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훈련에피소드(30년 전)2
유격훈련에피소드(30년 전)2
야간담력훈련은 내게 새디스트 기질을 드러내게 한 계기도 되었는데, 특히 무덤 속을 통과하는 과정은 아주 우스웠다. 무덤 옆에서 올빼미들을 기다리고 있으면 한 명씩 띄엄띄엄 올빼미들이 다가오고 통과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면 기어서 무덤을 통과 하는데, 몸통이 들어가고 엉덩이 뒷부분이 남았을 때 가볍게 엉덩이를 툭 치면 드물게 기겁을 한 올빼미가 뒤로 뛰쳐나와 개머리판으로 공격을 시도하는 사례도 있었다. 얼마나 겁이 났으면 훈련과정의 일부임을 잊고서 사태분간을 못하고 과잉방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공포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며, 공포는 무지(無知)에서 온다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다.
깜깜한 산중에 홀로 빈 무덤 옆을 지키는 내 입장은 누군가를 놀려먹을 생각에 기대에 부풀고 흐뭇한데 반면에 누군가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빈 무덤을 통과하면서도 잔뜩 겁에 질려 있다는 것은 바라보는 시각이 가져다주는 차이인 것이다.
극적인 사건은 다섯 번째 유격훈련 2주차에 일어났다. 1주차 훈련을 마치고 2주차 훈련 도피 및 탈출 훈련에 들어가는 첫날 새벽에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다. 진돗개는 대간첩작전으로 하나는 경계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새벽 4시에 비상이 걸렸는데, 웬걸 이미 작전개시시간이 사전에 조율되었는지 M60군용트럭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다.
설악동에 벙커구축 작업 나갈 때 처음 차량이동을 했었고 복귀 시에는 완전군장에 3일간을 걸어 왔는데, 보병이 나중에 삼수갑산 갈지언정 차량이동은 어쨌거나 긴박, 혹은 특별한 상황일지라도 횡재인 것으로 두 번째의 차량이동이다. 새벽에 출발한 차량이동이 끝없이 계속되어 민통선 내에 비포장 길을 한없이 달리는 가운데 앞선 차량이 만들어내는 먼지가 뒤 차량과 탑승한 병사들의 전신을 덮어 동료들의 누런 눈썹이 소의 눈썹을 연상케 한다.
도중에 차량 뒤 칸에서 M16실탄 105발, 수류탄 2발 등 개인화기용 휴대품과 공용화기휴대품 M60기관총 200발들이 탄통 3개 600발과 크레모아 2개인가를 지급 받았다. 화기분대 M60기관총팀은 특히 작전 시 휴대장비가 장난이 아니다. 사수, 부사수, 탄약수 3명이 개인화기 이외에 공용화기를 휴대해야 하는데, 람보처럼 폼이 나는 것이 아니고 항상 거치위치도 가장 시야가 좋은 높은 지역에 참호를 구축해야 하는 것일뿐더러 복귀나 이동 시에도 애로가 많은 것이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고 며칠 되지 아니하여 대대ATT 훈련을 나갔는데 끝도 없는 행군에 이거 걷다가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을 만큼 언제 상황이 끝나나하는 생각이 내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보다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고참들이 요령을 핀다고 내게 매어준 M60 예비총열 빈주머니였다. 그 안에 예비 총열은 들어있지 않고 비상식량인 건빵봉지가 여러 개 들어 있었으며 야전삽도 아니고 사제 삽을 휴대 시켰는데 산중에서는 M16을 매고 강원도의 험한 산중을 이동하다 보니 엄청 거치적거렸다.
철책선 새워진 능선 자락 바로 아래 간첩의 복귀예상로 지점을 나누어 매복에 들어가는데 6.25의 흔적인지 녹슬고 구멍이 뚫린 철모와 탄통들이 가끔씩 뒹굴고 있다. 얼마나 오랜 세월 인적이 없었는지 군데군데 아름드리 고목들이 쓰러져 이끼가득 덮인 채 누워있다.
깊은 산중 짧은 해에 해거름이 되니 마음은 분주한 가운데 돌시렁을 따라 올라 매복위치를 잡아 참호를 구축하면서 부사수에게 크레모아 설치를 지시한다. 한창 작업 중에 번쩍이는 섬광에 머리를 숙였는데 꽝! 하는 소리와 부사수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허겁지겁 총을 챙겨 쫒아 가보니 부사수는 쓰러져 신음하고 있고 언뜻 봐도 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소대본부가 위치한 지점으로 험한 돌시렁 길을 부사수를 들쳐 엎고 달려도 힘든 줄 모르고 내쳐 뛰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험이 적은 부사수가 뇌관을 발파기에 접속하고 크레모아에 연결하기 전에 발파기를 테스트한다고 하면서 일어난 사고였다. 뇌관을 연결하기 전에 발파기 작동여부를 체크해야 하는데 무심코 뇌관을 연결한 후에 테스트를 하면서 뇌관이 사타구니 아래서 폭발한 것이었다. 뇌관 폭발의 충격여파로 동내의까지 껴입은 낭심 아랫부분의 껍질이 까질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교전은 없었지만 아군끼리 혹은 착시로 인한 오인사격 및 수류탄 투척 등은 있었다. 마침 그믐까지 겹쳐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이 이어졌다.
가장 불편한 것 중에 하나는 땀에 절어 전투복 이곳저곳에 소금이 잔뜩 묻어나도 씻을 기회가 없었다. 진지를 옮길 때에는 불편했던 탄약통이 식사추진 때에는 훌륭한 식기용기가 되었다. 탄약을 비워내면 여러 개의 반합으로 옮겨 날라야 했던 찌개와 부식이 탄통 2개로 나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식기 대용 탄통은 세척이 필요했으므로 오랫동안 인적이 닿지 않았던 그야말로 그냥 떠 마셔도 되는 최고의 일급수 개울물로 헹궈내었는데, 어느 날은 아무도 없는 개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욕을 했다. 비누는 없었지만, 소금기를 씻어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중이라 하지만 언제 어디서 간첩이 나타날지 모르니 큰 바위 하나를 은폐물 삼고 M16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언제라도 사격할 수 있는 옆에 두면서 온몸은 긴장으로 팽팽해졌다.
내 생애 가장 인상적인 목욕이었다.
백주에 은신하고 야간이동을 하는 무장간첩으로서는 대낮에 몸을 드러내는 일이 있을 수 없겠지만, 아군의 군복이나 화기 혹은 비상식량을 구하려 한다면 목숨을 건 모험에 대한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훈련강도는 매우 높아서 수km 밖에서 담배냄새를 맡으며 그들이 은신한 비트는 정밀한 수색에서도 발견해내기가 불가능에 가깝고 권총 한발에 한명을 사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실제 투입 이전에 아군의 피해가 있은 것으로 풍문에 들었다.
작전은 소강상태에 들어가면서 철책선 자락 남측중간 능선으로 이동하여 퇴로를 철통같이 압박하였고 밤이면 가끔씩 들리는 오인사격 소리에도 다소 무덤덤해졌다.
작전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잘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야간 매복 시 용변처리였다. 불가피하게 진지로 연결되는 야전화장실과 통로를 구축하여 해결 하였다.
달도 없는 그믐에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착시로 인한 수류탄 투척과 오인 사격이 우리 매복지점 코앞에서 발생하였는데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아도 아무런 조짐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주변 매복지점에서 날아오는 예광탄 불빛이 우리 앞에 집중되었고 무전병의 악쓰는 욕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 퍼졌지만, 아무런 조짐도 없었다. 요란한 총소리 가운데 행여 성과가 있을까 하여 단 3발의 사격 후에는 그도 무의미 하여 관두었다. 비는 조금씩 내리고 소강상태에서 우리는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다.
무료하여 졸고 있노라니 아직도 긴장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탄약수가 자꾸 깨운다.
의외로 작전기간이 길어지면서 18일 만에 갑자기 철수하게 되었는데, 복귀하면서 들으니 10.26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