선생님에게 호풍환우보다 더 힘든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세상에 알려진 후에 삶 동안 세월 속에 풀어낸 것은 사랑이었다.
2001년 1월8일 월요일, 13시48분에 기록된 글이다.
하늘의 최고의 무서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늘의 최고의 무서움은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이나, 자비나, 배려는 기본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의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지요.
이것이 가장 무서움이지요.
최고의 무서움도, 최고의 권능도...
역시 사랑이나, 배려나, 자비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