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수양딸

수암11 2011. 9. 4. 12:01

수양딸

 

1.

 

내가 최초로 수양딸을 삼게 된 아이는 직장 내에 근무하는 여직원이었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가 새롭게 정리되면서 근무 공간 내에 하나의 회사를 더 설립하였는데, 기존회사의 직원은 다 나가고 여직원과 같이 단 둘이 남게 되었고 새로 설립된 회사 직원들이 같이 근무하였으며 업무 특성상 나는 두 회사의 일을 동시에 보게 되었다.

 

일이란 게 하고자 한다면 해도 끝이 없는 것이 일이지만, 조직이라는 틀 안에서 구성원으로서 역할이 있다면 나름대로 보람이 있겠지만, 당시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회사로서 특별히 드러나지 않는 업무에 누군가에게 기댈만한 분위기가 아니어서인지 그 아이의 얼굴에서는 외롭고 힘듦이 드러나곤 했었다.

 

건설업 특성상 술을 즐기던 시절인데다가 그 아이 또한 술을 사양하지 않는 터이라 여럿이 혹은 단둘이 술을 마시곤 했는데, 어느 날 단 둘이 마시다가 문득 생각에 남녀가 단 둘이 술을 자주 마시는 모습이 남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혼자 술을 마시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매일 술을 즐기다 보면 술상대가 필요했었고 술상대를 대부분 주변에서 찾다보니 불가분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한 터이고 그 아이의 어려움을 해소시켜준다는 마음은 아무리 호의라 해도 분명 남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왜곡되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선뜻 술을 마시는 도중에 내가 제의를 했다.

“너 내 딸 하자”

그래서 최초의 수양딸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물론 여동생을 삼을 수도 있었지만, 남녀의 관계는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미리 안배한 까닭도 없지 않은 것이었다. 나이 차이래야 대여섯 정도 밖에 되지 않으나 친구 같은 부녀관계가 성립된 것이었다.

오랫동안 근무하는 가운데 같은 공간이지만, 내 소속은 바뀌었고 겉으로 별 표현은 하지 않았으나 그 아이를 친딸과 다름없이 각별히 생각하였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도 좋은 짝을 만나 결혼을 하였고 여러 해가 흘렀다.

 

어떤 일을 계기로 예전 근무멤버들의 모임이 이루어졌고 그날은 7,8명이 모여 거하게 취하였는데 물론 딸아이도 참석을 하였다. 당시 만취를 하면 집사람이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곤 하였는데, 그 아이의 집 방향이 좀 돌아가기는 했지만 비슷한 방향이어서 차에 같이 태웠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그 아이가 예전 직장생활에서 큰 힘이 되었다면서 내가 이성으로 느꼈었다는 이야기를 취중에 하였으나 같은 취중이어서 그러려니 하고 그리 마음에 담지 않았다.

그러나 집사람은 그 말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모양이다.

그 아이를 집 앞까지 내려주고 집사람과 둘이 오는 가운데 “남자가 어찌 처신을 하고 다니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느냐?”며 질책을 받았다. 그러나 스스로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기에 바로 잊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다시 언급되고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한참 후에 일어났다.

 

전 직장에서 서울 부산을 왕래하며 근무하던 남은 동료가 옛사람들이 생각이 나니 자리를 마련하자는 이야기가 다른 사람을 통해 여러 번에 걸쳐서 있었으나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 년에 한 두 번씩 연락을 하는 이가 연락이 닿거나 만날 때마다 언급을 하니 마달 수도 없어 내가 주선을 하였다.

모임에는 제법 많은 이들이 모여 간신히 정신을 수습할 정도까지 대취하였다. 딸아이는 연락이 닿지 않아서 나오지 않았는데, 그 아이의 언니뻘 되는 옛 여직원이 나왔다.

 

그 여직원과는 이상하게 꼬인 관계였는데 그간 모임 주선을 꺼려한 이유도 그 여직원과의 이상한 관계 때문이었다. 나와 동석한 자리마다 대취해서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자신의 남편이 동반한 자리에서도 술기운을 빌어서인지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당황케 하였다. 처음 그 여직원과의 사이가 아주 원만해서 집사람과 사귈 때에는 서로 이성 친구를 동반해서 데이트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사이가 틀어지고는 끝이 미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 친구는 물론 딸아이도 결혼을 했고 둘은 자주 만났던 모양이었다. 제법 세월이 흐른 후에 딸아이와 집에서 낮술을 먹고는 내이야기가 거론되었다. 취한 마당에 내 이야기가 나오니 내친김에 우리 집에 전화를 하여 집사람에게 “예전 회사 다닐 때에 내가 남편을 사랑했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여 퇴근한 나를 한동안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모임을 주선한 계기 중에 하나도 이러한 부분을 성숙한 자세로 매듭을 짚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임은 그런대로 즐겁게 끝이 났지만, 한동안 그 여직원의 전화로 인해 그녀의 남편과도 술자리를 같이 했으며, 회사 부근에 혼자 찾아와서 대취하도록 마시기도 했다.

그 가운데 딸아이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딸아이가 결혼 후에 두 집이 자주 어울렸는데, 술을 마시고는 취중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를 이성적으로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부부간에 신뢰가 흐트러지고 마음고생이 심하였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그 이야기로 인해 처녀시절의 행실까지 의심받게 되었으며 나는 요주의 인물에 파렴치한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류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인 양 건성으로 듣고 흘려버렸는데 소상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마음이 무척 아프다.

부녀관계는 접어두더라도 회사동료로서 실제 한 점의 의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초래된데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며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제 그 아이는 전혀 연락이 닿지 않으니 어찌할 수도 없다. 설혹 그 아이의 남편에게 해명할 기회가 있다 손치더라도 그 누가 믿어주겠는가.

딸아이가 결혼하기 전에 신랑감을 회사 부근에 데리고 와서 서울에 같이 근무하던 몇 임직원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직업상 보이지 않는 날카로움이 엿보였지만, 있지도 않은 일로 인해 마음고생을 오래도록 한 것을 생각하면 나로 인해 업을 지은 터이니 만감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