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음식1)철분의 보고 "꼬막"
(선도음식1)철분의 보고 "꼬막"
글쓴이: 사천사
(철분의 보고 꼬막 요리)
꼬막 같은 인생
마음이 가는 곳, 발길이 닿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뻥 뚫린 가슴, 가을바람 탓인가.
태백산맥의 그 질긴 생명력이 버티고 있는 보성군 벌교 행 버스에 올랐다.
아낙네들이 벌려 놓은 좌판에 널브러진 꼬막과 바지락과 주꾸미가 찐득한 삶을 이야기한다.
비릿한 생선 내음이 코끝을 후빈다.
때맞춰 벌교장날이다. 직행버스에서 내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른다. 그 푸르름에 시린 눈을 감는다.
슬프디 슬프던 어린 날, 올려다보던 하늘빛이다.
시린 가슴 숨기려 올려다보던 하늘 한 자락이 펄렁이고 있다.
쪽빛하늘이 흔들리는가.
쪽물들인 명주가 술렁술렁 불어오는 갯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저어기 어디쯤이었던가.
비단자락 올려둔 손바닥이 내비치던 푸름은 옥빛이었지.
두 물 먹인 쪽빛은 그대로 쪽빛이랬지.
세 물 먹이고 네 물 먹이면 쪽빛이 남빛이 되고 남빛이 흑빛이 된단다.
그래도 모두들 쪽물들인 쪽빛이라고 말한단다.
우리네 여인네의 옥색 한삼모시 치마폭에서, 쪽빛저고리 끝동에서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로 한숨으로 절절이 녹아나던 그 한으로 둘러싸인 오! 한의 빛이여.
옛 벌교리 촌구석 한 곳에서 샘물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황토 빛이 채 가시지 않은 질그릇 한 동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전통염료 연구가의 손끝에서 선조의 색깔로 재탄생되고 있었다.
쪽은 원래가 1년 생 녹색풀이다. 하지만 쪽이 녹빛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쪽은 녹빛이 아니고 그냥 쪽빛이다.
초록색 쪽풀이 쪽빛으로 탄생하는 과정에 약방의 감초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석회다. 아니 석회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석회의 원료는 꼬막이나 석화껍떡 같은 조개껍질이다.
어쩌면 꼬막이나 석화가 많이 나는 벌교에서 쪽물 재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쪽빛을 내는 촉매제 석회의 주원료가 되는 꼬막은 청정해역 남녘의 바다에서만 나는 특산품이다.
껍질은 석회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꼬막의 속살 맛은 여느 조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꼬막은 그 종류가 피꼬막과 참꼬막, 똥꼬막으로 나뉜다.
새꼬막은 꼬막이 아니고 꼬막을 닮은 다른 조개류다.
무공해 지역인 보성만 개펄에서 건져 올린 벌교 꼬막은 그 맛이 참으로 일품이다.
날 것으로 먹는 피꼬막은 껍질이 검은 털로 싸여 있다.
무게가 200g 이상의 살아있는 피꼬막 껍질을 칼로 벌리고 선홍색 피를 따라낸다.
피꼬막의 피는 사람의 피와 성분이 거의 비슷하다는 속설이 있어 보양식으로 애용한다.
입안을 감치는 짭조름한 맛과 향이 마시기에 괜찮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꼬들꼬들한 속살도 별미다.
바닷물 수온이 5도C 이하로 떨어지는 겨울철이어야 날것으로 먹을 수 있다.
속살을 발라내어 갖은 양념을 하고 야채와 함께 살짝 덖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매 익히면 질겨서 제 맛을 잃는다.
참꼬막은 껍질이 두껍고 골이 깊다.
속살이 부드럽고 특유의 향이 진하며 차례 상에 빠지지 않는 제수품인 만큼 귀하다.
똥꼬막은 참꼬막에 비해 흔하다.
꼬막 취급을 받지 못하고 천대만 받아왔는데,
참꼬막이 일본으로 수출이 많이 되는 바람에 요즘의 꼬막무침은 똥꼬막이 주로 오른다.
꼬막요리는 꼬막을 삶는 요령이 그 맛을 좌우한다.
꼬막은 다른 조개처럼 해캄을 빼내기 위해 소금물에 담가두면 싱거워진다.
껍질을 깨끗이 씻어 물이 끓기 직전에 꼬막을 넣고 서서히 젓는다.
삶는 물에 핏기가 번져 검붉게 변하면, 건져내어 수저를 사용하여 껍질 밑을 비틀어 깐다.
엄지손톱으로 꼬막껍질을 까다가 손톱 끝이 닳아 애를 먹는 수도 있다.
속살이 미끈미끈해지는 여름철에는 국을 끓이기도 한다. 대친 물을 버리지 않고 한소끔 펄펄 끓여서 마늘과 파, 매운 풋고추, 재래간장으로 양념을 한다.
매운 풋고추가 얼큰하게 입맛을 확 살리는 꼬막의 별미요리다. 냉장고에 두고 차게 해서 여름에만 먹는다.
꼬막은 바닷 속 모래의 진흙에서 산다.
해심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꼬막이어야 모래나 해캄이 없다.
어찌 겉껍질만으로 언 뜻 속살을 짚어낼 수 있으랴.
그러나 오랜 동안 꼬막을 잡아 생계를 이어온 바닷가 사람들이나,
비릿한 생선 내음의 역겨움을 감지 못하는 시장바닥의 꼬막장수 할머니는 꼬막의 출신지를 신기하게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알아맞힌다.
꼬막을 잡아서 파는 여인네의 손가락이 꼬막 껍데기처럼 골지고 굳어져 있다.
바닷물에 씻기고 뻘 속에 몸뚱이를 비비며 속살을 키우는 동안,
꼬막 껍질은 석회덩어리로 굳어진다.
가족을 위해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세상살이에 온 몸 부딪히며 시달리고 살아온 여인의 두 손이 석회덩어리로 뭉쳐진 꼬막껍질과 무엇이 다르랴.
진주 핵을 품은 진주조개가 제 몸 부대끼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서는 제 몸 안에서 진주를 키워낼 수 없었던 것처럼.
꼬막의 속살이 식탁 위에 오르는 동안,
꼬막 껍질은 또 다른 인내로 석회로 변하는 고통을 이겨내고 질 좋은,
아주 질 좋은 석회가 되고 초록 풀잎을 쪽빛으로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의 촉매쟁이 석회수가 된 것이다.
꼬막의 속살은 맛있게 먹어도,
쪽빛 물들인 비단 옷은 귀히 여겨도, 꼬막 껍질의 아픔은 아무도 모른다.
속살을 키워 내 제 할 일을 마치고, 껍데기는 훌렁 벗어 가루를 내어
저토록 시린 쪽빛을 만들었으니.
벌교에 꼬막이 없었다면, 꼬막껍데기를 부수고 가루를 내어 석회수를 만들어 내지 않았다면
어찌, 쪽빛 재연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꼬막 잡던 갯가의 여인과, 장바닥에서 꼬막 팔던 그 여인네와,
벌교리 한 작은 마을에서 펄럭이던 쪽빛이 어우러진 벌교의 오후는 참으로 아름답다.
차창 밖으로 내비치는 하늘이 온통 쪽빛이다.
겨울을 부르느라 하늘이 저토록 시퍼런가.
세상사에 멍든 사람들의 가슴인가.
눈이 시리다가 가슴이 시려오는 세월 사이사이를 헤집어 다니다,
문득 뒤돌아보니 어느새 흰 머리카락 투성인 여인이다.
꼬막같은 인생, 나는 친정어머니를 떠올리고 있었다.