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음식2)바다의 비단 "메셍이"
선도음식2)바다의 비단 "메셍이"
글쓴이: 사천사 조회수 : 69 05.03.06 16:14 http://cafe.daum.net/Dohwaje/5Ax9/107
(선도음식2)바다의 비단 "메셍이"
메셍이국
‘99 전남도정평가단 회의와 현지 확인 평가를 위해서 도청에 모였다.
기유년 첫모임이라서 그런가. 반가움의 눈인사를 보내느라 대회의실이 뜨겁다.
전남의 각 시 군에서 광주까지 회의시간 맞춰 도착하느라 새벽같이 출발하여 고생도 했을 법한데, 다들 지친 기색이 별로 없다. 1999년의 전남도 행정당국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리라.
오전회의를 마치고, 인근 식당에 들러 미리 예약해 둔 점심을 먹었다.
톳나물과 배추쌈이 미각을 돋운다. 메셍이 국과 시래기 국이 따로다 .
배추 잎에 밥을 떠 놓고 갈치 속젖갈로 쌈을 싸서 한 입 가득 넣었다.
며칠 전부터 속을 썩이던 송곳니가 끝내 말썽이다. 뱉어내지도 못하고 우물거리고 있으려니 한심스럽다.
나이 탓인가, 이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끝도 없다. 어금니와 송곳니에서 사랑니까지. 신경치료와 인조 이로 바꾸는 일로 치과를 들랑날랑했는데도, 또 아픈 이가 생긴 것이다.
겨우 삼키고 나서 다른 이들의 표정을 살핀다. 아무도 내가 쌈을 먹다가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메셍이 국을 떠 후후 불고 나서 입술을 슬며시 대어 본다.
메셍이 국은 뜨거워도 김이 나지 않기 때문에 홀짝 마시다가는 입안을 데이기 십상이다.
메셍이는 남해안이나 서해안의 청정바다 깊은 물에서 한 겨울과 이른 봄에만 나는 해초다.
파래와 비슷한 향기와 맛을 내지만 값이 파래보다는 다섯 배 가량 비싸다. 연두색으로 비단실처럼 가늘고 곱기도 하거니와 채취하기가 까다롭다고 한다. 이가 없는 노인들에게는 제격이다.
메셍이를 씻을 때는 조개껍질 부스러기 같은 것을 골라내려고 대 소쿠리에 건지면 소쿠리에 절반을 빼앗기므로 얼게미에다 건지는 것이 제일 좋다.
메셍이에 설탕과 소금, 식초, 다진 마늘과 파, 깨소금을 넣고 초무침을 해서 즉시 먹으면 상큼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설탕과 소금대신 참기름과 재래간장을 넣어 무치기도 하고 석화를 넣고 국을 끓이기도 한다.
메생이국을 끓일 때는 솥에 참기름을 두르고 석화를 넣어 슬쩍 익힌 다음에 씻어둔 메생이를 넣는다.
물은 붓지 않아도 메생이에 베어 있던 물이 나와 국물이 생긴다.
끓어오르면, 조선간장으로 간을 하고 조선간장이 없을 때는 죽염을 넣는다, 소금을 넣으면 쓴맛이 난다. 마늘을 다져 넣어도 괜찮고 국물을 원하면 이 때 물을 부어도 된다.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아야 제 맛이 난다.
메셍이 국은 이가 다 빠지고 없던 내 할머니가 즐겨 드시던 국이다. 시어머니도 좋아하시는 국이다.
노인들 틈에서 살다보니 노인네 식성을 닮아 가는 가 했더니 이가 아파 밥을 오물오물 씹다가 메셍이국만 둘러 마셨다. 정말 노인이 다 된 기분이다.
우리들 생활행정분야 팀은 현지 확인 평가를 위해 장성에 있는 프란체스꼬의 집과, 담양의 덕산 장애인복지법인을 향한 버스에 올랐다.
아직은 정월인데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코트를 벗는다.
동승한 관계공무원들의 설명을 들으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들녘을 본다.
장성과 담양은 산으로 둘러 인 순천과는 표정이 사뭇 다르다.
어쩌면, 훈련병인 아들의 훈련소일거라고 짐작한 상무대를 빼고 나면, 산은 저 멀리에 있고 사방이 너른 들판이다.
군데군데 초록의 웃자란 보리가 보일 뿐, 논밭이 텅 비어 있다.
지금쯤 겨울을 이기고 동면에서 갓 깨어난 보리가 새 순을 올리느라고 뜨거운 열기를 훅훅 내뿜어 들녘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렸을 적 우리 집 논과 밭은 비닐하우스 몇 동과 못자리할 땅만 남겨놓고 모두 겨울을 이겨낼 보리를 심었었는데. 저 많은 땅에다 전부 나락을 심을 리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땅심을 돋우려고 休耕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노는 땅을 바라보며 農業의 비젼을 생각하다 잠시 아쉬움에 젖는다.
장성에 있는 천주교 수도단체 작은형제회(재단법인 프란체스꼬)에서 운영하는 노인요양시설에 도착했다. 그곳은 단순히 노인을 위한 복지시설이 아니었다.
복지 마을화 된 실버타운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 같다.
노인들이 생활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을 것 같은 각종 시설이 눈길을 끈다.
책임자인 修士의 종교를 초월한 사랑과 봉사심에 걸맞게 파스텔 톤의 실내 분위기를 닮은 밝은 표정의 노인들을 만났다.
치매노인을 위해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휠체어의 출입을 자유롭게 한 문턱 없는 문과 엘리베이터, 미끄럼방지용 깔판 등의 자잘하게 신경 쓴 곳까지 있다.
무료 물리치료실과 목욕탕, 그야말로 노인들의 천국이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면서도 종교를 탓하지 않고 성당을 마을회의나 예식장, 문화행사를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았다.
바닥이 온돌로 된 목욕탕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인근 마을의 노인들에게 개방한다.
오전에는 남자노인을 마을 청년회원들이, 오후에는 여자노인들을 부녀회원들이 함께 와서 목욕을 시킨다. 정부와 전남도의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광주권에 2천여 명의 후원회원이 있어 더욱 힘이 된단다.
복지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3년 동안이나 반대하던 마을 주민들이 시설이 완공되자 주위에 모여 살 것을 생각하고 택지조성을 하고 있다.
노인과 함께 사는 맞벌이 부부를 위해 무료 노인 탁아원을 운영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노인 탁아원생은 그렇게 많지가 않단다.
부모를 복지회관 같은 곳에 맡긴다는 것이 아직은 불효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설에는 부양가족이 없어 홀로 사는 노인만이 살고 있다.
노인의 천국에 사는 노인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노인이라 생각할 날이 곧 돌아 올 것으로 믿는다.
아무리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 등의 특수계층을 위해 만들어진 복지시설일지라도 가족공동체를 느끼며 살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복지시설은 지역사회의 열린 공간으로도 그 사명을 다 해야 한다면.
프란시스꼬의 집 같은 한국식 복지시설이 많이 들어설수록 복지국가의 틀이 야무지게 잡히는 게 아닐까. 우리나라의 복지법은 OECD가입을 위하여 졸속으로 빠르게 발전되면서 이름만 붙은 각종 복지시설에다 아낌없는(?) 투자를 한 결과 많은 문제점들이 들어나고 있다.
이제는 사회사업을 빙자한 영리행위를 적당히 눈감아 주는 식의 행정은 지양되어야 한다.
보사부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지원금과 후원자들의 성금을 가족으로 구성된 운영진들의 급여만 챙겨가는 시설이 많다.
이런 곳을 찾아내어 통폐합시키고 지원하여 비영리단체인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복지법인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행정당국의 첫 번째 과제일 것이다.
‘지역에서 올라 온 평가단원들이 각자의 지방에 돌아가 지방자치단체들이 추진해야할 복지사업의 방향제시를 하라’는 것이 오늘의 주제였다.
문득, 치매증세가 있는 시어머니도 이런 곳에 계시는 게 더 행복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윤리에만 어긋나지 않는다면 아니, 우리가 사는 곳에도 이런 시설이 들어선다면 자진해서 들어가 살고 싶어 하는 노인들이 많아질 것이다.
구태여 자식들 틈에서 뭉개며 식성이 서로 다른 신경전을 벌이지 않아도 될테니까.
메셍이 국을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언제나 노인들과는 식성이 달라 부대끼지 않은가.
김이 나지 않는 뜨거운 메셍이 국을 훌훌 둘러 마시다가 입안을 데이는 것처럼,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한 가정에도 노인은 언제나 소리나지 않는 노인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