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OB 밴드
직장 OB 밴드
지난해 8월경에 전 직장 Band가 만들어졌는데, 2G 핸드폰을 고집하던 나는 가입이 불가능하였다. 핸드폰을 오래 쓰다 보니 배터리에 문제가 있어서 충전이 잘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교체하게 되고 1월 중순 경에 내 전화번호는 앞자리가 ‘010-3‘으로 바뀌게 되었다.
핸드폰 교체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밴드에 가입하는 일이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해결되었다. 전 직장 OB 밴드에도 물론 가입했다. 마침 신년 모임이 지난 주말에 있어서 전국 경향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부부동반도 두 팀이 있어서 막내 여사원이었던 친구는 어린애를 데리고 나왔다. 사실 그 전에도 천렵을 빌미로 몇몇이서 야외서 만나 회포를 풀기도 했었고 술자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모두 들뜬 기분에 떠들썩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과거를 회상하는 가운데 분위기가 한층 업되었다.
잊고 있었던 소중한 추억들이 되살아났는데, 그 중의 하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점심을 사무실에서 해먹은 것이었다. 사실 자장면을 사무실에서 시켜 먹어도 그 냄새가 진동하여 환기시키느라 부산을 떠는데, 우리는 김치찌개니 뭐니 해서 만들어서 직원 모두가 같이 어우러져 먹은 것이었다. 뜨끈뜨끈한 찌개를 모두들 둘러앉아 같이 먹는 진풍경은 마치 야외에 놀러 나와 취사를 해먹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물론 그 냄새 때문에 오래하지는 못했지만 아주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마침 회사 바로 앞이 상록회관이어서 식재료는 무한정으로 다양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부서와 남녀직원을 가리지 않았으니 모두 한 마음이었으며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점심식사 후에는 옥상에 데리고 올라가서 내가 택견을 가르쳤는데, 남자직원들은 다소 불만이었는지 모르나 여자직원들은 동작도 우아했고 모두들 잘 따라했다.
당시 카드게임 가운데 훌라가 유행했는데, 점심시간과 일과 후에는 이를 즐겼다. 인상적인 것은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하고 경험도 없는 기술부 한 여사원이 거의 독식을 한 것이다. 판이 끝나면 그 친구가 한 십 만 원가량을 따서 옷 해 입는데 모든 직원이 일조를 했다.
당시 치열한 눈치싸움으로 내공을 쌓은 한 친구는 얼마 전 불가피하게 어렵고도 낯선 자리에 대타로 훌라자리에 낄 기회가 있었는데 그 판을 휩쓸어서 여러 사람들의 원망을 산적이 있었다고 하였다.
기술부 직원들은 남녀 차별을 두지 않았기에 술자리에도 빠지지 않고 같이 갔었는데, 회사 앞에 ‘과부촌’이라고 쓰인 간판을 보고 들어간 단란주점에서는 여사원 옆에도 수발드는 여성을 앉힌 적도 있었다. 예쁘장한 여사원 옆에 앉은 여성이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은 기억이 난다.
이 여사원은 남녀차별을 두지 않듯이 현장을 가리지 않고 보냈는데 댐 현장에 수상조사를 보냈더니 수상에서 용변해결이 어려워 물과 국물을 먹지 못했다는 후일담을 듣고 미안해 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현장을 닥치는 대로 보냈는데, 현재의 그 신랑이 한 번은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회식을 했는데, 임신 중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아 이후 자고 오는 현장이나 힘든 현장은 자제를 시켰다.
기회만 있으면 사소한 빌미로 술을 마시곤 했는데 회사 바로 옆의 여관 신세도 많이 졌다. 한 직원은 늘 그랬듯이 술을 마시고 모두 단체로 외박을 했는데, 마침 신혼 초여서 아주 심각한 사태로 이어져 단단히 혼이 났다. 그 친구는 아직도 당시의 일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니 미안한 일이다.
당시 운전면허는 지니고 있으나 운전을 할 기회가 없어서 대부분 장롱 면허였는데, 그들에게 차키를 던져주고 업무를 보도록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이드 미러를 깨먹는다거나 범퍼나 문짝을 긁어오기 일수였는데, 한 번은 봐주는 대신에 차후에는 개인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이후는 모두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었다.
직원들과 어울려 무척 많이 놀러 다녔다. 아예 차 트렁크에는 캠핑용품이 두 세트나 항상 실려 있을 정도였다. 우연히 거래처의 아는 편한 형이랑 스키장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 경험을 전 직원과 공유하고 싶었다.
직원들을 시켜 남대문 시장에서 직원 모두 방한 장갑과 고글을 한 벌식 사오도록 돈을 주고 구입하였다. 수소문 한 후에 당시 간성인지 고성 쪽에 알프스스키장이라는 곳을 예약했다. 이 스키장은 이번 모임에서 폐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좀 멀기는 했지만 신선하고 즐거운 추억이었다. 이후 퇴근 후에 서울 근교의 야간스키장을 단체로 놀러 다니기도 했다. 가장 즐거워하는 직원들은 아무래도 부산 쪽에서 올라온 직원들이었다. 거의 눈 구경을 하지 못하고 사는 동네인데다가 스키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탓이었다. 물론 강원도 출신들도 스키를 탈 기회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부산 출신 직원은 이때 배운 스키장 경험을 부산 현장에 내려간 후에 연애하는 아가씨에게 써먹었다. 현장 감독과 어울려 무주리조트에 놀러 가기도 했는데, 아마 부산 아가씨로서는 최고의 데이트 경험이었을 것이고 이 작전은 성공해서 뒤에 둘은 결혼하게 되었다. 이 작전은 두고두고 자랑거리가 되었고 뒤에 몇 번이나 들었다.
돌이켜 보면 잘못한 점도 없지 않을 터이나 즐거운 추억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소통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