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수양딸 3

수암11 2011. 9. 4. 15:51

3.

 

사람들마다 말게 모르게 힘든 일이 없는 이가 없고 각자 스스로가 겪는 힘든 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누구보다도 더 힘든 처지라고 생각을 한다.

이러한 고(苦)는 각자의 수심(修心)공부를 위해 오는 것이어서 당사자로서는 어느 누구의 고통보다도 힘들며 그 이상의 고통도 없다. 모든 것이 ‘이 또한 지나가는 것’처럼 고통의 순간들을 인내하고 버텨나가는 수밖에 없다.

실제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그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장난감을 빼긴 아이는 울지만 장난감을 빼긴 어른은 울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호기심을 동반하는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가득 차있고 더 가치 있는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통은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단초가 된다.

감내하기 어려운 지독한 고(苦)를 겪은 사람들은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었다.” 라고 하지만, 장난감을 뺏긴 아이도 울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수심은 마음을 한없이 키우고 닦는 공부이며 그래서 스스로 안배한 공부라고 하는 것이다.

 

딸아이 일지(가명)도 오랜 세월 그 과정 속에 있었다.

완벽주의자들이나 예민한 사람들은 수심공부에 쉽게 빠져들지만, 그 습(習)을 쉬게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고 힘든 오랜 세월을 지내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 누구나가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상대의 잘못이 드러나 있을 때에는 결코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온 일지는 그간의 켜켜이 쌓아 두었던 이야기보따리들을 한참 동안이나 털어놓았다. 다행히 많이 적응이 되었으며 새로운 취향이 스스로의 존재성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 많이 나아지고 있었지만, 오랜 기간 지녀온 피해의식이 아직도 원만한 대인관계 적응을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가끔씩 연락이 오면 30여분에서 한 시간 가량 뜨거워진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어야 하지만,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대견하다.

 

주변의 많은 사례들과 같이 이러한 여성들이 겪는 이시대의 고통은 과거와는 또 다른 고통들로서 후천시대에 즈음하여 과도기적 입장에서 보여주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삼은 두 딸은 불과 몇 년 전인데 각기 전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인연으로 맺어졌다. 먼저 삼은 딸은 미리 부조를 하긴 했으나 당시 몸이 아파 결혼식장에 가지 못하였다. 마지막 딸아이는 혼기가 늦어지고 있는데, 조금은 우려스럽다.

 

수양아들은 맨 처음 수련을 하면서 얻게 되었다.

중1인 백호가 무협만화에 매료되어 수련을 시작하였는데, 당시 술을 즐기는 나여서 체형이 퉁퉁하였는데, 백호 또한 외형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이들이 중1이 스스로 수련한다는데 대해 신기해하고 있었으며 기특해하면서도 적지 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주위의 주선으로 아들을 삼았는데, 별반 말은 없었지만, 일종의 멘토였다.

백호가 당시 PC통신의 단전호흡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누나들을 사귀었는데, 그네들이 수련원 부근에서 만나게 되니 자연 같이 어울리게 되어 수양딸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아이들은 저네들끼리 쉽게 어울리니 자연 형제자매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지방에서 올라오게 되면 만나게 되고 식구들이 점차 늘어갔다.

여고2인 소소는 분당 집에까지 와서 놀다가 가기도 했다.

 

한 수양아들을 남쪽지방에 볼일을 보고 기차로 돌아오다가 기차 안에서 만났다. 그 아들은 부친과 부산 상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들을 두고 친아버지와 수양아버지가 처음 기차간에서 만났으니 묘한 인연이다. 친아버지가 부산서 지참한 페트병에 든 동동주 한통을 나눠 마시면서 아들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고충, 그리고 가능성을 대화로 주고받았다.

덕분에 수원서 내려 수양아들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분당 집까지 편하게 온 경험이 있다.

 

수양딸들과의 인연에 대해 사람들은 우려하는 바가 없지 않다.

집사람에게는 이미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으나 긴가민가했었는데, 잡음들이 생겨나자 화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인연들은 한 시절 스쳐가는 짧은 시절인연이요. 다시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인연이다. 이러한 인연은 서로 간에 인정할 때 비롯되는 것으로 만남이 이어지지 않으면 소멸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소중하기도 하고 오히려 내 스스로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글을 쓰면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수많은 딸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그들이 힘든 세상을 굳건하게 헤쳐 나가, 미래의 대한을 움직이는 아이들의 어머니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을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