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관련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지자

수암11 2015. 7. 22. 23:02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지자

 

 

이러한 획기적인 변화의 시대에 있어 동력의 역할은 바로 선지자보다 가장 평범한 학인(學人)들 집단이다. 우리는 그동안 선지자들의 역할에만 주목해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신이 주인공임을 모르고 살아왔다. 즉 앞으로의 미래는 보통 사람들이 업그레이드됨으로써 새로이 시작되는 운도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응당 선지자들이나 지로사들의 역할이 어느 시기보다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도 더 큰 동력은 오랜 세월 구축해온 노력과 안배에 의해 평범한 학인들이 움직여야 하고 이들의 변화가 미래를 더 크게 좌우한다. 많은 노력과 시간은 이들을 움직이기 위한 것들이었으며 바로 태공(太空)의 완성으로 가기 위한 밑거름이었다.

눈덩이가 절로 구르기 위해서는 어는 정도 뭉쳐져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장수라 하더라도 말단 보병이 진지를 점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도 같다.

지금이 바로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사회적 동물이라고 일컫는 인간이 수련을 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수련에 매진하는 것보다 더 쉽지 않다. ‘대은(大隱)은 저자에 숨고, 소은(小隱)은 산에 숨는다(大隱隱於市 小隱隱於山)’는 표현의 행간에는 수련과 생활의 방편이 쉽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공부를 통해서 밝아지기(學而知之)도 하지만 어려움을 통해 밝아지기(困而知之)도 한다는 표현도 있다. 심고(心苦)는 수련을 붙잡게도 하지만 수련을 그만 두게도 하는 것이다.

맹자의 고자 장구(下)에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사명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 몸을 지치게 하고

그 육체와 피부를 굶주리게 하여

그 생활을 곤궁하게 하여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느니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그 성질을 인내하게 하여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기 위함이다.

 

 

이 표현은 역설적으로 능력이 있기 때문에 힘든 길을 택한 것이고 또 그 길을 걷는 것이다. 물론 표현처럼 쉽지는 않다. 끊임없는 고비 속에 늘 포기의 기로에 서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이미 각인된 명분은 포기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최초 구상한 의도대로 원천적인 인간의 의식변화를 줌으로써 그간의 과정에 파생된 난제를 해결할 시기에 이른 것이다.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서로 간의 경쟁을 통해 상승⋅발전하도록 설계되었다. 이 경쟁 심리는 인간에게 있어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결국 목표는 아닌 것이다. 앞서간 뛰어난 선지자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분명한 한계를 봐왔다. 그들이 분명한 길을 제시했지만 오직 선택된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룰 수밖에 없었으며 뒤따르는 자들조차 쫓아가려 하기 보다는 선지자들의 말을 빌미로 소수집단의 이득을 위해 사용했으며 가장 극명한 사례가 종교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종교 간에 유혈 충돌이 끊일 날이 없었고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를 반증한다.

 

 

조석으로 거는 심법 가운데 “같이 함께 더불어“야 말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사람들은 빨리 이루려는 조급함에 자신의 완성만을 염두에 두고 어쩔 수 없이 남과 비교하는 마음이 앞서게 된다.

우리가 수련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 특정 단계의 수련을 시작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은 이전 공부의 완성이 아니고 ‘수련을 시작할 최소한의 자질을 갖춘 단계‘ 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만약에 조금 부족하더라도 명분이 있다면 끌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조급하다 보니 수련의 진도에 더 많은 관심을 지닐 수밖에 없다. 물론 목표를 지니고 나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남보다 앞서 사는 것에만 치중한다면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왜 태공(太空)이 만들어지고 인간이 창조되었는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잣대로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조물주의 입장에서 다시 바라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믿는 대로 세상과 인간을 뚝딱 만든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앞서간 선지자의 역할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 우리민족에게 있어 오랜 세월 ‘하늘’의 역할이 그것이었다.

금세기에 이르러 천광하림(天光下臨)을 통해 인간의 신성(神聖)에 빛을 발(發)하게 됨으로써 획기적인 모티브가 주어졌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오랜 세월 타성에 젖은 인간의 행동양식을 쉽게 바꾸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이 문제는 오랜 숙제였으니 만큼 오랜 세월을 두고 풀어 나가야할 부분이기도 하지만 당사자들의 자성과 노력이 없이는 쉽지 않다. 수련을 하는 특정 그룹의 사람 모두가 자신 안에 있는 신성을 깨치고 수반되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오랜 세월 지녀온 습(習)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사실 수련을 하는 어떤 이들이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가장 많은 저변을 지니고 있는 이 그룹들의 자성이야말로 세상을 바꾸고 조화선국으로 진일보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바로 내 주변의 가장 가까운 도반들이 오랜 세월 기다려 온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주역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지 않은 특별한 무언가를 지닌 능력자일 것이라는 막연한 심리가 그동안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은 어딘가는 부족한 내 주변의 도반이 바로 이 시대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단언하지만 그 상대가 미흡한 것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내 시각이 미흡한 것이다.

태공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 주변의 우리 도반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운도수에 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다 하더라도 이후의 행보가 쉽지는 않다. 조화선국이라는 태공의 완성이 생각만으로 그리 쉬울 것 같으면 오랜 세월 우주와 신명과 인간을 만들어 이토록 고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각자가 느끼는 힘듦은 자신이야말로 가장 힘든 상황이라는 ‘맞춤 고(苦)‘ 때문에 거의 주변을 돌아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