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과 집중
이완과 집중
≪세종실록≫에 축국과 격환을 예로 들었지만 ‘유희를 이용하여 전투를 연습한다’(≪세종실록≫ 세종 7년 4월 19일)는 표현이 있는데, 우리의 선조들은 각박한 전쟁기술조차도 사냥 등을 즐기는 과정에 습득하였다. 또 세조실록에 비망기로 정원에 전교하기를, “또 권법(拳法)은 용맹을 익히는 무예인데, 어린 아이들로 하여금 이를 배우게 한다면 마을의 아이들이 서로 본받아 연습하여 놀이로 삼을 터이니 뒷날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무예를 익힐 아동을 뽑아서 종전대로 이중군(李中軍)에게 전습(傳習)받게 할 것을 훈련도감에 이르라.” 하였다.(선조실록 124권, 33년 4월 14일 2번째기사) 그야말로 ‘유희를 이용하여 전투를 연습한다.’는 표현 가운데에는 유희를 즐기는 부분도 있지만, 이것은 피상적인 측면이고, 오히려 그 내면에는 유희를 통한 수많은 반복에서 자연스러운 전투행위가 몸에 배게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사냥을 통해 전투훈련을 하거나(류형원, ≪반계수록≫ 권23 병제고설 강무) 향음주례(鄕飮酒禮)는 활쏘기를 연습(이덕무, ≪청저관전서≫ 권24 편서잡고4)이라는 기록은 피상적인 유희나 놀이 그리고 사냥의 그 자체에 담긴 단순한 의미 뿐 아니라 즐기는 가운데 전쟁기술, 싸움기술의 연습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러한 우리민족의 독특한 기질은 현대에 있어서도 찾을 수 있는데 사람을 살상하는 기능을 지녔던 근대태권도가 원래의 이미지에서 상당부분 탈피하여 현재는 경기태권도로 급속히 바뀌었을 뿐 아니라 올림픽정식종목으로까지 채택된 경우가 바로 그 사례이다.
언급된 사례들은 무술의 엄격함과 진지성이라는 경직된 사고가 오히려 제대로 된 동작의 저해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긴장감이 마음이 앞서 욕속부달(欲速不達)로 이어져 최적의 원하는 동작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공이나 태극권 등에서도 유사한 이론들을 볼 수 있는데, 참장공(일종의 기마자세)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방송(放鬆-힘을 빼고 긴장을 푼다는 뜻으로 ‘릴랙세이션’과 비슷한 말)을 우선해야 하며 태극권연권십요(太極拳練拳十要)에 방송의 요점이 잘 나타나 있다고 했다. 무예의 미적요소에 관한 글들이 많은데, 이러한 미적 요소는 엄격함과 진지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자연스러움 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야구의 투수가 공을 던지든, 골퍼가 드라이브샷을 하든, 택견의 발차기 동작은 이완되고 힘을 뺀 상태가 최적의 자세인 것이다.
장황한 이러한 내용은 이완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함인데 우리 수련에 있어서 최고의 집중을 이루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최대한 이완되어야 한다. 행공을 하는 이유 중이 하나는 이완의 과정이며 가장 이상적인 이완상태는 수련 가운데 수마(睡魔)에 빠지기 바로 직전이다. 잠이 들락말락 하는 순간에 집중을 할 수 있다면 최고의 집중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경계에 머물지 못하고 곯아떨어지는 것인데, 여러 여건과 더불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신이 말똥말똥한 상태에서는 깊은 수련의 몰입이 어렵고 TV시청을 3시간 이상하게 되면 심법의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여러 시간동안 뇌리에 남은 상들로 인해 몰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너무 피곤해도 바로 수마에 빠지기 때문에 수련환경에는 바람직하지 않다. 본 수련이 끝나고 회건술 시간에 수련이 잘되는 이유도 수련이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인데, 이런 부분을 감안한다면 수련을 한 타임에 그치지 말고 애써 여유를 만들어 한 타임을 더 해주는 것이 바람직한 이유이다.
수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 수련이며 본 수련에 집중도를 높이는 것인데, 우리 수련의 과정은 어떻게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깊은 몰입에 도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반복훈련을 통해 이 과정을 단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아무리 이완이 잘되어 있다 하더라도 집중도가 낮아지면 이완의 효과가 반감되는 것이다.
이 집중도를 높이는 방법 중에 하나는 심법의 묘리를 체득하는 것이다. 원래 심법은 세 번 걸고 나면 잊어버려야 한다. 소위 ‘심법빨‘이 먹히지 않아 반복하게 되면 그것은 주문수련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심법은 거는 동안 몸과 마음이 최대한 심법의 영향 하에 놓여져야 한다. 그리고 반복 수련 가운데 최대한 심법의 작용이 단축되어 빠른 몰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정해진 시간에 매일 꾸준히 수련하는 것이다.
주역에서 괘상을 얻으려 할 때 마음이 텅 빈 상태에서 의문을 던짐으로서 답을 얻듯이 최대한 이완된 상태에서 심법을 통해 모든 원하는 각자 단계의 수련으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심법은 생명력을 지니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화룡점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련에 부담을 지니면서 힌디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한 부담이 누적되면 반작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많은 유혹들로 가득한 세상에 스스로가 원하든, 원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선택을 했든 기왕에 수련을 시작했으면 마음을 다잡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수련은 매일 빠뜨리지 않고 밥 먹듯 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몇 번 정도의 수련은 수련이 아니고 운동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함으로써 몸과 마음이 수련에 적응이 되고 그 적응은 효율적인 수련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