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여 언제까지나3
서울이여 언제까지나3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지만 그 삶대로 살 수는 없다.
자이가르닉(Zeigarnik effect) 효과는 마치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한 일을 쉽게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현상으로, '미완성효과'라고도 한다.
남녀 간에 있어서 ‘썸‘ 이라는 줄타기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는데 아주 오래 묵은 자이가르닉 효과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가정이 있는 몸으로 외간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는 것은 이해당사자 뿐만 아니라 주변에 까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서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오랜 세월이 흘렀고 다행히 각자의 가슴에 묻어 두었을 뿐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기에 감히 발설하여 매듭을 짓고자 함이다.
아래 꿈 이야기도 벌써 수년 전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수련을 하면서 생생한 꿈을 경험한 것은 한 십여 년 전 죽음의 경험 이후 처음이다.
죽음의 경험은 죽은 이후 온양구슬을 떨구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통 속에 그야말로 폭포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다가 깨어났는데, 워낙에 충격적이고 생생하여서 새벽 한시 반인가? 에 컴퓨터를 켜고 글로 옮기던 게 생각이 난다.
지난밤 꿈은 그와는 사뭇 다르지만 평시 보다 훨씬 일찍 눈이 떠진 계기가 되었다.
30년 전에 연락이 온 여자 친구와 여러 명이 모여 놀다보니 꿈같은 시간이 이틀이나 지났다.
물론 성숙한 남녀가 둘이 있을 때 같은 상상과는 다르다.
마치 MT처럼 여러 명이 같은 방에 이곳저곳 누워서 잘 뿐이다. 그리고 그 여자친구는 친한 친구와 늘 붙어 다녔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있는데, 열린 문을 통해 그녀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같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속으로도 난감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여러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경찰까지 대동하고 왔는데, 오래전 여자 친구는 “당신이 어떻게 여기를“하고는 당당히 나가버렸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게 허물을 나무라는데, 내게 허물이 있을 리도 없어 강변하는데도 불구하고 막무가내이다. 결국은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하는 양을 보니 경찰조차 내게 죄를 씌우기 위해 없는 폭력현장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남편으로 짐작되는 사람에게 이름을 대며 아무런 잘못이나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행태냐고 항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 간에 잘 아는 경찰 고위간부는 폭력현장을 만들기 위해 돌로 벽에 걸린 거울을 깨뜨리며 날조하기 시작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가 잠이 깨었다.
인상깊이 남은 기억에 중에 하나는 오래된 여자 친구 남편의 고통스럽고 힘든 고뇌의 표정이었다. 당사자들 간에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고 실제 그리 문제 소지가 있는 게 아닐지라도 직접관련당사자들이 보는 관점은 훨씬 증폭된 확대해석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바라보는 각자의 시각은 너무나 상이한 것이었다. 각자의 입장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다 보니 사실 여부를 떠나서 자의적인 해석이 깊숙이 개입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면(순수하게 나 자신이 만들어 낸 허상일 수도 있지만)이 삼십 여년 만에 연락이 닿은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흐지부지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사실 그간 자이가르닉 효과 때문인지 여자 친구와 연락을 하고 싶은 충동이 적지 않았다. 물론 연락할 수도 있었고 연락이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더 컸다. 하지만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해 보지 않은 여자 친구의 남편이 보여 주었던 생생한 꿈속에서의 고뇌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기에 어떤 충동도 가슴에 묻어두었다.
묵은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 모두의 입장이 정리될 시기를 훨씬 넘어서 이제는 미진한 마음을 떨치고 담담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